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무엇을 먹을 것인가

 

그린빌리지에 기고한 마지막 글이다. 당분간 그린빌리지의 자체 사정으로 연재를 중단한다.


이 책은 아마도 내가 환경과 관련해서 기고하는 일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읽지 않았을 종류의 책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과학교양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지속가능한 라이프 스타일'로서의 '채식주의'에 대해 다루는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평소에 내가 가지고 있던 채식주의에 대한 고정관념(유난스럽다)을 교정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동물권리나 종차별주의에 관해서는 얼마 전에 읽었던 수나우라 테일러의 <짐을 끄는 짐승들> 독서를 계기로 '포스트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관심을 기울일 필요를 느꼈다. 서양철학의 수많은 근본 전제들은, 인간-주체의 자리에 '장애인', '비정상인', '퀴어(여성)', '동물'을 대입하면 완전히 허물어져버린다. 따라서 이 문제를 덮어두고 외면하는 것은 철학적으로 정직한 자세가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다음 글은 "인류세"와 "포스트 휴머니즘"을 키워드 삼아 현대 생태미술에 대한 글을 써보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연재가 잠정 중단되었다.

그런데 내가 쓴 이 서평 자체는 썩 마음에 들지 않는 글이다. 시험기간 도중에 써내느라 사실관계를 이어붙이는 식의 글이 되고 말았기 때문이다.


시험은 엊그제 끝이 났고, 나는 마지막 레포트 2편을 완성해야 종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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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을 먹을 것인가?

(남기선, 『식사 혁명』 서평)

육식하는 인간

현생인류는 육식과 함께 시작되었다. 식물성 식품을 소화하기 위해선 소처럼 장이 길어야 했는데, 육식을 함으로써 장이 짧아지고 두뇌가 커졌다. 고기를 불로 익혀 먹는 ‘화식’은 영양 흡수율을 높여서 두뇌를 계속 발달하도록 했다. 육류는 종류도 다양하고, 그 영양성분이 ‘품종과 환경, 지리적 위치, 계절 및 사료’[i] 등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일반화하기 어렵지만, 기본적으로 ‘단백질, 철분, 아연, 셀레늄, 구리, 나이아신, 비타민 B12, B6, 엽산’[ii]을 포함하는 훌륭한 식재료이다. 육류는 특히 양질의 단백질을 많이 포함하고 있다. 단백질은 신체를 구성하고, 체내의 모든 화학반응을 관할하는 가장 중요한 영양소이다. 단백질의 질을 평가하기 위한 지표로는 ‘소화율이 고려된 아미노산가’(Protein Digestibility Corrected Amino Acid Score, PDCAAS)가 있는데, 이것이 ‘1’인 식품을 ‘완전단백질’이라고 부른다. 쇠고기의 PDCAAS는 0.92로, 기타 콩류(0.7), 곡류(0.59), 통밀(0.42)보다 수치가 확실히 높아 양질의 단백질 식품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일반적으로 단백질은 동물성 식품에 많이 포함되어 있고 그 질도 좋다’[iii].

그렇다고 해도 오늘날 인간의 ‘고기 사랑’은 곱씹어볼수록 유별난 측면이 있다. 인류가 고기를 과하게 갈망하게 된 데에는 영양-인류학적인 배경 이외에 사회문화적 배경도 강하게 작용했다. 많은 문화권에서 ‘고기’는 ‘부와 권력의 상징’이었다. 전근대 시기의 일반 대중은 ‘고기를 충분히 먹지 못해서’ 영양상태가 불량한 것으로 간주되었고, 19세기까지도 요리에 고기를 더 많이 넣어 먹는 민족이 우월하다는 ‘음식인종주의’가 만연했다. 쌀밥을 먹는 중국인이나 감자를 먹는 아일랜드인보다 ‘고기’를 먹는 유럽인이 더 우월하다는 것. 멀리 갈 것 없이, 21세기 한국사회에서도 ‘비싼 한우고기’는 남다른 문화적 위상을 차지한다.

 

육식의 비용

그러나 ‘육식의 역사’는 지구와 인간에 대한 막대한 비용을 수반하는 것이었다. 인간이 야기한 새로운 지질시대인 ‘인류세’에 접어들면서, 인간이 ‘고기와 맞바꾼 것들’이 새롭게 조명되기 시작했다. 인간은 공장화된 축산업 시스템 하에서 연간 약 650억 마리의 가축을 도륙하는데, 이런 대규모의 축산업은 자연환경에 엄청난 부담으로 작용한다. 엄청난 수의 가축을 먹일 곡물사료를 재배하기 위해 넓은 면적의 토지와 수자원의 사용이 불가피하다. 오폐수 처리까지 감안하면 ‘축산에 필요한 물 사용량은 전 세계 인간의 사용량보다 8% 이상 많다’[iv]. 축산에 의해 배출되는 물질 가운데 가축의 방귀가 내뿜는 메탄은 전체 메탄의 37%, 분뇨에서 발생하는 이산화질소는 전체의 65%에 이른다. 이런 것들을 모두 고려하면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에서 농축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약 20%라는 IPCC의 진단은 과장이 아니다.

공장화된 축산업 시스템에서 가축은 ‘정해진 수명대로 살아가는 생명체라기보다, 일정 시간 이후 죽이기 위해 만들어내는 공장의 물건’[v]처럼 다루어진다. 인간의 필요에 따라 ‘맛있는’ 부위를 더 많이 생산하기 위해서 각종 성장촉진제와 항생제를 투여한다. 효율성을 위해 비좁은 ‘밀집형 가축사육시설(Concentrated Animal Feeding Operations, CAFO)’에 갇힌 채 평생을 살도록 한다. 도살과정에서 동물들이 경험하는 스트레스도, 그것이 고기의 품질에 미치는 영향의 차원에서만 고려될 뿐이다. 동물에 대한 연민은 차치하더라도, 효율적인 고기 생산을 위해 사용되는 살충제와 항생제를 인간도 고스란히 먹게 될 것이라는 사실은 작은 문제가 아니다.

종 다양성을 저해한다는 것도 가축화의 중대한 해악 중 하나이다. 야생동물들은 생존을 위해 다양한 환경에서 적응할 수 있도록 유전적 다양성이 증대되는 방향으로 진화하는데 비해, 가축화된 동물들은 인간에 의해 주어진 환경에만 적응하면 되므로 유전적 다양성을 결여하게 된다. 이것은 가축을 새로운 전염성 병원체의 가장 좋은 숙주로 만든다. 구제역으로 인한 살처분 현장의 모습을 떠올리면, 가까운 미래에 특정한 유전병이나 전염성 질환으로 가축이 대규모로 멸종한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다. 인간의 식생활이 육식에 과도하게 의존할 경우 ‘여섯 번째 멸종’은 식량위기로 이어질 수도 있다.

 

무엇을 먹을 것인가?

고기 자체도 인체에 좋은 것만은 아니다. 육류에는 기본적으로 지방이 많은데, 이 지방 자체가 비만이나 심혈관 질환의 원인이 되는 것은 물론이고, 지방을 소화하기 위한 담즙이 많이 분비되면 발암물질 생성 가능성이 높아진다. 또한 고기의 포화지방산은 콜레스테롤의 합성을 증가시키고 체내의 칼슘 흡수를 저해한다. 고기의 보관기간을 늘리기 위해 만들어진 가공육의 경우 훈연과 염장 과정에서 PAF(Polycyclic Aromatic Hydrocarbon)와 니트로사민 같은 강력한 발암물질을 포함하게 된다. 육식이 지구와 환경, 그리고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해악을 고려하면 앞으로 인간의 육식생활이 지속 가능할 것인지 의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채식주의는 단순히 ‘동물에 대한 연민’에서 출발하는 유난스러운 감성적 구호인 것만은 아니다. 채식은 육식문화가 지니고 있던 다양한 해악을 성찰하고, 그 대안을 모색하기 위한 적극적인 실천이다. 채식주의에는 소고기만 먹지 않는 ‘폴로 베지테리안’, 닭고기도 먹지 않고 우유, 달걀, 생선은 허용하는 ‘페스코’, 동물을 통해 얻는 모든 음식을 거부하는 ‘비건’ 등 다양한 방식이 있다. 채식주의는 아니지만, ‘동물에게 좋은 것이 인간에게도 좋다’는 관점에서 ‘동물복지육’을 추구하는 경우도 있다. 동물복지란 ‘동물에게 외부로부터 가해지는 인위적이고 불필요한 고통이나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건강을 유지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것’[vi]을 의미하는데, 이렇게 생산된 고기는 영양적으로도 우수한 편이다. 한편, 저자는 동물성 단백질의 대안으로 콩과 생선을 적극 추천한다. 특히 콩과식물은 ‘키우는 것만으로도 이산화탄소 발생에 의한 지구온난화를 지연시키는데 도움이 된다.’[vii] 공장화 된 축산업과, 그것에 의지하는 현대의 육식문화로부터 한발 떨어져, 지구와 동물, 그리고 인간 자신의 건강에 대한 고민이 모두 반영된 새로운 식사문화를 모색하는 일이 필요할 것이다.

 

식사의 미래

이미 육식에 ‘입맛을 들여서’ 장기적으로 ‘고기를 끊는 것’이 도저히 어렵다면, 과학기술을 동원해서 고기를 대체할 수 있는 ‘인조고기’를 개발하는 것도 방법이다. 균류 단백질인 ‘마이코프로틴’, 콩과식물의 레그헤모글로빈을 이용한 ‘헴 단백질’, 줄기세포를 실험실에서 배양한 ‘배양육’ 등이 유력한 대체육의 후보들이다. 현재와 같은 공장식 축산업 체제로부터 벗어난 이후의 ‘육식’(?)의 모습을 상상하게 만든다.

‘식용곤충’ 역시 친환경적인 미래 식량의 유망주로 주목받는다. 식용 곤충은 열량이 높고 식물성 단백질에는 없는 영양소도 다수 포함하고 있어 서양에서도 육류를 대체할 단백질 급원식품으로 주목하고 있다. 서구화된 식생활에 익숙한 이들에게 ‘벌레를 먹는 것’은 일견 거부감이 드는 일이지만, 식생활 자체가 문화적으로 구성되는 것이라는 사실을 떠올린다면, ‘벌레’가 미래 사회의 ‘주식’이 되는 것도 아주 이상한 일인 것만은 아니다.



[i] 남기선. (2019). 『식사 혁명』. (Mid). p.78

[ii] Ibid, p.78

[iii] Ibid. p.146

[iv] Ibid p.114

[v] Ibid p.103

[vi] Ibid p.124

[vii] Ibid p.2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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