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관휘,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를 읽고 (+번외)

개인적으로 경영학이 지나치게 ‘속물(?)학문’ 취급당하는 것이 불만이다.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가장 중요하고 큰 비중을 차지하는 행위자는 단연 기업일 텐데, 그 기업 행동의 일반원리를 제시하는 학문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경영학(business-administration)만큼 중차대한 학문도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야 경영학에 대해 잘 모르기도 하고 사실 경영학과 별로 상관이 없는 사람이라서 인상비평만 할 수 있을 뿐이지만, 대학생들에게 일반적으로 경영학은 학문적인 논의의 대상이라기 보다 ‘회계사(CPA) 수험과목’이거나 ‘취업이 잘되는 전공’에 불과하다. 경영학은 그 내부에서 뭔가 비판적인 논의나 대안제시가 불가능한 학문인 것처럼 느껴진다.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는 경영학의 본질에 대해서 생각하게 해주는 좋은 물음이라고 생각한다. 현재 단계에서 그 답은 물론 ‘주주’다. 기업이 자금을 조달하기 위한 방법으로는 채권자에게 돈을 빌리는 방법(부채)과 기업을 주식시장에 상장하여 주주를 모집하는 방법(자본)이 있는데, 높아진 기업가치에 대하여 주주는 채권자에 비해 후순위 권리자, 즉 ‘잔여청구권자’(채권자가 회수하고 남은 부분에 대한 청구권)이다. 채권자는 빌려준 돈만큼만 보장받으면 되지만 주주는 투자한 돈 이상을 거두어 들이기 위해 위험을 감수하고서라도 기업가치를 높이고자 한다. 결국 “기업의 유일무이한 사회적 책임은 회사의 자원을 활용해 회사의 이익을 극대화하는 활동을 실행하는 것이다”라는 밀턴 프리드먼의 언명을 따를 때, 회사의 이익 극대화를 가장 원하고, 그걸 위해 행동할 경제주체는 ‘주주’이므로 회사는 주주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는 ‘주주 우선주의’ 원칙이 정당화된다. 이 원칙에 따라 주주가 미래에 받게 될 배당금(현금흐름)의 총합을 현재가치로 환산한 순현재가치(NPV)가 음(-)이 되도록 경영이 이루어지면 원칙적으로 배임이 된다.

그런데 기업과 관련된 ‘이해관계자’는 주주만이 아니라는 것이 문제다. 경영자와 채권자는 물론 소비자, 노동자-임직원, 나아가 국가와 사회, 지구의 자연환경도 기업의 행동에 따라 각기 다른 이해득실을 경험한다.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는 노동자도 기업의 주인으로서의 성격이 있다고 보아 노동이사를 선임하고 있고, 최근 유행하는 ESG 경영 담론은 기업이 지구환경(Environment)에 대해 책임질 것을 강조한다.

이 책은 먼저 주주 우선주의 원칙 하에서 같은 주주들 사이에서도 대주주인지 소액주주인지, 단기투자자인지 장기투자자인지에 따라 이해관계가 다르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이런 이해 상충의 문제를 한 마디로 집약해주는 개념이 ‘대리인 문제’다. 이 문제는 대표적으로 주주와 경영자 사이에서 발생한다. 경영자는 기업의 적정 주가를 알고 있지만 주주는 그렇지 못해서 여러가지 비용이 발생하는데,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법은 주주와 경영자의 운명을 일치시키거나 경영자에 대한 감시를 강화하는 것이다. 경영자에게 스톡옵션을 제공하면 대리인인 경영자가 주주와 이해를 공유하게 되므로 대리인 문제를 완화할 수 있다. 감시를 강화하는 방법은 다양한데 감시의 주체인 이사회와 대주주는 물론, 기관투자자의 공매도 및 외부로부터의 인수합병 시도도 감시의 기능을 수행할 수 있다.

대주주가 지배주주로서 경영자에 대한 감시역할을 제대로 수행하면 소액주주는 일종의 긍정적인 외부효과를 누릴 수 있다. 반대로 대주주가 이익추구 과정에서 소액주주에게 손해를 주는 경우도 있는데 이를 ‘터널링’이라고 부른다. 한국에서 터널링 사례는 주로 재벌 그룹의 경영 승계 과정에서 찾아볼 수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 저가발행 사건과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 저가발행 사건이다.

대주주에 의한 소액주주 이익 훼손은 기업분할 과정에서도 발생한다. 물적분할은 주로 기업이 특정 사업부를 분리‧정리하여 상장할 때, 인적분할은 지주회사 체제로 전환 시 활용된다. 유망사업부문이 물적분할로 독립되어 떨어져 나올 경우 모회사의 주가가 하락하면서 모회사 주주들이 손해를 보게 된다(모회사 디스카운트). 인적분할을 통한 지주회사 체제로의 전환은 소위 ‘자사주의 마법’이라고 불리는 편법 지배력 강화 방법인데 처음 들으면 이해가 좀 어렵다. 원래 인적분할을 하면 기존 주주들은 분할된 두 회사에 대하여 동일한 지분을 가지게 되지만 분할된 두 회사끼리는 서로 아무런 관계가 없다. 그런데 인적분할 전에 자사주를 매입해두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자사주 매입 후 인적분할을 하면 분할 후 지주회사가 자회사에 대하여 매입해둔 자사주 만큼의 지분을 가지게 된다. 여기에 총수일가가 두 회사에 대해 동일하게 가지고 있는 지분을 지주회사에 몰아주기 위해 자회사 주식을 지주회사에 현물 출자하면 추가 출연 없이도 오너 일가의 지배력은 공고해지지만 지주회사 주가가 크게 하락하여 소액주주들에게 피해를 준다.

출처: 지주회사 전환 ‘마술’…재벌일가 지분율 2배 껑충 (한겨레. 2018. 11. 13)

터널링과 반대되는 개념으로는 ‘프로핑’이 있는데, 시장에서 재벌 그룹의 계열사들끼리 서로 도와줄 것을 기대하여 영업이익과 관계없이 그룹 계열사들의 주가가 동반 상승하는 현상을 말한다. 그런데 재벌 그룹이 계열사들끼리의 내부거래를 통해 부당하게 사익을 편취(편법 승계 등)하는 것은 ‘일감 몰아주기’로 규제의 대상이 된다.

‘ESG 경영’에서 E(환경)와 S(사회적 가치)는 비교적 이해와 납득이 쉬운데, G(지배구조)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한국 기업들에게는 E와 S에 비해 덜 부각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책은 기업지배구조의 개선과 소액주주 보호가 정보불균형을 줄여서 해당 주식 시장의 체계적 위험을 감소시킬 수 있다는 실증연구를 제시한다. 세계적으로는 주주 우선주의를 넘어서자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데, 한국은 (소액)주주 우선주의 원칙조차 잘 지켜지지 않고 있으니 E나 S도 좋지만 G(거버넌스) 개선에 더 신경 쓸 필요가 있겠다.

기본적으로 교과서적인 내용을 쉬운 언어로 잘 풀어낸 책이라서 누구에게나 추천할 만한 좋은 책이다. 경영학‧재무경제학의 초보자들은 입문용으로 여러 번 읽어보면 좋겠고, 전공자들의 경우에도 이 책을 경영학 실증 연구 모음집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인 이관휘 교수는 재무경제학 학위 이외에 통계학 석사학위를 따로 가지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이 책에 흥미로운 실증 연구 사례들을 다수 언급하고 있다. 이 책에 인용되어 있는 논문들만 살펴봐도 실제 계량경영 연구가 어떤 주제에 대해 어떤 방법으로 이루어지는지 감을 잡을 수 있다.

 

[번외] 경영학 도서리스트

내가 느끼기로 인문학 쪽 논의에 익숙한 사람들은 경영 관련서는 거의 읽지 않는다. 소위 ‘경영 관련서’들이 책에 미달하기 때문이다. 많이 읽히는 경영서들은 주로 ‘~무작정 따라하기’ 류의 실용서이거나 투자서, 혹은 특정 경영인의 리더십에 대한 ‘용비어천가’ 부류의 책들이다. 이런 책들은 별로 과학적이지도 않고 기업 ‘현상’에 대해 진지하게 접근하지 않으며 자기계발 및 감상주의적 에세이의 성격이 강하다는 점에서 사실 책이라기보다는 ‘찌라시’에 가깝다.

그러나 앞서 언급했듯이 기업은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주요 행위자이기 때문에 자본주의를 문제삼고 싶다면 인문학이나 사회과학을 하는 사람들도 ‘기업 현상의 이해’라는 관점에서 경영학의 논의를 의식적으로 따라갈 필요가 있다. ‘기업 현상’이라 함은, 인류가 길드 형태의 초보적인 기업으로부터 출발하여, 소유와 경영을 분리하는 주식회사 체제를 도입하여 기업으로 하여금 기존보다 훨씬 큰 위험을 감수할 수 있게 함으로써 대규모 혁신이 가능해지고, 오늘날에는 주주와 경영자, 대주주와 소액주주, 인수 기업과 피인수 기업 간의 치밀한 전략 싸움으로 나타나는, 일련의 기업 행위를 하나의 역사적이고 정치적인 인류의 ‘문화 현상’으로 바라보자는 나의 제안이다. 한국의 경우 법망을 피해 아버지가 아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자 하는 눈물겨운 부정(父情)과 같이 대단히 인간적인 현상도 경영학의 눈을 통해 이해해볼 수 있다.

아래의 책들은 그러한 관점에서 서술되었을 것으로 예상되는 경영서들의 리스트이다. 내가 읽은 책도 있고, 훑어보기만 한 책도 있으며, 읽지 않은 책도 있으나, 책에 관한 한 나의 안목은 비교적 나쁘지 않은 편이므로 대부분 양서일 것이다. 이 책을 시작으로 아래의 책들을 골라서 읽어보면 웬만한 경영학도들보다 기업현상에 대해 입체적인 시각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은 나 자신이 참고하기 위한 리스트이기도 하다. 

기업지배구조‧회계 이슈
김상봉, 『기업은 누구의 것인가』 (2012)
헨리 한스만, 『기업 소유권의 진화』 (2017)
강성부, 『좋은 기업 나쁜 주식 이상한 대주주』 (2020)
신장섭, 『기업이란 무엇인가』 (2020)                 
천준범, 『법은 어떻게 부자의 무기가 되는가』 (2020)
린 스타우트, 『주주 자본주의의 배신』 (2021)
박상인, 『재벌 공화국』 (2022)
최종학, 『숫자로 경영하라 1~5』 (2009~2022)
경영전략
고토사카 마사히로, 『경영전략의 역사』 (2020)
미타니 고지, 『경영전략 논쟁사』 (2020)
존 미클스웨이트‧에이드리언 울드리지, 『경영의 대가들』 (2012)
로렌스 프리드먼, 『전략의 역사 1, 2』 (2014)
경영사
존 미클스웨이트‧에이드리언 울드리지, 『기업, 인류 최고의 발명품』 (2011)
스즈키 요시타카‧다이토 에이스케‧다케다 하루히토, 『국제경영사』 (2010)
김종현, 『경영사』 (2015)
알프레드 챈들러, 『보이는 손 1, 2』 (2014)
로버트 J. 고든, 『미국의 성장은 끝났는가』 (2017)
 
[푸른역사 한국 근대 산업의 형성 시리즈]
오진석 『한국 근현대 전력산업사, 1898~1961』 (2021)
양정필 『근대 개성상인과 인삼업』 (2022)
배성준 『한국 근대 공업사 1876~1945』 (2022)
최병택 『한국 근대 임업사』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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