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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12. 19. 16:10

국제정치와 인공지능

김정섭, 태평양 전쟁, 우크라이나 전쟁, 대만해협 전쟁을 현실주의 국제정치학의 관점에서 해설한다고 선언하는 이 책은 실제로는 국제정치 이론에 국제관계사를 살짝 추가한 지극히 평범하고 밋밋한 저널리즘 레벨의 국제정치 개론서이다.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2차 문헌이 주로 대중교양서들이라 굳이 이 책을 읽을 이유는 없어 보인다(태평양 전쟁 파트는 가토 요코의 책들에 거의 전적으로 의지한다). 전쟁의 원인과 지정학에 대해 설명하다가 핵무기와 공중전(공습)의 윤리에 대해 언급하는 등 서술도 전체적으로 중구난방이다. 국제정치학 논의를 공부한 사람이라면 어디선가 한번쯤 들어본 이야기들로만 가득 차 있어 책을 읽는 내내 지적 긴장감을 조금도 느낄 수 없었다.우크라이나 전쟁이나 양안문제는 시의성이 높아서 함께 언급하는 것..

2025. 12. 13. 22:30

벤저민 R. 타이텔바움, <영원의 전쟁>을 읽고

저자 벤자민 타이텔바움은 민족음악학(ethnomusicology) 연구자로 원래 스웨덴의 음악적 하위문화를 민속지학적 방법으로 연구하는 인류학자이다. 북유럽 헤비메탈(바이킹 메탈)의 극우적 경향에 대해 연구하는 과정에서 저자는 자연스럽게 현대의 극우 이데올로기에 대한 연구를 겸하게 되었다. 은 알렉산드르 두긴, 스티브 배넌, 그리고 올라부 지 카르발류에 대한 인터뷰 연구를 통해(아무런 정치적 뒷배경이나 후원자도 없는 순수한 연구자의 정체성을 지닌 저자에게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는지 무척 신기하다) 현대 극우 이데올로기의 패턴과 기원을 파헤치는 논픽션이다. 도발적인 문제설정과 엄숙한 제목에 비해 책은 전체적으로 풍자적인 문체의 르포 형식을 따른다. 학술적 보고서가 아니라 정치 장르소설에 가깝게 전개되므로 재..

2025. 12. 3. 21:37

브루스 딕슨, 자이니치, 알파고

브루스 J. 딕슨, 정치학자 브루스 딕슨의 은 체계성과 균형감각을 두루 갖춘 뛰어난 중국정치학 개론서이다. 마침 시진핑 실각설이 나돌던 시기에 읽었다.중국공산당의 ‘반응하되 책임지지 않는’ 통치방식을 구체적으로 설명함으로써 중국식 당-국가 체제의 내구성과 내적 합리성을 잘 설명하고 있다. 전국인민대표대회와 내각(총리)이 모두 당의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의해 장악되어 있다는 사실에서부터 출발하여 공산당의 시민사회 관리기술, 디지털 기술을 이용하여 구축한 감시체제 등에 대해 설명한다. 중국에는 가시적인 반체제적 시민단체는 없지만, 생활의제나 사회문제의 해결을 도모하는 시민단체나 NGO는 유의미하게 존재한다. 반체제적이고 서구적인 NGO는 중국 당국의 인가를 받기 어려워서 사회적 기업의 형태로 중국에 자리잡곤 ..

2025. 11. 8. 17:07

법조인 자기서사의 무의식: 김두식, 문유석, 박주영의 에세이와 착한 법조인들

법조인 자기서사의 무의식: 김두식, 문유석, 박주영의 에세이와 착한 법조인들한국인이 쓴 에세이를 썩 좋아하지 않고, 한국의 법조인들에 대한 존경심도 별로 없는 나로서는 ‘한국의 법조인이 쓴 에세이’를 굳이 손에 집어들 이유가 없었다. 그러나 법조인 에세이가 곧잘 팔리는 한국의 출판환경에서 일종의 ‘베스트셀러의 사회학’을 시도해보고자 하는 동기와 더불어, 패륜적인 사법부에 대한 문제제기와 사법개혁 논의가 한창인 오늘에 이르러 그 내부자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 보고자 하는 동기가 작동하여 굳이 시간을 내어 최근 20년간의 대표적인 ‘법조인 에세이’를 일별하여 읽었다.1. 김두식, (2004, 2011), (2009, 2019)이 장르의 개척자는 현재 경북대 로스쿨 교수인 검사 출신 형사소송법 학자 김..

2025. 10. 3. 15:14

가즈오 이시구로, 제프리 유제니디스, 한강

가즈오 이시구로, 에 등장하는 소문과 금기, 그리고 희망의 발명에 대한 소설적 재현은 프로이트를 연상시킨다. 가즈오 이시구로는 뛰어난 정서 묘사는 정신분석에 근접한다는 사실을 잘 보여준다는 점에서 20세기 심리소설의 거장들을 따르고 있다. 이 소설은 SF 장르 문법을 따라 복제인간의 운명을 그리지만, 실제로는 필멸자인 인간의 운명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화적이고 원형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미묘한 악의로 점철되어 있는 인간관계의 진실과 결국 삶에 의해 우롱당한다는 감각이 이 소설을 지배한다. 특히 결말에서 드러나는 ‘희망의 붕괴’는 이 소설의 백미다. 복제인간들의 절박했던 소망이 사실은 아무런 근거도 없었다는 사실, 즉 복제인간들은 순진하게도 피노키오 동화쯤 되는 가십을 절박하게 믿어왔을 뿐이라는 사실..

2025. 8. 29. 11:30

최장집주의라는 이름의 신념윤리: 박상훈, <청와대 정부>를 읽고

최장집주의라는 이름의 신념윤리: 박상훈, 를 읽고1. 최장집의 한국 민주주의론박상훈의 는 최장집주의자의 정부관을 요약하고, 그에 입각하여 문재인 정부의 청와대주의를 비판하고 있는 책이다(이 책은 문재인 정부 초창기에 출간되었다). 반론과 답변이 문답식으로 구성되어 있어 순식간에 읽을 수 있다.최장집주의자인 박상훈은 이상적인 정당정치와 대의민주주의 옹호의 관점에서(이른바 ‘매디슨적 민주주의’) 대중동원을 중요한 특징으로 하는 한국의 정치문화를 운동정치, 광장정치, 팬덤정치로 규정하고 강도 높게 비판한다. 저자는 광장정치의 구체적인 해악으로 대통령 비서실과 수석보좌관 중심의 청와대가 ‘국민의 뜻’을 참칭하여 각종 개혁을 주도한다는 명분으로 사실상 군주처럼 행동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민주당 강..

2025. 7. 28. 20:26

박상영, 예소연, 강보라

박상영, · 는 단숨에 읽히는, 곧잘 쓴 십대 연애소설이다. 주인공과 도윤도의 로맨스가 잘 묘사되어 있다. ‘교육열 강한’ 도시 학교의 ‘개 같은’ 풍경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어 그 대목을 읽을 때마다 퍽 괴로웠다. 돌이켜보면 나도 중, 고등학교 시절을 적잖이 ‘개 같아’ 했던 것 같다.작가는 소설의 중요한 미스터리를 마지막에 밀린 숙제 해치우듯 급하게 정리해버린다. 그것이 소설 전체의 성패를 좌우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엄밀하게 보면 불필요한 부분이었다고 생각된다. 어떻게든 서사를 마무리 지어줘야 한다는 대중소설가로서의 선택이었을 것이다.재밌게 읽었지만 조금 떨어져 나와서 보면 진부하기 짝이 없다. 왕가위 감독의 의 2000년대 대구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퀴어 설정을 제거한다면 당신 소설에 어떤 새로..

2025. 6. 30. 23:19

한강,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1.한 사람의 한국문학 독자로서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을 기념하기 위해 를 진작 나의 독서리스트에 포함시켰으나 최근에 와서야 책을 다 읽었다. 독서가 늦어진 것은 지난해 12월 3일 군사쿠데타로 인한 ‘내란성 우울증’에 시달리느라 도무지 심리적 여유가 없었던 것과 직접적으로 관련된다.尹의 쿠데타는 “광주민주화운동을 소재로 한 소설로 노벨상을 받고, 12.12. 군사반란을 소재로 한 영화가 천만관객을 동원하는 나라”인 대한민국에서 있을 수 없는 시대착오라는 소리가 12월 3일 직후부터 이미 들려왔다. 실제로 KBS의 “12.3 비상계엄 증언 채록 프로젝트”에 등장하는 어떤 회사원은 비상계엄 일주일 전에 한강의 를 읽고 그 영향을 받았다고 증언한다. 같은 프로젝트의 또다른 남자는 ‘국회 안쪽에서 총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