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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8. 30. 18:40

<능력주의 3부작> 후기

능력주의 담론에 대해 응답해야 할 책무(?)를 느끼고 읽었다. 불평등 논의와 연계하여 훨씬 긴 글을 쓰다가 스케일이 너무 커지는 바람에 우선 간단히 감상만 먼저 남겨놓으려고 한다(정작 그 글은 언제쯤 완성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박권일의 와 김동춘의 는 모두 능력주의가 불평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이데올로기라는 점을 적절히 지적하고 있다. 능력주의는 일종의 사후 정당화 논리에 불과하다. 어떤 사람의 성취가 오롯이 ‘개인의 능력’으로부터 비롯한 것이라는 말도 안 되는 발상을 도대체 왜 공동체가 받아들여줘야 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능력주의 자체는 ‘성공한’ 당사자의 자아 도취이거나 자기 방어 논리에 불과하다. 너무 무기력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모든 것은 사실 운이다. 어떤 사람이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데..

2022. 12. 27. 23:57

벨 훅스, <모두를 위한 페미니즘>을 읽고

유명한 페미니스트 저술가 벨 훅스의 페미니즘 입문서이다. 페미니즘 입문서로 널리 읽히고 있다고 해서 일부러 시간을 내서 읽어보았다(나는 이미 몇 년 전에 벨 훅스의 또다른 저서 『페미니즘 – 주변에서 중심으로』를 읽은 바 있다). (저자의 문제의식을 대강 파악하고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예상하긴 했지만) 의외였던 것은 이 책이 국내에서 가장 대중적인 페미니즘 입문서 중 하나임에도, 기성 페미니즘에 대해서 시종일관 집요하게 비판적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페미니즘의 적이 ‘성차별주의와 그에 근거한 착취와 억압’임을 분명히 하면서, 페미니즘의 다양한 얼굴들 중 다른 정체성에 대해 적대적이고 배타적인 ‘과격한’ 부류는 사실상 ‘착취와 억압’에 동조하고 있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급진적(radical)’이지 않다고..

2022. 12. 13. 22:05

한국에서 “데이터 저널리즘”은 가능한가?

한국에서 “데이터 저널리즘”은 가능한가? – ‘나쁜 이대남 그래프 논쟁’을 중심으로 1. 분야를 막론하고 데이터에 기반한 의사결정 및 현상 분석이 각광받기 시작하면서 저널리즘 영역에서도 데이터를 활용하여 사실을 전달하는, 이른바 ‘데이터 저널리즘’을 구현하고자 하는 시도가 등장하고 있다. 국내에서는 ‘지식 컨텐츠 스타트업’을 표방하는 ‘언더스코어’와 SBS 탐사보도 팀 ‘마부작침’이 데이터 저널리즘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으며, 한겨레, KBS 등 기성 미디어도 외부 전문가와 협업하여 도출해낸 데이터 분석결과를 보도에 활용하기 시작했다. 여기엔 이른바 ‘데이터 민주주의 시대의 도래’라는 범 시대적 맥락이 기본적으로 깔려 있다. 국가 및 지자체가 축적한 행정데이터를 ‘공공데이터’라는 이름으로 공개하고, R..

2022. 8. 25. 23:23

김종영,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읽고

개인적으로 김종영 교수(이하 존칭 생략)의 애독자이다. 그는 이철승 교수와 함께 한국사회의 중요하고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현역 사회학자로서 회피하는 기색 없이 ‘정면승부’하는 탁월한 비판적 지성인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연배도 비슷하다. “지식과 권력 3부작(『지배 받는 지배자』, 『지민의 탄생』, 『하이브리드 한의학』)” 다음으로 김종영이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는 ‘교육사회학’이다. 이전에도 강준만(“서울대의 나라”)이나 김상봉(“학벌사회”) 같은 ‘대학교수’들이 학벌문제에 대해 개탄하는 목소리를 낸 적은 있었지만, 대부분 학벌이 갖는 ‘지위재’로서의 성격을 강조하는데 그쳐 구체적인 대안을 도출하는 데는 한계를 보였다. 김종영은 대학 학벌의 ‘지위재’로서의 성격에 충분히 주목하는 동시에, 현대 지식자..

2022. 1. 1. 17:20

김시우 外, <추월의 시대>를 읽고

한국은 후진국인가? 한국정치는 논평자들에게 너무나 많은 근현대사 지식을 요구한다. 문제는 이 근현대사가 아직까지 제대로 합의된 적도 없다는 사실이다. 논평자들은 합의된 적조차 없는 역사에 대해서 ‘입장을 밝힐 것’을 강요받는다. 그리고 입장을 섣불리 밝혔다가는 ‘좌빨’ 아니면 ‘수꼴’로 낙인 찍힌다. 민주화 세대를 긍정하기 위해서 주사파까지 긍정할 것을, 산업화 세대를 긍정하기 위해서 유신헌법까지 긍정할 것을 강요받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 합의된 적이 없다는 것은 근현대사의 두 당사자인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에게만 그렇다. 이 책의 저자들인 80년대생을 포함한 2030세대는 당사자가 아닌 ‘후세대’로서 역사를 객관적으로 바라볼 ‘여유’를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산업화 세대와 민주화 세대는 서로..

2021. 12. 26. 20:06

[서평]『프로보커터』 - 김내훈

‘프로보커터’는 주목경제(Economics of attention, 마이클 골드하버) 시대의 산물이다. 인터넷 세상 속에서 정보는 무한에 가까운 반면, 소비자의 ‘주목(관심)’은 한정되어 있어 어떻게 해서든 소비자의 관심을 끄는 것이 주목경제의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주목경제’는 소비자의 눈길 한번이 실질적인 ‘장사’의 의미를 갖는 시대를 표상한다. 프로보커터는 주목경쟁을 위해 사회적 금기를 넘어서는 엽기적인 퍼포먼스나 특정 집단에 대한 황당무계한 도발을 일삼는 인플루언서들, 그 중에서도 모종의 정치적 색깔을 가미해서 영향력을 행사하려고 하는 이들을 일컫는 말이다. 전위적인 문화적 퍼포먼스를 통한 정치적 저항은 원래 좌파문화정치의 기획이었다. 그러나 위반의 쾌락 자체를 동력으로 하는 이들의 전략은,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