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 이후 민주당 서사의 보편화: 한국적 사법통치와 검찰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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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란 이후 민주당 서사의 보편화:
한국적 사법통치와 검찰개혁 (Working Paper)
검찰개혁은 하루하루 노동하며 생계를 이어가는 다수의 평범한 시민들에게는 와닿지 않는 의제인 측면이 있다. 평범한 사람이 형사사건에 연루되어 검찰조사를 받는 일은 평생에 걸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일이어서, 검찰개혁을 일반 시민의 즉각적인 복리증진 및 자유의 확장과 연결시켜 감각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조국 사태 직후 민주당발 검찰개혁 의제가 일반 시민들의 공감을 사지 못하고 정부-여당이 개혁의 동력을 상실했던 것은 그 탓이다. 요컨대 검찰의 정치보복성 수사와 기소를 두려워해야 하는 정치인들과 그 열성적 지지자들에게는 검찰개혁이 절박한 문제일지 몰라도, 그것이 민주당의 정파적 이해를 넘어 범국민적 관심사가 되어야 하는 가장 시급한 사안인 것은 아니라고, 다수 시민은 생각했다.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에 의한 정권교체가 이루어지고 만 것은 그렇게 생각하는 시민이 그렇지 않은 시민보다 적어도 0.73%만큼 더 많았다는 방증이며, 민주당은 그러한 현실에 대해 마땅히 반성해야 했다.
그런데 검찰총장 출신 대통령에 의해 군사반란이 벌어진 현 상황은 우리로 하여금 검찰개혁 문제를 근본에서부터 재고하도록 요구한다. 그동안 민주당 계열 인물들이 자주 ‘검찰’을 ‘군부’에, ‘검사들의 집단행동’을 ‘쿠데타’에 비유해온 것이 결과적으로 합당한 인식이었음을 우리는 새삼 확인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검찰 문제’를 12.3 내란 사태의 구조적, 역사적 배경이라고 볼 수 있다면, 검찰개혁을 민주주의 공고화의 필요조건으로 이해하는 ‘민주당 내러티브’는 보편적 설득력을 지닌 것이 된다.
제5공화국 시절의 ‘민주 대 반민주’ 구도를 대전제로 하는 ‘민주당 내러티브’를 검찰개혁 논의에 확장하는 것에 동의한다면(尹의 쿠데타로 인해 그것이 서사적으로 타당해졌다), 그리하여 참여정부 이래의 검찰개혁 시도들을 ‘장기 민주화운동사’에 편입시킬 수 있는 것이라면, 한국의 검찰 문제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한 폭력집단’인 검찰의 폭력성을 어떻게 민간이 통제할 것인가 하는 문제로, 기존의 법조사회학이나 헌법정치론으로는 포섭할 수 없는 지극히 한국적인 현상으로서 ‘한국적 사법통치(Korean Juristocracy)’라는 새로운 정치학적 인식 틀을 요청한다.
‘사법 적극주의’, ‘정치의 사법화’에 대한 영미권의 비판적 논의에 비추어 볼 때 행정부에 속하는 검찰을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는 이유로 유독 자주 비판하는 한국의 논의 관행은 이례적이다. 사법부의 법 해석 독점에 의한 입법부(민주정치)의 무력화가 ‘정치의 사법화’, ‘사법 적극주의’ 비판의 보편적인 맥락이라면, 한국의 경우는 그보다 검찰이 정치과정에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것 자체가 문제된다. 한국에서는 주로 형사사건에서 검찰이 유력정치인에 대하여 구속영장을 청구하거나, 기소하여 유죄 취지 확정판결을 법원에 요청하는 경우에 비로소 법원의 정치개입이 문제된다. (한국에서 탄핵심판이 대중적으로 형사사건과 혼동되는 것은 의미심장한 현상이다). 검찰이 주도하고 법원은 소극적으로 반응하는 구조이고, 사법부에 의한 입법부 무력화가 아니라 행정관료인 검찰에 의한 유력 정치인의 개별적 제거가 본질이다. 이는 한국정치가 인물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처럼 한국 검찰의 행태는 법을 활용한 정치투쟁 행위의 성격을 강하게 띠기 때문에 보편적인 의미의 ‘정치의 사법화’ 논의와는 결을 달리한다. 한국사회에서 검찰은 행정부의 부처이거나 (준)사법기구라기보다, 사실상 독자적인 정치세력으로서 50석 정도(검찰 간부를 모두 합한 숫자)의 의석을 가지는, 보수정당과 느슨한 연대관계에 있는 ‘정당’에 가깝다. 이들을 두고 ‘선출되지 않은 권력’이라고 비판하는 것이 한국에서 설득력을 갖는 것은 그러한 맥락이다. 이것이 한국에서 ‘법과 정치’ 간 긴장 문제가 갖는 특이성이다.
이와 같은 '한국적 사법통치' 개념을 구체화하기 위해선 기존의 비교법조사회학 논의, 법률가-내-문화기술지 접근에 기반한 검찰 조직문화 논의, 그리고 참여정부 이래의 검찰개혁 시도들과 그에 대한 반동의 양상을 자세히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한국에서 검찰개혁 문제는 행정조직 운용실무상 문제이거나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의 개정과 같은 입법기술상의 문제인 것이 아니라 신생민주주의 국가의 민주주의 공고화 경로에 관한 정치사회학적 탐구대상이 된다.
한국적 사법통치의 청산을 민주주의 발전과 연관짓는 '민주당 내러티브'가 (내란 사태를 계기로 하여 비로소) 민주당 지지자들을 넘어 전국민의 합의된 서사가 되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면, 지난 총선에서 정의당의 실패와 조국혁신당의 성공의 원인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다. 검찰개혁 의제가 좌우를 넘어서는 보편적 의제인 것이라면, 한국사회의 '왼쪽' 역시 검찰문제에 대해서만큼은 민주당과 한 목소리를 내야만 했다. 그러나 정의당은 이재명 대표 체포동의안에 찬성하고 양당 적대정치 운운하며 민주당의 '검수완박법'에 공식적으로 반대했다. 정의당 실패의 중대한 한 원인은 검찰개혁 의제가 지닌 보편성과 시대성을 읽지 못한 무능함과 나태함에 있다고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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