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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2. 23. 17:14

하노 벡 외, <인플레이션>을 읽고

화폐의 역사를 다룬 책은 꽤 많다. 이 책은 그 중에서 독일에서 나온 버전이다. 중간중간 어색한 번역 탓인지 학술 교양서라기엔 저렴(?)하게 느껴지고(간혹 비문도 있다), 투자서라기엔 너무 학구적이다. 그런데 이제 보니 비슷한 주제의 책을 쓴 독일 저자들이 상당히 많은 것으로 확인된다. 아마도 독일이 20세기 초반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경험한 나라이자 두 번의 화폐개혁을 성공시킨 나라로서 이 문제와 인연이 깊어서 그런 것 같다. [어색한 번역: 최고가 규정(66페이지) -> 최고가격제 / 사회주의적 시장경제체제(153페이지) -> 사회적 시장경제(질서 자유주의). 그리고 ‘금융정책’보다는 ‘통화정책’이 좀 더 일반적인 표현이다.] 경제학 교과서에 흔히 등장하듯이, 인플레이션이란 전반적인 물가수준의 지속적인..

2021. 12. 23. 17:05

홍콩 민주화 운동의 바람직한 방향

90년대 왕가위 영화의 묵시록적인 분위기는 어디서 온 것인가? 그것은 1989년 중국 본토의 천안문 학살을 목도한 홍콩시민들이 느꼈던, 자신들이 그와 같은 야만적인 체제에 편입되게 될 ‘8년 뒤’에 대한 불안과 체념의 반영이다. 천안문 사건 이후 많은 홍콩 시민들은 영국, 미국, 캐나다 등 서방국가로 ‘탈출’을 감행했지만, 그럴 여력이 없었던 이들은 홍콩에 남아있어야 했다. 왕가위의 90년대 영화들의 근저에는 이들 잔류자들의 ‘자포자기의 정서’가 놓여있다. 홍콩의 정서는 아이러니 그 자체이다. ‘홍콩 정체성’은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친중과 친서방을 진동하며 성립되었다. 홍콩의 역사는 1840년 아편전쟁으로부터 시작한다. 아편전쟁의 결과 홍콩은 제국주의 영국의 손에 넘어갔고, 그 후 1997년 반환까지..

2021. 12. 23. 17:00

[독서메모]『한일 우익 근대사 완전정복』 - 이영채, 한홍구

1) 메이지 유신에서 군국주의까지, 일본 우익의 기원 메이지 유신을 통해 근대화에 성공하는데 까지가 일본 근현대사의 제1막이라면, 이후 내각이 군부에 의해 장악되고 군국주의국가로서 대외팽창에 나서게 되는 것은 제2막이다. 1막의 주요 인물들로 조슈 번 출신의 다카스키 신사쿠, 기도 다카요시, 오무라 마스지로, 사쓰마 번 출신의 사이고 다카모리와 오쿠보 도시미치를 들 수 있다. 내각이 군부에 의해 장악되었던 중요한 제도적 요인은 일본 특유의 현역무관제였다. 보통의 국가들에서 국방부 장관은 민간인이 하도록 되어 있는 것에 반해, 일본은 ‘육군의 아버지’ 야마가타 아리토모가 세운 현역무관제 원칙에 따라 내각의 구성원인 육군 대신과 해군 대신을 현역 군인이 맡도록 되어 있었다. 따라서 군에서 후보를 내지 않으면..

2021. 12. 23. 16:58

[독서메모]『메이지유신을 설계한 사무라이들』 - 박훈

메이지 유신은 의외로 공부하기가 복잡하다. 일본의 ‘근세’ 시기가 워낙 특이하기 때문이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세워진 에도 막부는 (당연하지만) 유럽적인 의미의 절대왕정 국가가 아니었다. 봉건제 하의 번(제후국)들은 생각보다 독립성을 강하게 띄고 있었기 때문에, 번끼리도 입장이 상이했다. 거기다 막말기에는 막부 이외에 천황까지 하나의 정치적 행위자로 등장하므로 이 시대의 ‘등장인물’은 아무리 적게 잡아도 넷이다(번1, 번2, 막부, 천황). 동시에 에도 말기는 도시와 상공업이 발달했고, 사무라이들 사이에서 유학 공부가 유행하던 특이한 시기였다. 이 책은 이처럼 복합적인 막말 기 정치서술을 네 명의 사무라이(요시다 쇼인, 사카모토 료마, 사이고 다카모리, 오쿠보 도시미치)의 일대기로 접근하면서 논의의 어..

2021. 12. 23. 16:54

[독서메모]『중국 현대사를 만든 세 가지 사건』 - 백영서

근대 초의 동학농민운동으로부터 시작해서 일제강점기의 3. 1 운동, 개발독재시기의 민주화투쟁으로 이어지는 지난한 서사에 익숙한 한국인에게는 ‘민중’의 개념이 낯설지 않다. 그런데 중국의 근현대사에서는 이런 식의 ‘민중’ 서사가 어색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중국에서는 근현대사의 다양한 국면들 속에서 민중이 유의미한 역할을 할 기회가 없었던 것일까? 혹은, 민중의 유의미한 역할이 분명히 있었음에도, 그것이 보다 심화된 민주적 요구로 이어지지 못한 역사적 맥락이 있었던 것인가? 저자는 ‘근대의 극복과 적응’이라는 이중과제론의 문제의식 속에서 중국현대사에서 ‘民의 자치와 결집’이 모색되었던 세 가지 사건으로서 1919년 5.4 운동,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1989년 천안문 사건에 주목한다. 근대..

2021. 12. 23. 16:50

길윤형, <아베는 누구인가>: 일본의 국내정치와 대외정책

한겨레 도쿄특파원을 지낸 길윤형 기자가 쓴 일본정치 관련 책이다. 아베의 정치적 입장을 그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의 사상과 연관지어 설명하고, 아베의 등장을 일본 정치 내부의 동학에 따른 결과로 파악한다. 1) 아베의 사상적 기원: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 기시 노부스케는 유년 시절 요시다 쇼인을 비롯한 ‘메이지 지사들’과 2. 26 쿠데타의 설계자인 기타 잇키의 강력한 영향력 아래에서 ‘엘리트에 의한 영도’에 대해 강한 소신을 갖게 된다. 기시는 만주국에서 산업정책을 총괄했고, 태평양 전쟁 때는 대일본제국의 군수차관을 지냈다(“무관의 최고 책임자가 도조였다면, 문관의 최고 책임자는 기시였다”). 이 일로 기시는 A급 전범 ‘의혹’을 받아 스가모 형무소에서 3년간 복역하고 정계에 복귀한다. 그가 반공사상과..

2021. 12. 23. 16:48

브래드 글로서먼, <피크 재팬>: 일본의 2010년대

저자는 30여년간 일본에서 체류하며 기자생활을 한 퍼시픽포럼 연구원 출신 기자이다. 2010년대 이후 경제, 정치, 외교, 사회 영역에서 일본사회의 부침을 설명한 뒤, 아베 집권기가 일본의 ‘마지막 정점’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덧붙인다. 2010년대의 일본 정치상황을 다루고 있어서 유용하지만, 전체적으로 자료 아카이브의 느낌이 강하다. 자민당 내부의 파벌에 대한 분석이나 55년 체제 성립 이후 고도성장기의 일본정치는 다루고 있지 않아서 아쉽다(곧장 90년대로 점프한다). 아베의 일본이 일본의 마지막 정점이 될 것이라는 예상 역시 다소 비약이다. 정치와 경제 영역에서 일본이 고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외교영역에서 일본의 전환은 비교적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일본의 부상 덴노의 반..

2021. 12. 23. 16:45

임명묵, <거대한 코끼리, 중국의 진실>을 읽고

대학생 저술가 임명묵의 중국 현대사 관련저서이다. 덩샤오핑이 집권한 1978년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중국의 현대정치사를 간략하게 개괄한 후, 시진핑 시대에 들어선 이후 중국의 대내외적인 전망을 제시한다. 나의 중국 정치에 대한 이해는 매우 초보적인 것이었다. 중국은 공산당 일당체제이지만, 그 내부에 3대 파벌(공청단, 상하이방, 태자당)이 있고, 이들 사이의 견제와 균형을 통한 통치가 정착해 있다. 이들 간의 권력투쟁 끝에 시진핑이 2013년부터 국가주석이 되었으며, 이 시진핑은 대내적으로는 일인독재체제를, 대외적으로는 ‘일대일로’로 상징되는 공세적 대외노선을 취하고 있다는 인상 정도를 가지고 있었을 뿐이다. 그런데 덩샤오핑 시대와 그 이후의 중국 현대사를 면밀하게 살펴보면, 시진핑 체제는 중국사회 내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