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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1. 12. 02:54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고

내가 읽은 하루키 소설은 고등학교 시절에 읽은 과 스물한살 때 읽은 가 전부이다. 그의 대표작인 나 , 는 읽지 못했다. 앞으로도 그의 소설들을 더 읽게 될지는 모르겠다. 내가 느끼는 바로는, 하루키의 작품 자체보다, 대중적으로 그의 작품이 많이 읽히는(팔리는) ‘하루키 현상’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보다 진지한 자세이다. 그게 대세라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교양독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그런데 얼마전에 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 수록되어 새로 출판되었다. 과 까지는 ‘모던 클래식’의 범주에 든다는 민음사의 판단인 것일까?). 내가 기억하는 것으로만 한정해도, 와 는 출간 당시 국내에서 외국 작가의 장편소설로서는 이례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아마 하루키의 신작 장편소설이 또 ..

2022. 1. 12. 00:59

강성부, <좋은 기업 나쁜 주식 이상한 대주주>를 읽고

반복되는 내용이 많고 구성이 허술하다. 심지어 나무위키(!)를 각주로 달아 놓는 등 단행본으로 묶어 내기엔 부족함이 많다. 그러나 이 책은 기업지배구조 논의의 한국적인 맥락(한때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이 정치권의 주요 의제였던 적이 있었다. 요즘은 코로나 시대를 맞아 ‘기본소득’, ‘기본주택’ 등 ‘기본’시리즈가 경제정책의 주요 화두다) 및 그 주요 논점에 대해 현장감 넘치게 파악하게 해주는 보기 드문 책이다. 저자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인 ‘KCGI’의 대표로서 주주 자본주의 운동의 대표주자였다는 사실이 이 책의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다소 식상한 ‘노동자 대 자본가’의 구도가 아닌, ‘일반주주(국민연금) 대 대주주’의 구도로 문제를 바라보면 상당히 참신한 층위에서 논의를 파악할 수 있다. 저자의 ..

2022. 1. 9. 22:28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으로 본 세계경제 : 마이클 로버츠, <팬데믹 이후 세계경제>

저자인 마이클 로버츠는 영국의 맑스주의 경제학자로, 이 책은 그의 블로그 글 중 일부를 선별 번역하여 엮은 것이다. 어느 진영의 해석이 ‘맑스의 진짜 의도’에 부합하는지를 둘러싼 소모적인 순수성 투쟁이나 알튀세르 이후 펼쳐진 맑스에 대한 온갖 ‘정치철학적’ 주해에서 벗어나, 오늘날의 가장 첨예한 경제 이슈들에 대하여 맑스주의의 시각에서 일관되게 해설한 것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의 시선이 오늘날의 거시경제현상에 대해 주류경제학 못지않은 분석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시도를 통해 주류경제학과 맑스주의 경제학의 소통 가능성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주류경제학자들은 맑스주의 경제학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고, 맑스주의 경제학자들은 거시적인..

2022. 1. 1. 17:21

[서평] 읽는 직업 (이은혜)

출판의 세계 지인들이 내가 고르는 책의 제목을 보고 ‘그런 책은 누가 읽느냐’고 핀잔을 주는 일이 잦다. 그런데 사실 나도 의문이었다. ‘이런 책은 누가 낼까?’ 한국 출판계가 때로 존경스러운 것은, 정말 아무도 읽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을 척척 출판해낸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책들은 하나같이 매우 빠르게 절판되어 버린다. 『읽는 직업』은 인문사회출판사 ‘글항아리’의 편집장인 이은혜의 ‘직업 에세이’다. 글항아리는‘누가 이런 책을 읽을까’ 싶은 인문사회서적들을 많이 기획해내는 출판사 중 하나다. 나는 출판계의 자세한 사정이나 그 작동방식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그런 책들을 출판해주는 출판사에 대해서 막연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과 더불어 엄청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은 저자의 출판 기획, ..

2022. 1. 1. 17:20

김시우 外, <추월의 시대>를 읽고

한국은 후진국인가? 한국정치는 논평자들에게 너무나 많은 근현대사 지식을 요구한다. 문제는 이 근현대사가 아직까지 제대로 합의된 적도 없다는 사실이다. 논평자들은 합의된 적조차 없는 역사에 대해서 ‘입장을 밝힐 것’을 강요받는다. 그리고 입장을 섣불리 밝혔다가는 ‘좌빨’ 아니면 ‘수꼴’로 낙인 찍힌다. 민주화 세대를 긍정하기 위해서 주사파까지 긍정할 것을, 산업화 세대를 긍정하기 위해서 유신헌법까지 긍정할 것을 강요받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합의된 적이 없다는 것은 근현대사의 두 당사자인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에게만 그렇다. 이 책의 저자들인 80년대생을 포함한 2030세대는 당사자가 아닌 ‘후세대’로서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여유’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는 서로..

2021. 12. 26. 20:06

[서평]『프로보커터』 - 김내훈

‘프로보커터’는 주목경제(Economics of attention, 마이클 골드하버) 시대의 산물이다. 인터넷 세상 속에서 정보는 무한에 가까운 반면, 소비자의 ‘주목(관심)’은 한정되어 있어 어떻게 해서든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것이 주목경제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주목경제’는 소비자의 눈길 한번이 실질적인 ‘장사’의 의미를 갖는 시대를 표상한다. 프로보커터는 주목경쟁을 위해 사회적 금기를 넘어서는 엽기적인 퍼포먼스나 특정 집단에 대한 황당무계한 도발을 일삼는 인플루언서들, 그 중에서도 모종의 정치적 색깔을 가미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전위적인 문화적 퍼포먼스를 통한 정치적 저항은 원래 좌파문화정치의 기획이었다. 그러나 위반의 쾌락 자체를 동력으로 하는 이들의 전략은, 시..

2021. 12. 23. 17:42

부동산 뉴스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 총정리

(이 글은 김수현의 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음) 부동산 정책에 대해 논할 때는 항상 세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1) 재화의 특성 부동산은 소비재 중에서 생산기간이 가장 긴 재화로, 공급이 시장에 반영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다. 따라서 수급 불균형이 해소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 때문에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들은 상승세가 계속될 것으로 착각하여, 수요가 억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어나는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또, 부동산은 소비재인 동시에 투자재이다. 부동산은 희한하게도 사용할수록 입지나 개발여건(재건축)이 달라져 그 가치가 올라간다.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하여 대출을 받는 것도 가능하다. 이처럼 부동산은 일반적인 재화와 성격을 달리하기 때문에 다양한 특이현상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2) 주택보급률과 ..

2021. 12. 23. 17:23

중동 문제 완전정복

(이 글은 박정욱의 『중동은 왜 싸우는가?』를 기반으로 작성되었음) 중동은 세계사 공부를 할 때 섭렵하기 가장 난감한 ‘최고난이도’의 지역이 아닌가 싶다. 역사 자체가 길고, 지정학적으로 중요한 지역이 한 두 군데가 아니며, 등장하는 민족도 여럿이다. 게다가 그들의 주된 이념인 이슬람주의는 보통의 한국인에게는 낯설기 짝이 없다. 흔히 언론이 중동 관련 뉴스를 다루면서 수니파와 시아파의 갈등에 대해 설명해주겠다고 무려(!) 그 시작인 4대 칼리프의 계승 문제로까지 거슬러 올라가는데(문제는 그것만 다루고 갑자기 오늘의 중동 뉴스로 점프한다는 것), 이는 사실 난센스다. 수니파와 시아파가 갈라진 것이 지금으로부터 1300여년 전인 것은 맞지만, 현재 중동이 겪고 있는 고통의 역사적 기원을 이해하는 것이 공부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