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파스칼의 도박

1.
한 달에 (최소한) 한번 이상 글을 써서 이곳에 업로드하는게 목표였는데 4월은 그냥 넘기고 말았다.
학교 시험기간과 각종 활동이 겹치면서 너무 바빴다.


2. 
그런데 글을 안 썼던 것은 아니다.
얼마 전부터 지인의 소개로 '친환경'을 모티브로 한 "매거진 미디어 + 종합쇼핑몰"에 원고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름은 '원플래닛' (조만간 이름이 바뀐다고 한다).


주제와 상관없이 '돈을 받고' 글을 쓰는 경험 자체가 나한텐 무척 뜻깊기 때문에 주저 없이 하겠다고 했다.
엊그제 세번째 원고를 보냈다.


3.
글 쓰고 돈 받는 일이 해보고 싶어서 무턱대고 하겠다고는 했지만 환경문제에 대해서 특별히 파악하고 있는 바가 별로 없으므로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또다시 '서평' 뿐이다.


완전히 생소한 분야의 어떤 책을 읽는 것은 늘 즐거운 일이다.
완전히 생소했던 분야일지라도, 관련된 책을 읽고 (서평까지 쓰고)나면 어느 정도 윤곽을 그릴 수 있게 된다.
어제는 '뭘 모르던' 인간이 오늘은 뭘 좀 알게 된다. 


그런 경이로운 경험을 위해 필요한 것은 오직 독해력 뿐.
'책 읽는 인간'이 된다는 것이야말로 복음이다.


4.  
첫번째 원고는 201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윌리엄 노드하우스의 대중교양서 <기후 카지노>에 대한 서평이었다.
기고한 글을 그대로 내 블로그에 올리지 말아달라고 해서 링크를 걸어둔다.

(외부에 기고했던 글인데 해당 블로그가 폐쇄되어 다시 이곳에 옮김)

 

파스칼의 도박

(『기후 카지노』 (윌리엄 노드하우스) 서평)

환경경제학의 최전선: “통합 평가 모델”이란?

환경경제학의 성과로 이해되는 ‘통합 평가 모델(IAM: Integrated Assessment Models)’은 학제적 접근(경제학과 기후과학)을 통해 기후변화의 영향을 분석한다. 이러한 접근은 자연과학과 사회과학의 경계를 넘나들 것을 요구하는 환경사회학의 ‘신생태적 패러다임’에 부합하는 것이다. 사회과학의 분과 중에서도 경제학은 자연과학과 마찬가지로 ‘모델링’을 통해 현상을 단순화하여, 정확한 재현은 포기하는 대신 현상의 ‘본질적인 사항들을 포착(45)’하고자 한다. 따라서 경제학적 접근은 방법론적으로 자연과학과의 융합이 용이하여, 추후 환경사회학의 흐름을 주도할 것으로 보인다. 『기후 카지노』의 저자인 윌리엄 노드하우스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환경경제학의 최전선을 개척하고 있는 석학 중 한명이다. 그는 대표적인 IAM인 DICE 모델을 개발한 공로로 2018년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다.

DICE 모델은 경제성장률, 인구증가율, 기술혁신, 총생산량과 같은 거시경제변수들 사이에 기온이나 이산화탄소 농도, 강수량, 해수면 상승 등과 같은 기후과학의 변수들을 끼워 넣어 자연환경과 인간의 경제활동을 (분리시키지 않고) ‘통합’하여 이해하고자 한다. 이것은 인간이 야기한 자연환경의 변화(기후변화)가 다시 인간을 압박해올, 이른바 ‘기후위기 시대’의 현실을 충실히 반영한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의 화석연료-의존적인 기술조건 하의 경제성장은 필연적으로 이산화탄소 배출량 증가를 수반하고, 이산화탄소 농도 증가는 기후변화를 야기하며, 기후변화는 다시 일종의 부정적 외부효과로 작용하여 예측불허의 경제적 영향을 낳는다(24). DICE 모델은 여기에 탄소가격 정책과 같은 정책변수가 추가되었을 때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어느 정도의 비용으로 얼마나 줄일 수 있는지, 구체적인 정책목표(기온)를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비용은 어느 정도인지, 비용-편익을 고려한 타당한 기후정책 목표는 얼마인지를 계산해낼 수 있는 복잡한 프로그램이다.

(2018 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 윌리엄 노드하우스)

기후위기의 영향을 예측하기

기후위기를 ‘해결’하는 일에 진지한 관심이 있다면, 맬서스주의적 종말론이나 시장이나 기술이 모든 것을 구원하리라는 낙관론 모두를 지양해야 한다. 종말론이니 낙관론이니 하는 추상적인 거대담론은 자주, 그것을 주장하는 사람의 비대한 자의식의 발로일 뿐이거나, 정작 기후위기 자체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말하고 있지 않다. 기후위기를 ‘정말로’ 해결하고자 한다면 훨씬 ‘실사구시적’ 접근이 필요하다. 먼저 기후위기가 실제로 존재하고, 그것이 인류에게 재앙적 결과를 불러올 것이며, 이 모든 일이 인간의 행위에 의해 가속화되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광범위한 ‘사회적 합의(consensus)’가 있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합의에 기초하여, 기후위기의 영향에 대해서 수치와 데이터에 입각해서 실증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예컨대 막연한 종말론 대신, 인류가 이미 고도로 개입해서 성공적으로 관리하고 있는 영역에서는 기후위기의 영향이 어느 정도 통제가능 할 것이고, 인류의 개입이 제한적이거나 불가능한 영역으로부터 파급될 기후위기의 영향은 예측이 어렵다는 식의 ‘디테일한’ 분석이 필요하다. 저자는 인간사회를 ‘관리된 시스템’, ‘부분적으로 관리된 시스템’, ‘관리되지 않은 시스템’의 세 부문으로 구별하여 기후변화가 인간사회에 미칠 영향에 대한 예측을 시도한다.

‘관리된 시스템’의 경우를 살펴보자. ‘관리된 시스템’이란 ‘사회가 자원의 효율적이고 지속가능한 사용을 위해 조치를 취하는 시스템(107)’으로 ‘농업’과 ‘건강’이 있다. 저자는 기후 변화가 일어나도 이 영역은 비교적 타격이 크지 않을 것으로 전망한다. 산업구조에서 농업이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데다, ‘자유로운 식량 무역’, ‘농업기술 혁신’ 등의 강력한 ‘적응의 힘’이 기후변화의 영향을 상쇄할 것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건강 영역’ 역시 ‘가장 집약적으로 관리된 시스템’이기 때문에 적응의 힘이 더 강할 것이라고 예측했지만, 이 부분은 COVID-19과 같은 인수공통전염병의 주기적 유행을 반영하지 못한 것 같다. 인수공통전염병 유행의 근본적인 원인은 기후변화에 따른 인간과 야생동물의 거주지 경계가 허물어진 데에서 찾을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측이 어려운 이유

그러나 문제는 이 모든 과학적 분석 역시 ‘가설’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기후변화의 영향을 분석하는 데 있어 가장 큰 난점은 저자가 ‘티핑 포인트’라고 표현하는 완전한 예측 불가능성(불확실성)이다. 가령 DICE 모델을 통해서 기후정책의 변화 없이 현재상태를 유지할 경우(‘기준선 시나리오’(71)) 지구의 기온이 몇 도 정도 올라갈 것인지를 추정할 수는 있지만, 그 ‘몇 도 더워진 지구’가 인간사회에 어떤 파국을 가져올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무리 정교한 첨단기후과학을 동원해봐도 정확히 알 수 없다. 그 임계치가 정확히 ‘몇 도’일 것인지도 추정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니까 현재와 같은 탄소배출량을 유지해서 지구의 기온이 올라가더라도 당분간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 반대로 지금 지구의 상태가 이미 ‘임계치’에 거의 근접해 있어서, 앞으로의 0.1도 상승이 결정적인 재앙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기후변화가 불러올 파괴적인 영향이 어쨌든 아직까지는 ‘미래의 일’이라는 사실 역시 정확한 예측을 방해한다. 구체적으로 지구의 온도를 ‘몇 도’ 낮출지에 대한 목표를 설정하기 위해선 기후변화를 완화하기 위해 투입해야 하는 ‘현재 시점에서의 비용’과, 그걸 통해 미래의 재앙을 지연시킴으로써 얻을 수 있는 ‘미래 세대의 편익’을 비교하는 비용-편익 분석이 필요하다. 즉, ‘기후변화정책의 합리적인 목표를 설정하려면 감축비용과 기후위해의 균형점을 찾아야 한다’(298). 경제학에서는 미래가치를 현재가치로 환산하기 위해 ‘할인율’을 사용하는데, 할인율을 지나치게 높게 책정하면 미래세대의 가치를 저평가(할인)하게 되기 때문에 할인율을 어느 수준으로 책정할 것인지는 단순한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윤리적인 문제이다. 저자는 ‘지구온난화를 늦추기 위한 투자는 결국 다른 투자들과 경쟁해야 하며, 할인율은 경쟁관계에 있는 투자들을 비교하기 위한 척도’(283)라고 간주한다. 반면 니콜라스 스턴 같은 경제학자는 미래 세대를 배려한 ‘낮은 할인율’이 윤리적이라고 본다. 할인율 책정의 문제가 정교한 경제학적 문제일 뿐 아니라 미래세대의 이익에 관한 매우 규범적인 문제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예측의 어려움(불확실성)은 기후위기를 부정하는(Climate Change denial) 보수적인 음모론이 싹트기 좋은 배경을 제공한다. 최근 국내에도 기후위기 문제를 사소한 것으로 취급하고, (실은 존재하지도 않는) ‘급진적 환경주의자’들을 비난하는 유형의 비과학적인 책들이 여럿 번역 소개되어 꽤나 이례적인 주목을 끈 바 있다(『종말론적 환경주의』(패트릭 무어, 2021),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마이클 셸런버거, 2021), 『팩트풀니스』 (한스 로슬링, 2019), 『불편한 사실』 (그레고리 라이트스톤, 2021) 등). 이런 책에 열광하는 대중들의 반지성주의를 개탄하는 것도 좋지만, 사실 이런 음모론의 유행은 기후위기 문제의 독특한 ‘예측불가능성’이 처음부터 배태하고 있었던 것이라는 사실에도 적절히 주목해야 할 것이다.

파스칼의 도박

“신의 존재를 믿는 쪽이 안 믿는 쪽보다 나은 도박이다. 왜냐하면 신의 존재를 믿는 쪽의 기대가치가 안 믿는 쪽의 기대기치보다 언제나 크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기서 신을 믿지 않았을 경우 감당하게 될 손해가 비대칭적으로 크기 때문에 이왕이면 그냥 신을 믿는 편이 낫다는 파스칼의 재치를 떠올려볼 수 있다(적극적 무신론자는 죽고나서 지옥에 떨어질 것이다). 오늘날의 ‘기후 카지노’에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기후위기 문제에 주목할 경우 감수해야 하는 심리적 불편함, 그리고 구체적으로 탄소배출 감축을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에 비해, 기후위기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가 인류가 맞이하게 될 재앙의 파괴력은 압도적이다. 분명하지 않을 때는 덜 위험한 쪽을 선택하는 편이 낫다. 그러니까 기후위기 문제를 중시하는 것은 감성의 문제가 아닌 합리성의 문제이다.

저자는 기후변화를 늦추는 방법을 ‘적응’, ‘지구공학’, ‘완화’의 세 가지로 유형화하여 제시하며, 최종적으로 ‘탄소가격제 도입’이라는 ‘완화’방법을 통해 ‘저탄소 세상’을 제도적으로 설계한다. 파스칼의 논변에 동의할 수 있다면, 이 책의 일독을 통해 환경경제학의 최전선에서 제안되고 있는 기후위기에 대한 실질적 해법을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

(내주는 “윌리엄 노드하우스, (2017), 『기후 카지노』, 한길사”)

'기타 도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기고] 무엇을 먹을 것인가  (0) 2022.06.04
[기고] 쓰레기 대란이 온다  (0) 2022.05.19
[기고] 원자력은 대안인가?  (0) 2022.05.10
[기고] 노동자와 기후위기  (0) 2022.05.08
[서평] 읽는 직업 (이은혜)  (0) 2022.01.01
TAGS.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