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ading...
2022. 6. 4. 19:43

[기고] 무엇을 먹을 것인가

그린빌리지에 기고한 마지막 글이다. 당분간 그린빌리지의 자체 사정으로 연재를 중단한다. 이 책은 아마도 내가 환경과 관련해서 기고하는 일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읽지 않았을 종류의 책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과학교양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지속가능한 라이프 스타일'로서의 '채식주의'에 대해 다루는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평소에 내가 가지고 있던 채식주의에 대한 고정관념(유난스럽다)을 교정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동물권리나 종차별주의에 관해서는 얼마 전에 읽었던 수나우라 테일러의 독서를 계기로 '포스트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관심을 기울일 필요를 느꼈다. 서양철학의 수많은 근본 전제들은, 인간-주체의 자리에 '장애인', '비정상인', '퀴어(여성)', '동물'을 대입하면 완전히 허물어져버린다. 따라서 이 ..

2022. 5. 19. 04:59

[기고] 쓰레기 대란이 온다

그린빌리지에 기고한 네번재 글은 최병성의 에 대한 서평이다. 쓰레기를 줄이자는 관성적인 구호는 많이 들어봤지만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파고들어본 적은 없었던 듯하다. 책 자체는 약간의 허술함이 있었지만 새로운 정보가 많이 들어있어서 한국적인 맥락에서의 '쓰레기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을 갖추는데 도움이 되었다. 쓰레기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을 개인의 미시적인 생활 에티켓(?)의 차원이 아니라 보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에서 모색하기 위한 핵심 연결고리는 '건설폐기물'과 '토건 세력'이다. 우리가 아무리 일상생활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을 많이 해도(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재건축 한 번할 때 발생하는 건설폐기물의 양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온갖 건설사업에 뛰어들면서 겉..

2022. 5. 10. 18:53

[기고] 원자력은 대안인가?

그린빌리지에 기고한 세 번째 글은 정욱식의 (으로 2018년에 개정되어 재출판)와 데이비드 엘리엇이 엮은 를 참고해서 썼다. 이전에 서평을 쓴 도 한 챕터를 원자력 발전 이슈를 다루는데 할애하고 있는데, 그 서평에 원자력 발전 관련 논점까지 포함시켰다간 글이 너무 산만해질 것 같아서 원자력 문제는 단독으로 별도의 글에서 다루기로 한 것이다. 원자력 발전 이슈는 찬반 양론이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에 토론하기 좋은 주제다. 원자력 발전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주춤했다가, 최근 기후위기 문제가 부각되면서 저탄소 에너지원으로 다시금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렇지만 "원자력=친환경" 같은 도식은 내가 글에서 표현한대로 어딘지 '기괴하다'. 일본의 저자들이 쓴, 이 문제를 보다 심오하게 성찰하는 책..

2022. 5. 8. 16:05

[기고] 노동자와 기후위기

기후위기 문제에 국가와 자본이 '신경을 써주는' 것은 어쨌든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의 기후위기 대응은 지속가능하지 않고, 근본적인 해결책일 수 없으며, 어떤 점에서는 기만적이라는 점에서 국가와 자본의 '위로부터의' 기후위기 대응이 전체 환경담론의 주류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진정으로 지속가능하고 근본적인 '탈탄소로의 전환'은 노동자 계급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변혁'으로부터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생태마르크스주의'는 기후위기 문제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대응을 적절하게 평가하기 위한 시각을 제공한다. 노동자와 기후위기 (『기후위기, 불평등, 재앙』 (장호종 外) 서평) 기후위기 극복에 우호적인 국가와 자본? 사이비 환경단체들이 앞장서서 기후위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

2022. 5. 1. 02:34

[기고] 파스칼의 도박

1. 한 달에 (최소한) 한번 이상 글을 써서 이곳에 업로드하는게 목표였는데 4월은 그냥 넘기고 말았다. 학교 시험기간과 각종 활동이 겹치면서 너무 바빴다. 2. 그런데 글을 안 썼던 것은 아니다. 얼마 전부터 지인의 소개로 '친환경'을 모티브로 한 "매거진 미디어 + 종합쇼핑몰"에 원고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름은 '원플래닛' (조만간 이름이 바뀐다고 한다). 주제와 상관없이 '돈을 받고' 글을 쓰는 경험 자체가 나한텐 무척 뜻깊기 때문에 주저 없이 하겠다고 했다. 엊그제 세번째 원고를 보냈다. 3. 글 쓰고 돈 받는 일이 해보고 싶어서 무턱대고 하겠다고는 했지만 환경문제에 대해서 특별히 파악하고 있는 바가 별로 없으므로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또다시 '서평' 뿐이다. 완전히 생소한 분야의 어떤 책을 읽..

2022. 3. 18. 15:55

환경사회학 개론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환경사회학』(찰스 하퍼)에 기초하여 작성) 1. 환경사회학이란 무엇인가 ‘환경사회학’을 정의하기 위해선 먼저 근대적인 ‘자연과 문화의 이분법’에 대해 재사유해야 한다. 근대인은 사회문화현상과 자연현상을 분리해서 사고하는데 익숙하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문화-사회제도-사회구조-사회연결망 등과 같은, 자연환경으로부터 독립적인 ‘문화영역’을 향유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연환경의 영향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는 사고방식이다. 고전사회학 자체도 생물학적 결정론(biological determinism)을 배격하면서 발달한 바 있다. 고전사회학이 등장한 것이 산업사회의 태동과 시기적으로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닌데, 고전사회학이 전제하고 있는 ‘근대적 이분법’은 곧 초기 산업사회의 지배적인 ..

2022. 2. 14. 05:52

수나우라 테일러, <짐을 끄는 짐승들>을 읽고

장애학은 손상(impairment)과 장애(disability)를 구별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한다. 손상이 임상적, 의료적 개념이라면, 장애는 사회적으로 구성된 개념이다. 장애학에서 장애란 치료되고 교정되어야 할 ‘생물학적 현상’이 아니고, 실천적으로 극복되어야 할 ‘사회적 구성물’이다. 여기서부터 장애학은 이미 다른 어떤 정치철학의 전통보다도 더 파격적이다. 장애학은 담론이나 이데올로기의 차원이 아니라, ‘문자 그대로’ 생물학(몸)을 극복할 것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것(몸)’과 ‘정치적인 것’의 경계를 해체할 것을 요구하는 페미니즘의 정치학은 ‘장애학’의 수준에 이르러야 진정으로 그 급진적 면모를 다 드러내는 셈이다. 페미니즘이 자신의 논리의 일관성을 지킨다면 반드시 장애학으로 귀결되어야 ..

2022. 1. 12. 02:59

양적 완화란 무엇인가

양적완화는 아주 단순화하면 중앙은행이 민간 부실자산을 사줘서 민간은행들의 부도를 일단 막고 보는 것이다. 양적완화는 결과적으로 2008년 금융위기가 전세계적인 대공황으로 악화되지 않도록 하는데 기여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러나 저자는 지난 10여년간의 양적완화는 ‘은행을 위한 양적완화’였을 뿐, ‘모두를 위한 양적완화’가 아니었다고 지적한다. 중앙은행이 적극적으로 자산을 사줬지만, 이 돈을 받은 기업과 은행들은 생산적인 투자에 나서지 않고 자신들의 대차대조표를 개선하는데 집중했으며(디레버리징의 역설, 리처드 쿠의 ‘대차대조표 불황’ 이론), 자산가격은 지지되었지만 이것이 소비와 투자의 증대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지난 10여년간의 양적완화 ‘실험’은 기업과 은행의 부채를 탕감해줬을 뿐이고, 이들은 받은 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