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반기 독서: <한국 사회과학의 기원>과 <대륙법 전통>

늘 그렇듯 올 상반기에도 바빴다. 연초와 3월 즈음에 읽었던 두 책에 대한 단평을 업로드한다.

 

『한국 사회과학의 기원』 - 홍정완

저자의 역사학 박사학위 논문을 펴낸 이 책은 ‘사상사’ 연구를 표방한다. 역사학 연구의 특징인 것인지, 광범위한 사료를 제시하고 있을 뿐, 전체적으로 서사가 명확하지는 않다. 따라서 이 책이 제시하고 있는 자료들에 기초하여 나름대로 서사를 명료히 해보는 것은 독자의 몫이다.

제목과 달리 ‘사회과학’ 자체는 이 책의 관심대상이 아니다. 정치학과 경제학을 중심으로 한국전쟁을 전후로 한 냉전기 한국의 (사회과학) 지식체계를 검토한 다음, 그것에 기초하여 전개되어 온 한국의 ‘근대화 담론’의 지형을 펼쳐 보이는 것이 책의 주된 관심이다. 냉전 시기의 사회과학 지식에 주목하는 것은 그것이 냉전적 상황의 부산물인 동시에 냉전 구조의 재생산 기제였다고 보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미-소 양국이 아닌 ‘한국’이라는 제3세계 지역의 냉전 지식에 주목한다. 그 점에서 저자의 관심은 냉전사 연구의 최근 경향인 냉전사의 ‘담론적 전회(discursive turn)’와 ‘지구적 전회(global turn)’의 흐름이 교차하는 지점에 놓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냉전기 한국의 지식체계를 검토하기 위한 주된 사료는 당시의 정치학‧경제학 ‘교과서’들이다. 크게 보아 20세기 정치학의 두 수원(水源)으로 ‘독일 – 일본 식의 국가학‧국법학’ 전통과 ‘미국 식 행태주의’ 전통을 들 수 있을 텐데, 한국의 사회과학 교과서들의 서술 역시 그 큰 흐름을 따른다. 다만 이전까지 로스토우의 ‘근대화론’의 영향을 과도하게 강조하여 한국 사회과학 학술사가 미국 사회과학의 수용과정인 것으로 이해되어 온 것(박태균)에 대항하여, 이 책은 한국 사회과학의 기원에 일본제국의 정치학, 특히 야베 데이지로 대표되는, (파시즘과 무관하지 않은) 사회민주주의적인 경향이 강력한 전제로 깔려 있었음을 새롭게 강조한다. 이 책은 해방 이후 한국의 주요 정치학자들의 의식 속에 강력한 평등지향성과 집단주의가 전제되어 있었으며, 이것이 50년대의 제3세계 후진국 인식 및 60년대의 민족주의 인식, 나아가 한국의 ‘근대화 담론’으로 이어지는 것임을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현대 한국의 지식담론의 기원을 이루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파시즘’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개인적으로는 한국 사회과학의 ‘행태주의로의 이행’이라는 이후의 ‘전개’보다는(한국 사회과학에서 유의미한 논의가 ‘전개’된 바가 있기는 한지도 의문이다) 그 기원으로서 강력한 집단주의‧평등지향성(파시즘)에 눈길이 간다. 또다른 한국현대사 연구자인 후지이 다케시의 족청계 연구를 읽어보고 좀 더 긴 글을 써 볼 계획이다.

 

『대륙법 전통』 - 존 헨리 메리먼, 로헬리오 페레스 페르도모

법에는 미국식 ‘영미법’과 독일식 ‘대륙법’이 있는데, 영미법은 불문법이라서 판례를 중시하고, 대륙법은 성문법이라서 조문을 중시한다, 라는 정도가 많은 사람들이 두 ‘법적 전통’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상식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며, 두 전통의 분명한 차이에도 불구하고 양자의 경계가 그렇게 단순 명료하게 딱 떨어지는 것은 아님을 이 책을 읽고 알게 되었다. 무려 1969년에 초판이 출간되었으며 2018년에 3판이 나온 이 책은 ‘비교법의 고전’이라는 수식에 걸맞게 법제사와 법사상사를 아우르며 두 법적 전통을 종횡으로 비교한다.

나에게 특별히 흥미로웠던 것은 두 법적 전통이 형성되어온 전사(前史)였다. 먼저 우리 말로 ‘대륙법’과 ‘영미법’이라는 용어가 각각 ‘시민법(Civil Law)’과 ‘보통법(Common Law)’의 번역어인 것부터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영미법(보통법)은 1066년 헤이스팅스 전투의 결과로 ‘정복왕 윌리엄’이 ‘야만적인’ 노르만족을 평정한 다음 중앙 집권적인 국가체계를 정비하기 위해 만든 법 체계로, 11~12세기에 시작한 것이다. 반면 대륙법은 19세기 ‘법전 편찬의 시대’에 혁명가(입법자)들에 의해 만들어진 법(‘시민법’)으로, 영미 보통법에 비해 그 기원이 비교적 가까이 있다. ‘혁명의 시대’를 추동한 사상적 원동력은 자연법 사상과 법실증주의였다. 자연법 사상은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하게 태어났다’는 생각으로부터 출발하여 사회계약설과 혁명사상으로 연역되는 일련의 사고 체계였고(물론 근대 초기의 자연법 전통과 19세기 이후의 자유주의 사상을 곧바로 연결하는 것은 시대착오라는 지적이 있다), 법실증주의는 법이란 ‘의회가 만든 것’이므로 혁명가(입법자)가 ‘만들기 나름’이며, 따라서 로마법은 각 민족국가의 ‘법전’으로 대체해버릴 수 있다는 혁명적 사고방식이었다. 시민혁명과 민족국가의 등장으로 인해 대륙에서는 낡은 법이 폐지되고 ‘새로운 민족국가의 통합법’이 도입되었으나, 혁명의 속도와 강도가 더디었던 영국에서는 봉건적인 ‘보통법’이 폐지되지 않고 존속하면서 비로소 두 법적전통이 나뉘기 시작했다.

거의 모든 법철학 개론서는 ‘선량한’ 자연법과 (악법도 법이라고 주장하는) ‘악랄한’ 법실증주의가 대립하는 것으로 묘사한 다음, 자연법 진영의 로널드 드워킨에 의해 논쟁이 사실상 일단락된 것처럼 설명하는데, 이 구도는 적어도 실제 역사와는 거리가 먼 셈이다 – 자연법과 법실증주의는 ‘혁명의 시대’의 맥락에서는 서로 친밀한 사이였다. 또한 대륙법은 완고하고 고리타분한 반면, 영미법은 유연하고 역동적이라는 오늘날의 인식도 19세기에는 정반대였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 당대의 맥락에서는 대륙법이야말로 혁명적인 법 체계였고, 영국법은 낡고 보수적인 법이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민법전’(1804)과 사비니의 ‘독일 민법전’(1896)은 대륙법과 법실증주의가 19세기를 지배했음을 보여준다.

혁명가들의 법이었기 때문에 대륙법 전통에서는 판사(법복귀족)들의 재량을 통제하고, 오직 법전에 입각하여, 법전만 읽으면 누구나 분쟁에 대한 해결책을 쉽게 찾을 수 있는 방대한 법적체계를 지향하였다. 따라서 대륙법 전통의 법전은 현실에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경우의 수를 조문으로 포섭하고, 판사의 자의적인 법 해석을 제한하고자 했다. 대륙법 전통에서 판사는 단순한 공무원에 불과하고, 진정한 영웅은 ‘입법자’와 ‘법학자’들인 것은 이것과 관련된다.

그런데 같은 대륙법 전통으로 묶이는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프랑스의 ‘나폴레옹 법전’이 프로이센의 ‘일반란트법’(1794)과 함께 혁명기의 낙관주의와 극단적 합리주의의 영향을 받은 전형적인 ‘혁명기 대륙법’이었다면, 그로부터 100년 후 편찬된 사비니의 ‘독일민법전’은 독일 낭만주의의 영향을 받은 이른바 ‘역사학파’의 영향 아래에서 게르만 구법을 비롯한 독일 법제사를 ‘과학적‧합리적’으로 분석하여 이론화한 것이었다. 이러한 차이는 독일도 프랑스처럼 시민법을 제정하자고 주장했던 티보(Thibaut)와 사비니의 논쟁(1814)에서 두드러진다. 실정법들로 이루어진 ‘법의 세계’를 마치 자연세계를 탐구하듯이 분석하여 고도로 추상화된 ‘개념’과 ‘분류법’을 도출해낼 수 있다는 ‘개념 법학’은 방법론적으로는 합리주의적이나, 그 탐구대상이 ‘구법’이라는 점에서 명백히 반혁명적인 것이었다. 나폴레옹 법전의 재료가 ‘자연법 사상에 입각한 인간의 본성에 대한 탐구’였다면, 독일 민법전의 재료는 ‘독일법’이었던 셈이다. 오늘날 대륙법 국가의 ‘민법 총칙’에는 바로 이 개념법학의 영향이 꽤나 선명하게 묻어 있다.

이처럼 법학의 기초일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법 체계의 근간을 이루는 ‘민법 총칙’은 ‘19세기 후반 독일’이라는 매우 특수한 국면 속에서 탄생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민법학’이란 (적어도 그 기원에 있어서만큼은) 일종의 ‘서양 (정치)사상’이었던 것이 아닐까? 다른 역사학 연구들이 그러하듯이, 법사상사 연구 역시 오늘날 당연시되는, 자연화 된 사고방식을 상대화 하는 데 기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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