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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 12. 05:42

이관휘,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를 읽고 (+번외)

개인적으로 경영학이 지나치게 ‘속물(?)학문’ 취급당하는 것이 불만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가장 중요하고 큰 비중을 차지하는 행위자는 단연 기업일 텐데, 그 기업 행동의 일반원리를 제시하는 학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경영학(business-administration)만큼 중차대한 학문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야 경영학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사실 경영학과 별로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서 인상비평만 할 수 있을 뿐이지만, 대학생들에게 일반적으로 경영학은 학문적인 논의의 대상이라기 보다 ‘회계사(CPA) 수험과목’이거나 ‘취업이 잘되는 전공’에 불과하다. 경영학은 그 내부에서 뭔가 비판적인 논의나 대안제시가 불가능한 학문인 것처럼 느껴진다.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는 경영학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

2023. 1. 3. 02:34

권석준, <반도체 삼국지>를 읽고

미‧중 패권경쟁의 전선이 기술 및 산업 영역까지 번지면서 이제 국제정치에 대해 말하기 위해 반도체 제조기술까지 공부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 책은 ‘경제안보’가 화두로 떠오른 최근의 국제정치적 맥락을 비교적 충실히 고려하면서 반도체 산업의 역사와 최근의 기술적 쟁점을 소개하고, 한국 반도체 산업이 나아가야 할 길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이 주식 투자자 독자를 염두에 둔 반도체 기술 관련 서적들과 차별화되는 지점이다. 다만 서술의 밀도가 균일하지 않고 구성도 그다지 유기적이지 않아서 단행본으로서의 완결성은 떨어지는 편이다. 1. 반도체 산업 주도권 이행: 미국에서 일본으로 역사적으로 반도체 산업의 주도권은 미국(70년대), 일본(80년대 초‧중반), 한국과 대만(2000년대)으로 ‘서진’해왔다. 20..

2022. 1. 12. 02:59

양적 완화란 무엇인가

양적완화는 아주 단순화하면 중앙은행이 민간 부실자산을 사줘서 민간은행들의 부도를 일단 막고 보는 것이다. 양적완화는 결과적으로 2008년 금융위기가 전세계적인 대공황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데 기여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저자는 지난 10여년간의 양적완화는 ‘은행을 위한 양적완화’였을 뿐, ‘모두를 위한 양적완화’가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자산을 사줬지만, 이 돈을 받은 기업과 은행들은 생산적인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자신들의 대차대조표를 개선하는데 집중했으며(디레버리징의 역설, 리처드 쿠의 ‘대차대조표 불황’ 이론), 자산가격은 지지되었지만 이것이 소비와 투자의 증대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지난 10여년간의 양적완화 ‘실험’은 기업과 은행의 부채를 탕감해줬을 뿐이고, 이들은 받은 돈..

2022. 1. 12. 00:59

강성부, <좋은 기업 나쁜 주식 이상한 대주주>를 읽고

반복되는 내용이 많고 구성이 허술하다. 심지어 나무위키(!)를 각주로 달아 놓는 등 단행본으로 묶어 내기엔 부족함이 많다. 그러나 이 책은 기업지배구조 논의의 한국적인 맥락(한때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이 정치권의 주요 의제였던 적이 있었다. 요즘은 코로나 시대를 맞아 ‘기본소득’, ‘기본주택’ 등 ‘기본’시리즈가 경제정책의 주요 화두다) 및 그 주요 논점에 대해 현장감 넘치게 파악하게 해주는 보기 드문 책이다. 저자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인 ‘KCGI’의 대표로서 주주 자본주의 운동의 대표주자였다는 사실이 이 책의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다소 식상한 ‘노동자 대 자본가’의 구도가 아닌, ‘일반주주(국민연금) 대 대주주’의 구도로 문제를 바라보면 상당히 참신한 층위에서 논의를 파악할 수 있다. 저자의 ..

2022. 1. 9. 22:28

마르크스주의 경제학으로 본 세계경제 : 마이클 로버츠, <팬데믹 이후 세계경제>

저자인 마이클 로버츠는 영국의 맑스주의 경제학자로, 이 책은 그의 블로그 글 중 일부를 선별 번역하여 엮은 것이다. 어느 진영의 해석이 ‘맑스의 진짜 의도’에 부합하는지를 둘러싼 소모적인 순수성 투쟁이나 알튀세르 이후 펼쳐진 맑스에 대한 온갖 ‘정치철학적’ 주해에서 벗어나, 오늘날의 가장 첨예한 경제 이슈들에 대하여 맑스주의의 시각에서 일관되게 해설한 것이 대단히 인상적이었다. 무엇보다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의 시선이 오늘날의 거시경제현상에 대해 주류경제학 못지않은 분석력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이런 시도를 통해 주류경제학과 맑스주의 경제학의 소통 가능성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니 주류경제학자들은 맑스주의 경제학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가질 필요가 있고, 맑스주의 경제학자들은 거시적인..

2021. 12. 23. 17:42

부동산 뉴스를 이해하기 위한 배경지식 총정리

(이 글은 김수현의 를 바탕으로 작성되었음) 부동산 정책에 대해 논할 때는 항상 세 가지를 고려해야 한다. 1) 재화의 특성 부동산은 소비재 중에서 생산기간이 가장 긴 재화로, 공급이 시장에 반영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이 길다. 따라서 수급 불균형이 해소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린다. 이 때문에 가격이 오르면 소비자들은 상승세가 계속될 것으로 착각하여, 수요가 억제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늘어나는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 또, 부동산은 소비재인 동시에 투자재이다. 부동산은 희한하게도 사용할수록 입지나 개발여건(재건축)이 달라져 그 가치가 올라간다. 부동산을 담보로 제공하여 대출을 받는 것도 가능하다. 이처럼 부동산은 일반적인 재화와 성격을 달리하기 때문에 다양한 특이현상을 수반할 수밖에 없다. 2) 주택보급률과 ..

2021. 12. 23. 17:14

하노 벡 외, <인플레이션>을 읽고

화폐의 역사를 다룬 책은 꽤 많다. 이 책은 그 중에서 독일에서 나온 버전이다. 중간중간 어색한 번역 탓인지 학술 교양서라기엔 저렴(?)하게 느껴지고(간혹 비문도 있다), 투자서라기엔 너무 학구적이다. 그런데 이제 보니 비슷한 주제의 책을 쓴 독일 저자들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확인된다. 아마도 독일이 20세기 초반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나라이자 두 번의 화폐개혁을 성공시킨 나라로서 이 문제와 인연이 깊어서 그런 것 같다. [어색한 번역: 최고가 규정(66페이지) -> 최고가격제 /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체제(153페이지) ->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자유주의). 그리고 ‘금융정책’보다는 ‘통화정책’이 좀 더 일반적인 표현이다.] 경제학 교과서에 흔히 등장하듯이, 인플레이션이란 전반적인 물가수준의 지속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