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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8. 29. 14:56

영국사 연구의 흐름과 쟁점(2)

* 이 글은 『역사학의 역사』(영국사학회, 2020)에 기초하여 작성되었다. * 『역사학의 역사』는 ‘영국사 연구의 흐름과 쟁점’을 정리한 논문 모음집이다. 자잘한 오자들이 다소 아쉽지만 일반 독자 입장에서 접근성이 떨어지는 비교적 최신의 연구까지 망라하고 있어 유용하다. 3) 새로운 관점의 부상: 지성사, 여성사, 지구사, 군사사 - 지성사(intellectual history) 케임브리지 언어 맥락주의 학파의 ‘지성사’는 일반명사가 아니라 고유명사이다 – 이 그룹에 속한 학자들은 고유한 전통과 역사를 가진 사료접근 철학을 공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휘그주의 및 맑스주의 사관의 도식적, 자의적인 정치사상사 이해는 근본적으로 비역사적인 것이며, 과거의 문헌들은 당대의 정치적 논쟁 구도와 그것이 구성하는 언..

2022. 8. 27. 20:27

영국사 연구의 흐름과 쟁점(1)

* 이 글은 『역사학의 역사』(영국사학회, 2020)에 기초하여 작성되었다. * 『역사학의 역사』는 ‘영국사 연구의 흐름과 쟁점’을 정리한 논문 모음집이다. 자잘한 오자들이 다소 아쉽지만 일반 독자 입장에서 접근성이 떨어지는 비교적 최신의 연구까지 망라하고 있어 유용하다. 1) 17-18세기: 잉글랜드 혁명(1642~1651), 명예혁명(1688), 산업혁명(1760~1830)에 대한 연구사 정리 - 잉글랜드 혁명(1642~1651) 찰스 1세와 의회의 충돌이 과열되어 벌어진 의회파와 왕당파 사이의 ‘내전’ 끝에 찰스 1세가 처형당하고 올리버 크롬웰이 ‘호국경(Lord Protector)’에 오르는 일련의 과정을 흔히 “청교도 혁명”이나 “영국혁명”이라고 일컫는다. 그런데 이 과정을 규정하는 어휘들은 특..

2022. 8. 26. 06:52

안병진, <미국은 그 미국이 아니다>: 바이든 시대 미국 정치

저자는 기후위기와 포퓰리즘 및 새로운 세대(MZ)의 부상으로 인한 ‘뉴노멀’ 시대에는 과거와 같은 구도로 미국정치를 해설할 수 없음을 먼저 지적한다. ‘진보적인’ 민주당과 ‘보수적인’ 공화당으로 양분된 미국의 정치구도에 대한 기존의 설명 틀은 이른바 ‘유권자 재편성론(Voter Realignment theory)’이었다. 중대선거를 계기로 유권자분포가 재구성되면서 정당체계도 바뀐다는 이 설명은, 루즈벨트 당선을 계기로 미국 민주당이 지금과 같은 진보적인 정당으로 변모한 사실을 적절하게 설명한다. 그렇지만 ‘혼돈의 시대’인 지금은 다른 설명이 요구된다. 기후위기로 인해 화석연료에 의지하던 자본주의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유지되기 어려울 전망이고, 포퓰리즘 세력의 등장으로 의회 민주주의가 위협받기 시작하면서..

2022. 8. 25. 23:23

김종영, <서울대 10개 만들기>를 읽고

개인적으로 김종영 교수(이하 존칭 생략)의 애독자이다. 그는 이철승 교수와 함께 한국사회의 중요하고 논쟁적인 주제에 대해 현역 사회학자로서 회피하는 기색 없이 ‘정면승부’하는 탁월한 비판적 지성인이라고 생각한다. 두 사람은 연배도 비슷하다. “지식과 권력 3부작(『지배 받는 지배자』, 『지민의 탄생』, 『하이브리드 한의학』)” 다음으로 김종영이 관심을 기울이는 주제는 ‘교육사회학’이다. 이전에도 강준만(“서울대의 나라”)이나 김상봉(“학벌사회”) 같은 ‘대학교수’들이 학벌문제에 대해 개탄하는 목소리를 낸 적은 있었지만, 대부분 학벌이 갖는 ‘지위재’로서의 성격을 강조하는데 그쳐 구체적인 대안을 도출하는 데는 한계를 보였다. 김종영은 대학 학벌의 ‘지위재’로서의 성격에 충분히 주목하는 동시에, 현대 지식자..

2022. 8. 3. 02:30

<연구자의 탄생>과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

『연구자의 탄생』 - 김성익 외 대략 80년대에 출생했고, 90년대에 10대를 보낸, 2000년대 학번의, (이 책의 공저자 중 한 사람인) 안은별이 개념화한 바 있는 ‘IMF 키즈’ 세대에 속한 10명의 ‘인문학 연구자’들의 자기기술지(Auto-ethnography)로 기획된 책이다. 최근 대학에서는 분과별로 세대교체가 이루어지고 있는 시점인데, 이른바 ‘MZ 세대’인 내가 학교에서 마주할(하고 있는) ‘새로 부임한 젊은 교수’들이 대략 이 세대의 인물들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방금 MZ 세대를 검색해보니 ‘MZ세대’는 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의 출생집단을 통칭하는 개념이라고 한다 – 교수님, 우리 같은 세대였어요!) ‘연구노동자의 자기기술지’에 가까운 글도 있었고 자신들의 연구관심에 대한 시..

2022. 7. 30. 00:35

『달콤한 노래』(레일라 슬리마니)와 <기생충>(봉준호)

레일라 슬리마니의 『달콤한 노래』(2016)와 봉준호의 (2019)의 유사성은 “계급별로 거주하는 공간이 완전히 분리되다시피 한 후기근대사회에서 계급문제를 어떻게 서사화 할 것인가?”라는 물음에 당대 예술가들이 대응하는 방식에 어느 정도 정형화된 패턴이 있음을 시사한다. 계급문제를 드러내기 위해 창작자는 먼저 하층 계급과 상층 계급을 ‘한 집’에 모아두어야 하는데, ‘보모’(달콤한 노래)나 ‘과외교사’(기생충)와 같은 ‘입주가사노동’은 아주 좋은 장치가 된다. 스탕달이 200여년전에 이미 『적과 흑』(1830)에서 이 방법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입주가사노동 모티브’는 서사예술이 계층간 공간적 분리 문제를 해결하는 거의 필연적인 방법이라고까지 생각된다. (김기영의 (1960)까지!) 창작자는 이..

2022. 7. 5. 04:55

『종의 기원』(정유정)과 <헤어질 결심>(박찬욱)

어제 박찬욱 감독의 을 보고 실망했다. 나는 정서경 작가와 협업을 시작한 이후의 박찬욱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대사가 유치하고 서사와 메타포는 조잡하며 기교와 트릭이 과해서 영화에 해가 된다. 드라마 작가 김은숙의 대사는, 그것이 일종의 ‘밈’이 되어 전국민적인 인기몰이를 하곤 한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제아무리 ‘오글거릴지언정’ 최소한 대중의 (유치하지만 솔직한) 니즈에 복무하는 측면이라도 있는데, 정서경의 숱한 문어체 대사들은 당최 무엇을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없다(별로 코믹하지도 않다!). ‘오글거리는 문어체’라는 사실 자체보다 문제적인 것은, 그것이 뭔가 ‘진지한 의미를 담고 있는 체’하며 관객의 허영심에 호소한다는 ‘비윤리성’의 측면이다(외국인 관객에게는 이런 지점이 덜 거슬릴 수도 있겠다)..

2022. 6. 26. 06:40

육영수,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을 읽고

서양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결정적인 사건을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1789년에 시작된 ‘프랑스 대혁명’일 수밖에 없다. 프랑스 혁명은 서구 세계가 근대로 진입하는 데 있어 분기점이 되는 거대한 사건이었지만, 그 의미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갑론을박의 역사가 길고 복잡했던 만큼 “18세기말에서 19세기초 프랑스”라는 시공간에 대해 섣불리 몇 마디 얹는 것은 만용이다. 중앙대학교 사학과 육영수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친근한 문체로 프랑스 혁명의 ‘이모저모’를 균형 있게 다루며 이 거대하고 육중한 사건에 대한 입문을 돕는다. 로베스피에르로부터 시작해서 1848년 혁명, 파리코뮌, 그리고 러시아 혁명으로 이어지는 ‘혁명의 교리문답’을 구축하는 것이 프랑스 혁명에 대한 ‘정통적인’ 마르크스주의적 해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