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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6. 12. 00:04

상반기 독서: <한국 사회과학의 기원>과 <대륙법 전통>

늘 그렇듯 올 상반기에도 바빴다. 연초와 3월 즈음에 읽었던 두 책에 대한 단평을 업로드한다. 『한국 사회과학의 기원』 - 홍정완 저자의 역사학 박사학위 논문을 펴낸 이 책은 ‘사상사’ 연구를 표방한다. 역사학 연구의 특징인 것인지, 광범위한 사료를 제시하고 있을 뿐, 전체적으로 서사가 명확하지는 않다. 따라서 이 책이 제시하고 있는 자료들에 기초하여 나름대로 서사를 명료히 해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제목과 달리 ‘사회과학’ 자체는 이 책의 관심대상이 아니다. 정치학과 경제학을 중심으로 한국전쟁을 전후로 한 냉전기 한국의 (사회과학) 지식체계를 검토한 다음, 그것에 기초하여 전개되어 온 한국의 ‘근대화 담론’의 지형을 펼쳐 보이는 것이 책의 주된 관심이다. 냉전 시기의 사회과학 지식에 주목하는 것은 그..

2023. 4. 10. 18:30

김은정, <치유라는 이름의 폭력>을 읽고

‘근‧현대 한국에서 장애‧젠더‧성의 재활과 정치’라는 부제를 보고 손에 들었으나 꼼꼼히 읽지는 않았다. 제목을 보고 한국의 장애운동 및 장애 당사자에 대한 세밀한 에스노그라피를 예상했으나 문학작품 및 시각매체에 대한 문화비평을 주로 시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책의 서두에 언급하고 있는 ‘황우석 기념우표’에 이 책이 하고자 하는 말이 다 들어있다. 황우석 기념우표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의 단계로부터 점차 ‘이족보행’이 가능한 비장애인으로 ‘진화’하는 사람의 실루엣이 그려져 있다. 장애란 의학적 개입을 통한 ‘치유’의 대상이라는 ‘비장애 중심주의’ 이데올로기가 노골적으로 반영된 이미지인 것. 나의 최근 장애문제에 대한 관심과 고민의 핵심도 여기에 있다 – “장애는 존재해도 좋은가?”. 물론 장애는 그 자체로..

2023. 1. 8. 21:49

지식인과 실천: 임지현의 사례에 비추어

지식인과 실천: 임지현의 사례에 비추어 – 임지현, 를 읽고 - 1. 『역사를 어떻게 할 것인가』는 임지현의 학술적 자기-기술지이다(저자는 ‘에고 히스토리’라고 부른다). 나는 이런 책을 참 재밌어 하는 것 같다. 김경만의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 디디에 에리봉의 『랭스로 되돌아가다』, 이영석의 『삶으로서의 역사』에 이어 또 학자의 회고담이다. 이번 임지현의 책에 대해서는 지식인의 ‘실천’과 관련하여 생각한 바를 정리해보고자 한다. 김경만과 이영석이 모두 실천과 거리를 두면서 학자로서의 성실함, 김경만의 경우 특히 글로벌 지식장에 적극적으로 부딪히고 도전하는 방식의 치열함을 미덕으로 여겼다면, 임지현은 상대적으로 실천가적인 면모를 보인다. 그런데 그 실천이 특정 정파를 지지하는 식의 속류적인 방식이..

2023. 1. 5. 03:00

염운옥, <낙인 찍힌 몸>을 읽고

작년에는 유독 ‘이민’, ‘정체성’, ‘인종’ 등 문화정치학의 개념어들을 다룰 일이 많았는데 이 책을 통해 그것들을 다시 한번 곱씹어 볼 수 있었다. 이 책은 대중서로서 인종과 관련된 대중문화 컨텐츠 및 이슈들을 광범위하게 인용하며 ‘인종’이라는 문제적인 범주의 형성, 수행, 재생산의 과정을 추적한다. 결코 가볍지 않은 주제이나 마치 교양강의를 듣는 듯 무척 재미있게 서술되어 있어(실제로 저자의 대중강연이 책 집필의 계기가 되었다고 한다) 아주 흥미롭게 읽었고, 표지도 화려해서(?) 퍽 마음에 들었다. 중‧고등학생들을 상대로 이 책을 읽히면서 독서토론 수업을 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이 들만큼 내용이 풍부하면서도 서술은 평이해서 대중교양서의 한 모범을 보여주는 듯하다(최대다수의 독자를 상대로 한 대중서를 쓰..

2022. 8. 3. 02:30

<연구자의 탄생>과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

『연구자의 탄생』 - 김성익 외 대략 80년대에 출생했고, 90년대에 10대를 보낸, 2000년대 학번의, (이 책의 공저자 중 한 사람인) 안은별이 개념화한 바 있는 ‘IMF 키즈’ 세대에 속한 10명의 ‘인문학 연구자’들의 자기기술지(Auto-ethnography)로 기획된 책이다. 최근 대학에서는 분과별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인데, 이른바 ‘MZ 세대’인 내가 학교에서 마주할(하고 있는) ‘새로 부임한 젊은 교수’들이 대략 이 세대의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방금 MZ 세대를 검색해보니 ‘MZ세대’는 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출생집단을 통칭하는 개념이라고 한다 – 교수님, 우리 같은 세대였어요!) ‘연구노동자의 자기기술지’에 가까운 글도 있었고 자신들의 연구관심에 대한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