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2022. 3. 18. 15:55

환경사회학 개론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환경사회학』(찰스 하퍼)에 기초하여 작성) 1. 환경사회학이란 무엇인가 ‘환경사회학’을 정의하기 위해선 먼저 근대적인 ‘자연과 문화의 이분법’에 대해 재사유해야 한다. 근대인은 사회문화현상과 자연현상을 분리해서 사고하는데 익숙하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문화-사회제도-사회구조-사회연결망 등과 같은, 자연환경으로부터 독립적인 ‘문화영역’을 향유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연환경의 영향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는 사고방식이다. 고전사회학 자체도 생물학적 결정론(biological determinism)을 배격하면서 발달한 바 있다. 고전사회학이 등장한 것이 산업사회의 태동과 시기적으로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닌데, 고전사회학이 전제하고 있는 ‘근대적 이분법’은 곧 초기 산업사회의 지배적인 ..

2022. 2. 14. 05:52

수나우라 테일러, <짐을 끄는 짐승들>을 읽고

장애학은 손상(impairment)과 장애(disability)를 구별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손상이 임상적, 의료적 개념이라면, 장애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개념이다. 장애학에서 장애란 치료되고 교정되어야 할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고, 실천적으로 극복되어야 할 ‘사회적 구성물’이다. 여기서부터 장애학은 이미 다른 어떤 정치철학의 전통보다도 더 파격적이다. 장애학은 담론이나 이데올로기의 차원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생물학(몸)을 극복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것(몸)’과 ‘정치적인 것’의 경계를 해체할 것을 요구하는 페미니즘의 정치학은 ‘장애학’의 수준에 이르러야 진정으로 그 급진적 면모를 다 드러내는 셈이다. 페미니즘이 자신의 논리의 일관성을 지킨다면 반드시 장애학으로 귀결되어야 ..

2022. 1. 12. 02:59

양적 완화란 무엇인가

양적완화는 아주 단순화하면 중앙은행이 민간 부실자산을 사줘서 민간은행들의 부도를 일단 막고 보는 것이다. 양적완화는 결과적으로 2008년 금융위기가 전세계적인 대공황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데 기여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저자는 지난 10여년간의 양적완화는 ‘은행을 위한 양적완화’였을 뿐, ‘모두를 위한 양적완화’가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자산을 사줬지만, 이 돈을 받은 기업과 은행들은 생산적인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자신들의 대차대조표를 개선하는데 집중했으며(디레버리징의 역설, 리처드 쿠의 ‘대차대조표 불황’ 이론), 자산가격은 지지되었지만 이것이 소비와 투자의 증대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지난 10여년간의 양적완화 ‘실험’은 기업과 은행의 부채를 탕감해줬을 뿐이고, 이들은 받은 돈..

2022. 1. 12. 02:54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를 읽고

내가 읽은 하루키 소설은 고등학교 시절에 읽은 과 스물한살 때 읽은 가 전부이다. 그의 대표작인 나 , 는 읽지 못했다. 앞으로도 그의 소설들을 더 읽게 될지는 모르겠다. 내가 느끼는 바로는, 하루키의 작품 자체보다, 대중적으로 그의 작품이 많이 읽히는(팔리는) ‘하루키 현상’을 비평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보다 진지한 자세이다. 그게 대세라는 암묵적인 분위기가 ‘교양독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인다(그런데 얼마전에 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 수록되어 새로 출판되었다. 과 까지는 ‘모던 클래식’의 범주에 든다는 민음사의 판단인 것일까?). 내가 기억하는 것으로만 한정해도, 와 는 출간 당시 국내에서 외국 작가의 장편소설로서는 이례적인 ‘열풍’을 일으켰다. 아마 하루키의 신작 장편소설이 또 ..

2022. 1. 12. 00:59

강성부, <좋은 기업 나쁜 주식 이상한 대주주>를 읽고

반복되는 내용이 많고 구성이 허술하다. 심지어 나무위키(!)를 각주로 달아 놓는 등 단행본으로 묶어 내기엔 부족함이 많다. 그러나 이 책은 기업지배구조 논의의 한국적인 맥락(한때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이 정치권의 주요 의제였던 적이 있었다. 요즘은 코로나 시대를 맞아 ‘기본소득’, ‘기본주택’ 등 ‘기본’시리즈가 경제정책의 주요 화두다) 및 그 주요 논점에 대해 현장감 넘치게 파악하게 해주는 보기 드문 책이다. 저자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인 ‘KCGI’의 대표로서 주주 자본주의 운동의 대표주자였다는 사실이 이 책의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다소 식상한 ‘노동자 대 자본가’의 구도가 아닌, ‘일반주주(국민연금) 대 대주주’의 구도로 문제를 바라보면 상당히 참신한 층위에서 논의를 파악할 수 있다. 저자의 ..

2022. 1. 9. 22:28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으로 본 세계경제 : 마이클 로버츠, <팬데믹 이후 세계경제>

저자인 마이클 로버츠는 영국의 맑스주의 경제학자로, 이 책은 그의 블로그 글 중 일부를 선별 번역하여 엮은 것이다. 어느 진영의 해석이 ‘맑스의 진짜 의도’에 부합하는지를 둘러싼 소모적인 순수성 투쟁이나 알튀세르 이후 펼쳐진 맑스에 대한 온갖 ‘정치철학적’ 주해에서 벗어나, 오늘날의 가장 첨예한 경제 이슈들에 대하여 맑스주의의 시각에서 일관되게 해설한 것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의 시선이 오늘날의 거시경제현상에 대해 주류경제학 못지않은 분석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시도를 통해 주류경제학과 맑스주의 경제학의 소통 가능성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주류경제학자들은 맑스주의 경제학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고, 맑스주의 경제학자들은 거시적인..

2022. 1. 1. 17:21

[서평] 읽는 직업 (이은혜)

출판의 세계 지인들이 내가 고르는 책의 제목을 보고 ‘그런 책은 누가 읽느냐’고 핀잔을 주는 일이 잦다. 그런데 사실 나도 의문이었다. ‘이런 책은 누가 낼까?’ 한국 출판계가 때로 존경스러운 것은, 정말 아무도 읽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을 척척 출판해낸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책들은 하나같이 매우 빠르게 절판되어 버린다. 『읽는 직업』은 인문사회출판사 ‘글항아리’의 편집장인 이은혜의 ‘직업 에세이’다. 글항아리는‘누가 이런 책을 읽을까’ 싶은 인문사회서적들을 많이 기획해내는 출판사 중 하나다. 나는 출판계의 자세한 사정이나 그 작동방식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그런 책들을 출판해주는 출판사에 대해서 막연한 ‘감사’와 ‘존경’의 마음과 더불어 엄청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은 저자의 출판 기획, ..

2022. 1. 1. 17:20

김시우 外, <추월의 시대>를 읽고

한국은 후진국인가? 한국정치는 논평자들에게 너무나 많은 근현대사 지식을 요구한다. 문제는 이 근현대사가 아직까지 제대로 합의된 적도 없다는 사실이다. 논평자들은 합의된 적조차 없는 역사에 대해서 ‘입장을 밝힐 것’을 강요받는다. 그리고 입장을 섣불리 밝혔다가는 ‘좌빨’ 아니면 ‘수꼴’로 낙인 찍힌다. 민주화 세대를 긍정하기 위해서 주사파까지 긍정할 것을, 산업화 세대를 긍정하기 위해서 유신헌법까지 긍정할 것을 강요받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합의된 적이 없다는 것은 근현대사의 두 당사자인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에게만 그렇다. 이 책의 저자들인 80년대생을 포함한 2030세대는 당사자가 아닌 ‘후세대’로서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여유’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는 서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