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성부, <좋은 기업 나쁜 주식 이상한 대주주>를 읽고

반복되는 내용이 많고 구성이 허술하다. 심지어 나무위키(!)를 각주로 달아 놓는 등 단행본으로 묶어 내기엔 부족함이 많다. 그러나 이 책은 기업지배구조 논의의 한국적인 맥락(한때 ‘경제민주화’와 ‘재벌개혁’이 정치권의 주요 의제였던 적이 있었다. 요즘은 코로나 시대를 맞아 ‘기본소득’, ‘기본주택’ 등 ‘기본’시리즈가 경제정책의 주요 화두다) 및 그 주요 논점에 대해 현장감 넘치게 파악하게 해주는 보기 드문 책이다. 저자가 경영참여형 사모펀드인 ‘KCGI’의 대표로서 주주 자본주의 운동의 대표주자였다는 사실이 이 책의 큰 장점으로 작용한다. 다소 식상한 ‘노동자 대 자본가’의 구도가 아닌, ‘일반주주(국민연금) 대 대주주’의 구도로 문제를 바라보면 상당히 참신한 층위에서 논의를 파악할 수 있다.

 

저자의 문제의식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 주식의 저평가)’의 원인을, (흔히 언급되듯 ‘분단으로 인한 안보 리스크’가 아니라) ‘주주민주주의 미숙’과 ‘한국식 경영의 후진성’에서 찾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과도한 상속-증여세로 인해 재벌은 ‘편법 상속(자사주 마법과 지주회사 전환)’을 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지배구조는 왜곡되고 이사회의 독립성은 훼손된다. 소유 경영자의 독단적인 경영으로 인해 손해를 보는 것은 일반주주들(+국민연금 및 퇴직연금)이다. 외국인은 이런 리스크를 감당해가며 한국에 투자할 이유가 없다. 따라서 주주 민주주의의 원칙들을 확립하고 스튜어드십 코드를 비롯한 ‘주주 행동주의’를 도입하여 이사회의 독립성을 회복하고 지배구조를 개선할 것이 요구된다(미국에서 주주 행동주의 운동은 우리나라와 달리 전문 경영의 문제점을 지적하면서 등장했다. 전문경영 하에서는 책임 있는 지배주주가 없기 때문에 단기적이고 근시안적인 현상유지식 투자만 이루어지거나 경영인의 도덕적 해이의 문제가 생긴다. 우리나라는 대우조선 해양이 대표적이다).

 

우리나라의 상속-증여세는 1) 과세방식(취득과세가 아닌 유산과세) 2) 높은 세율 및 낮은 공제한도 3) 최대주주 주식에 대한 할증 평가 과세 4) 과세 시점의 비합리성으로 인해 주요국 대비 세부담이 과도하다. 과도한 상속-증여세로 인해 승계할 지분 자체가 크게 줄면 경영권을 자녀에게 물려줄 수 없게 된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빈번한 편법/꼼수 상속은 도덕적 해이 문제이기 이전에 경영권 상속 자체를 금지하다시피 하는 세금 제도 하에서 오너들이 자녀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기 위해 벌어지는 촌극에 가깝다. 차라리 경영권 세습 자체를 금지한다면 모를까, 세금을 아무리 올려도 오너들은 자식에게 경영권을 물려줄 방법을 결국 찾아낼 것이다. 실제로 이렇게 높은 세율에도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각종 꼼수를 통해 세금을 거의 내지 않아도 되는 길이 열려 있다.

 

편법 상속 과정에서 대주주들이 주식이 저평가되기를 바라게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은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대표적인 꼼수는 ‘자사주의 마법’과 ‘지주회사 전환’이다). 이 과정에서 손해를 보는 것은 소액주주들이다. 소액(일반)주주들이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우리나라 주식 시장에 기본적인 주주 민주주의의 원칙들조차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부실한 규제를 틈타 일감 몰아주기 등을 통해 대주주들은 세금을 거의 부담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 벌어진다. 그렇다면 지속가능한 기업 생태계를 위해 세율을 합리화하여 탈세동기를 줄이되 포괄적인 규제를 통해 탄탄한 주주 민주주의를 확립하는 ‘빅 딜’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저자는 이외에도 행동주의 펀드가 주주이익과 기업지배구조 개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행동주의 펀드의 유형으로는 ‘지배구조 관련요구(Board related activism), M&A 액티비즘, 밸런스 시트 액티비즘, 오퍼레이셔널 액티비즘이 있다). 행동주의 사모펀드(PEF) 말고 연기금이 적극적으로 경영에 참여하는 것은 ‘스튜어드십 코드’라고 부른다(2008년 금융위기 이후 미국에서는 ‘도드-프랭크법’ 같은 강력한 하향식 금융규제가, 영국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가 대책으로 떠올랐다). 스튜어드십 코드는 기업가치를 떨어뜨리는 불법행위나 소액주주에게 피해를 주는 대주주의 독단적인 기업 경영을 견제할 수 있는 긍정적인 측면이 있지만, 이것이 대주주의 경영권을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면 ‘연금사회주의’라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우리나라의 국민연금은 많은 경우 주요 대기업의 2대, 3대 주주였음에도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대해 기권하거나 소극적 지지를 하는 것에 머무른 바 있다. 연기금이 의결권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서 경영에 참여하는 정도에 대한 기준과 원칙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연기금과 주주행동주의의 성장은 우리나라 기업지배구조 개선 압력으로 작용할 것이고, 이는 배당 증가를 통한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주주 자본주의가 가치중립적이라고 단언하는데, 최근 ‘주주 이익 극대화’에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로의 전환이 논의되고 있는 사실을 떠올릴 때, 이는 속단이 아닌가 싶다. 어쨌거나 한국 상황에서는, 최근 주식투자에 대한 관심이 다른 어느때 보다 높은 상황인만큼, 소액주주 운동이나 주주이익 극대화 논의가 기업 거버넌스와 주식시장 체질개선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는 점은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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