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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1. 12. 04:18

Now And Then

1. 태어나기도 전에 활동하던 옛날 가수를 좋아하는 것은 때로 불행이다. 그 가수의 라이브 공연이나, 신곡발매의 감격 같은 것은 일찌감치 포기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가 좋아하는 가수의 라이브 공연에서 연주되는 모든 노래를 따라 부르는 일의 즐거움이나, 그들의 신곡을 기다리는 일의 가슴 설렘을 평생 느끼지 못할 운명인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 무려 1960년대에 활동하던 밴드의 라이브 공연과 신곡발매를 모두 경험하게 되다니, 세상에 이런 기적이 있을 수 있는 것일까. 시간의 벽을 뚫고 도착한 음악이었기에 감격은 갑절이 되었다. 이 경우, 태어나기도 전에 활동하던 가수를 좋아하는 것은 불행이 아니라 행운이다. 혹은, ‘덕질은 반드시 보상받는다’. 2. 8년전, 폴 매카트니의 서울 공연을 직관한 것은 어..

2022. 10. 23. 17:17

김수아/홍종윤, <지금 여기 힙합>을 읽고

내 인생의 커다란 행운 중 하나는 정말 우연한 계기로 어렸을 때(만 9세!) 비틀즈를 통해 팝에 입문했다는 것이다. 자칭 ‘비틀매니아’ 출신이므로 한때 나에게 팝송은 무조건 밴드 음악과 로큰롤이었다. 나는 락의 족보를 그리려고 여러 번 시도하고 실패하기를 반복하는 과정에서 락 음악의 흐름과 지형에 익숙해지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나이답지 않게 이런 식의 우스갯소리가 낯설지 않다 – “세 보이고 싶다면 메탈리카, 메가데스, 슬레이어 같은 스래시 메탈을 좋아하는 척하면 된다. 이때 메탈리카는 살짝 무시하면서 슬레이어를 ‘빨거나’, 메가데스를 치켜세우면 그야말로 ‘락잘알’ 행세를 할 수 있다. 진짜로 ‘고인 물’인 것처럼 보이고 싶다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딥퍼플이나 블랙사바스를 점잖게 지지하면 되는데, 동시..

2022. 7. 30. 00:35

『달콤한 노래』(레일라 슬리마니)와 <기생충>(봉준호)

레일라 슬리마니의 『달콤한 노래』(2016)와 봉준호의 (2019)의 유사성은 “계급별로 거주하는 공간이 완전히 분리되다시피 한 후기근대사회에서 계급문제를 어떻게 서사화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당대 예술가들이 대응하는 방식에 어느 정도 정형화된 패턴이 있음을 시사한다. 계급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창작자는 먼저 하층 계급과 상층 계급을 ‘한 집’에 모아두어야 하는데, ‘보모’(달콤한 노래)나 ‘과외교사’(기생충)와 같은 ‘입주가사노동’은 아주 좋은 장치가 된다. 스탕달이 200여년전에 이미 『적과 흑』(1830)에서 이 방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입주가사노동 모티브’는 서사예술이 계층간 공간적 분리 문제를 해결하는 거의 필연적인 방법이라고까지 생각된다. (김기영의 (1960)까지!) 창작자는 이..

2022. 7. 5. 04:55

『종의 기원』(정유정)과 <헤어질 결심>(박찬욱)

어제 박찬욱 감독의 을 보고 실망했다. 나는 정서경 작가와 협업을 시작한 이후의 박찬욱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대사가 유치하고 서사와 메타포는 조잡하며 기교와 트릭이 과해서 영화에 해가 된다. 드라마 작가 김은숙의 대사는, 그것이 일종의 ‘밈’이 되어 전국민적인 인기몰이를 하곤 한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제아무리 ‘오글거릴지언정’ 최소한 대중의 (유치하지만 솔직한) 니즈에 복무하는 측면이라도 있는데, 정서경의 숱한 문어체 대사들은 당최 무엇을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없다(별로 코믹하지도 않다!). ‘오글거리는 문어체’라는 사실 자체보다 문제적인 것은, 그것이 뭔가 ‘진지한 의미를 담고 있는 체’하며 관객의 허영심에 호소한다는 ‘비윤리성’의 측면이다(외국인 관객에게는 이런 지점이 덜 거슬릴 수도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