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주의 경제학으로 본 세계경제 : 마이클 로버츠, <팬데믹 이후 세계경제>

저자인 마이클 로버츠는 영국의 맑스주의 경제학자로, 이 책은 그의 블로그 글 중 일부를 선별 번역하여 엮은 것이다. 어느 진영의 해석이 ‘맑스의 진짜 의도’에 부합하는지를 둘러싼 소모적인 순수성 투쟁이나 알튀세르 이후 펼쳐진 맑스에 대한 온갖 ‘정치철학적’ 주해에서 벗어나, 오늘날의 가장 첨예한 경제 이슈들에 대하여 맑스주의의 시각에서 일관되게 해설한 것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의 시선이 오늘날의 거시경제현상에 대해 주류경제학 못지않은 분석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시도를 통해 주류경제학과 맑스주의 경제학의 소통 가능성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주류경제학자들은 맑스주의 경제학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고, 맑스주의 경제학자들은 거시적인 종말론에 집착할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현안에 대해 실사구시적(?)인 분석을 계속할 필요가 있겠다. (최근 사회진보연대의 한지원은 『자본주의는 왜 멈추는가』를 통해 비슷한 시도를 했다. 사회진보연대는 PD계열 이론가로 분류되는(90년대에는 알튀세르-발리바르 소개에 주력한) 윤소영 교수의 영향을 강하게 받은 조직이다(한지원은 책에서 자신의 시각이 윤소영 교수에 빚지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반면, 마이클 로버츠의 이 책은 트로츠키주의를 표방하는 국제사회주의 그룹(IS) ‘노동자 연대’의 출판사 ‘책갈피’에서 번역한 것이다. 두 진영의 입장 차이에 유념하며 둘을 비교해볼 수 있겠다. 여담으로, 최근 사회진보연대의 학생그룹인 ‘학생행진’은 이번 대선에서 윤석열을 지지하여 눈길을 끌었다. 사회진보연대는 유투브 등을 통해 지속적으로 이재명을 비판하고 있다.)

 

저자는 맑스의 자본주의 동학 분석의 핵심인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에 입각하여, 팬데믹 이후 세계경제는 V자형 회복이나 W자형 더블딥과 같은 ‘불황-회복형 경기순환’이 아닌, ‘뒤집어진 루트자형’의 장기불황 국면에 들어섰다고 진단한다. V자형이나 W자형 경기순환은 ‘불황-호황’을 반복하는 전형적인 자본주의 경제의 경기변동을 반영한다. 전형적인 자본주의 경기변동의 ‘목적’은, 불황기를 통해 고용을 줄이고 파산과 인수합병을 통해 체질개선을 단행하여(부실한 자본을 파괴하여) 궁극적으로는 이윤율을 회복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세계경제는 유휴설비가 많고(수요부족이 아니라 이윤율 하락으로 인한 자본의 투자인센티브 저하가 원인임) 부채가 과도하여 약간의 금리인상만으로도 대침체에 빠질 우려가 있는 취약한 ‘장기침체’ 상태이다.

 

맑스주의 경제학의 입장은 아주 독특하다. 맑스주의 경제학은 (케인지언과 달리) 철저히 실물(생산부문)중심적으로 사고한다는 점에서 ‘고전적’이다. 기업이 현금을 가지고도 투자하지 않는 이유는 유동성 선호 때문이 아니라 이윤율이 저하되어 투자할 동기가 없기 때문이다. 노동가치론에 충실하자면, 유통과정에서는 가치가 생겨날 수 없으므로 케인즈주의 경기부양책은 ‘유통 속임수’에 불과하다. 실물과 괴리된 자산가치의 상승 역시 결국 제자리로 돌아올 것이다. 동시에 맑스주의 경제학은 내생화폐론을 지지한다. 예금이 대출에 선행하는 것이 아니고, 대출(화폐수요)이 예금의 원인이다. 이들에게 자본주의 경제는 철저히 ‘화폐경제’이다. 그러나 맑스주의자들의 내생화폐론은 포스트 케인즈주의와는 뉘앙스가 전혀 다르다. 맑스가 보기에 화폐는 생산부문의 뒷받침이 있어야만 가치를 가지며, ‘자본주의적 생산으로 가치가 늘어난 상품을 더 많은 화폐를 받고 파는 과정이 있어야만’ 화폐량이 늘어날 수 있다(M-C⋯P⋯C-M'에서 M-M' 사이에는 생산(P)이 있어야 한다). 현대화폐론자들처럼 국가가 화폐를 무제한 발행할 수 있다는 것(국가가 화폐가치를 결정)은 근본적으로 화폐공급이 ‘자본주의적 순환의 바깥에서(외생적으로)’ 발생한다고 보는 것이다. 국가가 화폐를 발행하더라도, 화폐는 ‘자본의 일반공식’ 경로를 따라 ‘화폐자본가에서 시작해 노동착취와 축적을 통해 다시 화폐자본가로 돌아오는’ 과정을 겪는다. ‘화폐의 가치는 여전히 자본주의적 축적 과정에서 형성되는 (생산부문에서 결정된) 사회적 필요노동시간에 매여 있다’. 따라서 맑스주의 화폐론은 보다 일관된 내생화폐론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에게 화폐는 ‘교환가치의 표현’일 뿐이다.

 

맑스주의 자본주의 동학 분석의 핵심은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TRPF: Tendency of the Rate of Profit to Fall)’이다. 맑스에 따르면, 잉여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은 가변자본으로 구입한 노동력 뿐인데, 자본이 축적되는 과정에서 불변자본의 비중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으므로, ‘자본의 유기적 구성’은 고도화되고 이윤율은 하락한다. 그런데 여기엔 ‘잉여가치율’이 일정해야 한다는 가정이 숨어있다. 잉여가치율은 실제로 상승하기도 하는데, 이것이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에 대한 상쇄요인으로 작용한다. 예를 들어 자본가들은 잉여가치율을 높이기 위해 노동자 착취에 매달린다. 이런 상쇄요인들 때문에 이윤율 저하는 어디까지나 ‘경향적인’ 법칙이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의 고도화와 함께 그 상쇄요인들도 충분히 고려하는 것이 공정할 것이다.

저자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에 충실하며, 이를 경시하는 미하엘 하인리히와 데이비드 하비의 자본론 해석을 비판한다. 저자가 보기에 데이비드 하비는 이윤율의 저하법칙(3권)이 아닌 과소소비(2권)를 경제위기의 원인으로 꼽는 오류를, 피케티의 경우 ‘자본’의 개념을 잘못 정의한 채 자본수익률을 계측하는 오류를 범했다.

 

(그런데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 자체는 맑스주의 진영 내에서 거대한 논쟁의 중심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른바 ‘플랜논쟁’은 맑스가 원래 자본론을 6부작으로 계획(플랜)했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플랜논쟁은 기본적으로 현존하는 자본론이 맑스의 원래 '플랜'의 어느 범위까지를 반영하고 있는지에 대한 문헌 논쟁이지만, 그 입장에 따라서 운동과 혁명의 전략 및 자본주의에 대한 분석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에 자본론을 이해하는 데 있어 핵심이 되는 논쟁이다. 

 

‘플랜변경설’은 현존하는 자본론 '전반 3부'의 자본주의 분석이 (후반 3부에서 다룰 것으로 계획되어 있던) 세계시장분석을 전제로 하고 있다고 보기 때문에 현존하는 자본론 3부작만으로도 산업순환과 공황을 설명할 수 있다고 본다. 이 경우, 자본론 3권에 등장하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이 공황론의 중심이 된다. 이들은 이윤율의 저하법칙을 '근본적으로' 해석한다고 해서 흔히 '근본주의자'들로 불리며, 영국사회주의노동자당과 노동자연대의 입장은 이 입장을 따른다. 저자 마이클 로버츠의 하비-하인리히 비판도 이런 맥락에 놓여있는 것으로 볼 수 있겠다.

 

그러나 맑스가 6부작 플랜을 변경하지 않았다고 보는 ‘플랜불변설’은, 산업순환이나 공황은 현존하는 자본론 3부작의 범위를 초과하는 주제라고 본다. '국가독점자본주의론자'들은, 자본론에 등장하는 이윤율의 경향적 저하법칙은 '자본 간의 경쟁' 상황을 가정(이윤율 균등화)하여 자본의 순환법칙을 '이념적 평균 수준'에서 파악한 것에 불과하므로, 현실의 자본주의를 분석하기 위해선 '독점'이라는 <자본론> 바깥의 단계론을 도입해야 한다고 본다. 자율주의자들은 또다른 방식의 플랜불변설 옹호자들이다.) 

이 책의 백미는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를 좌지우지하고 있는 정책패키지인 ‘양적완화’ 패러다임과, 더 나아가 상시적 재정적자를 통한 완전고용 달성을 주장하는 현대화폐론(MMT)을 맑스주의의 관점에서 분석하는 대목이다. 물론 결론은 노동자 계급에 의한 생산부문의 장악과 전면적 재조직,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의 근본적 변혁이 아니면 모두 소용없다는 것이다. 그 밖에 독점과 인공지능에 대해서도 분석하고 있다. 소수 다국적 대기업의 시장지배력을 문제로 지적하는 ‘국가독점자본주의론자들’의 주장은 일견 타당하지만, 이들의 논리는 독점을 해체해서 경쟁을 회복시키는 것이면 충분하므로 자본주의적 생산양식 자체는 문제가 없다는 결론에 이른다는 한계가 있다. 또, 저자는 인공지능이 모든 일자리를 대체한 사회는 고대 로마 같은 노예제 사회에 가까울 것이며, 생산수단(로봇)을 소유한 이들과 그러지 못한 이들 사이의 근본적인 계급투쟁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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