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병진, <미국은 그 미국이 아니다>: 바이든 시대 미국 정치

저자는 기후위기와 포퓰리즘 및 새로운 세대(MZ)의 부상으로 인한 ‘뉴노멀’ 시대에는 과거와 같은 구도로 미국정치를 해설할 수 없음을 먼저 지적한다. ‘진보적인’ 민주당과 ‘보수적인’ 공화당으로 양분된 미국의 정치구도에 대한 기존의 설명 틀은 이른바 ‘유권자 재편성론(Voter Realignment theory)’이었다. 중대선거를 계기로 유권자분포가 재구성되면서 정당체계도 바뀐다는 이 설명은, 루즈벨트 당선을 계기로 미국 민주당이 지금과 같은 진보적인 정당으로 변모한 사실을 적절하게 설명한다. 그렇지만 ‘혼돈의 시대’인 지금은 다른 설명이 요구된다. 기후위기로 인해 화석연료에 의지하던 자본주의는 이전과 같은 방식으로 유지되기 어려울 전망이고, 포퓰리즘 세력의 등장으로 의회 민주주의가 위협받기 시작하면서 기존의 ‘민주당-공화당 구도’로 설명할 수 없는 형태의 여론과 정치세력이 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코로넥(Skowronek) 같은 저명한 대통령 리더십 연구자도 트럼프를 기존의 미국 대통령 유형으로 분류하는데 실패한다. 이에 저자는 오늘날의 미국정치지형을 이해하기 위한 설명 틀로 “토크빌주의”, “헌팅턴주의”, “데브스주의”로 이루어진 새로운 삼분법을 제안한다. 이 삼분법은 기존의 민주당-공화당 이분법을 가로지른다. “토크빌주의”란 미국헌법의 건강한 가치에 근거한 개혁적 보수를 의미하고, “헌팅턴주의”와 “데브스주의”는 각각 미국 내의 우파 포퓰리즘과 좌파 포퓰리즘 세력을 지칭한다.

토크빌주의의 연원을 찾기 위해선 건국 시조들의 미국 헌법을 둘러싼 논쟁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단순화하기 난감한 측면이 있지만, 이 논쟁은 기본적으로 연방정부의 권한 확대를 주장했던 연방주의자와 연방정부에 맞서 주 정부의 권리를 옹호한 반연방주의자 사이의 논쟁이었다. 저자는 아렌트를 따라, 전자의 대표인 제임스 매디슨과 알렉산더 해밀턴을 엘리트주의적 대의민주주의의 옹호자로, 후자의 대표인 토마스 제퍼슨을 민중주의적 민주주의의 옹호자로 단순화한다. 토크빌은 일찍이 민주주의의 과잉과 다수의 폭정을 견제할 수 있는 매디슨적 민주주의를 높이 평가한 바 있다.[각주:1] 토크빌주의 세력으로는 “더 나은 재건(Build Back Better)”을 천명한, 수전 라이스(Susan Rice)와 카멀라 해리스(Kamala Harris)를 비롯한 ‘조 바이든 사단’이 대표적이지만, 공화당의 합리적 보수주의자인 존 케이식(John Richard Kasich), 존 멕케인(John McCain), 밋 롬니(Mitt Romney), 보비 진덜(Bobby Jindal) 등도 여기에 포함될 수 있으며, 포퓰리즘 세력의 부상에 맞서 미국의 주류가 보다 탄력적이고 관용적으로 소수자들을 포용하여 내구성을 길러야 한다고 주장하는 개혁적인 성향의 정치인들도 포함시킬 수 있다.[각주:2] 

최근 부상하고 있는 헌팅턴주의와 데브스주의는 ‘반연방주의 사상’의 부활이다. ‘헌팅턴주의’는 오늘날의 상황을 미국 – 백인 문명을 수호하기 위한 일종의 ‘문화전쟁’으로 인식하는 우파 포퓰리스트들의 사고방식에 대한 저자의 명명이다. 헌팅턴주의는 “50년대 매카시즘 - 60년대 조지 월리스 운동 – 90년대 깅그리치 하원의장의 반클린턴 전선 – 2010년대 티파티 운동(폴 라이언, 마크 루비오, 테드 크루즈)”으로 이어지는 유구한 역사를 자랑하며, ‘트럼프’라는 마피아적인 캐릭터에 이르러 정점을 찍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트럼프 시대에 일어났던 일들을 떠올리면 우파 포퓰리스트들이 상황을 ‘문화전쟁’으로 인식했다는 것이 과장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브레이트바트 뉴스(Breitbart News)와 큐어넌(Quanon)으로 대변되는 극우 음모론의 확산과, 대통령인 트럼프와 하원의원인 마저리 테일러(Marjorie Taylor Greene) 같은 우파 정치인들이 이를 옹호하고 나서는 상황, 그리고 알렉산드르 두긴이나 스티브 배넌 같은 우파 이데올로그들의 등장은 확실히 이전과는 결이 다른 오늘날 우익 포퓰리즘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듯하다. 이들은 트럼프 정권 말, 긴즈버그(Ruth Ginsburg) 대법관의 공석에 보수 성향의 에이미 배럿(Amy Coney Barrett)을 임명하면서 마지막까지 ‘문화전쟁’의 고삐를 늦추지 않았다. 민주당도 루즈벨트 이후 금기시된 ‘코트-패킹(Court Packing)’까지 꺼내 들며 이에 맞선 바 있다.

한편, 최근 버니 샌더스,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 코르테스(AOC) 같은 ‘민주사회주의자’들의 등장은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 정당이 없는가”라는 ‘미국 예외주의 테제’를 무색하게 한다. 저자는 그러나 미국에서도 사회주의 운동의 흐름이 지속적으로 존재했음을 상기하며 오늘날 민주사회주의자들의 등장이 결코 우연이 아님을 강조한다. 유진 데브스(Eugene Debs)가 활약했던 20세기 초반에 미국의 사회주의 운동은 절정을 찍고 쇠퇴하다가 70년대에는 세 분파로 분열된다. 베이어드 러스틴(Bayard Rustin)이 이끄는 우파(노동조합주의), 데브스의 노선을 계승한 독립적인 좌파, 그리고 제시 잭슨(Jesse Jackson)을 대선후보로 내세워 민주당을 사회민주주의 정당으로 급진화하자는 마이클 해링턴(Michael Harrington)의 중도파(민주사회주의 조직위원회, DSOC)가 그것인데, 샌더스는 바로 이 중도파의 후예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08년 금융위기 이후 월가 점령 시위를 계기로 미국의 토마스 페인과 제퍼슨적 민중주의의 건강한 유산이 되살아나 ‘데브스주의’의 명맥을 잇고 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앞으로 미국 국내정치의 관건은 민주당의 ‘토크빌주의자’들이 ‘데브스주의’와 어느 수준까지 연대하여 ‘헌팅턴주의자’들을 고립시킬 수 있을 것인가라고 할 수 있다.

전체적으로 내용과 구성이 엉성하고 부정확하며(개념정의가 명확하지 않고 반복도 많다), 비문도 눈에 띄게 많은 편이다. 마지막에 굳이 덧붙인 ‘미국 정치의 변화와 한반도의 미래’라는 제목의 에필로그는 정말로 불필요했다고 생각한다. 잘 쓰인 책이 아니기 때문에 요약이 어려웠다. 전체적으로 마음에 안 드는 구석이 많은 저자와 책이었지만, 미국정치의 다양한 ‘밈’들을 수집하거나, 미국정치와 관련된 후속 독서를 자극하는 용도로는 괜찮은 책이다.

 

 

  1. 미국 헌법의 이념적 기원이 로크식의 소유적 개인주의에 있는지, 고전적인 시민적 공화주의에 있는지는 오랜 논쟁거리인데, 저자는 미국 헌법의 기원이 공화주의보다는 소유적 개인주의와 엘리트주의에 있지 않겠느냐는 제니퍼 네델스키(Jennifer Nedelsky)의 견해를 채택하면서도, 그가 이름 붙인 ‘토크빌주의’를 구체화하면서는 자유주의와 공화주의를 뭉뚱그린다. 그리고 암묵적으로 ‘공화주의’를 보다 포용적인 형태의, ‘진보적인’ 자유주의 내지는 공동체주의 쯤으로 모호하게 규정하고 있다. [본문으로]
  2. 이 대목 역시 모호한 지점인데, 그러면 ‘토크빌주의’는 후술할 ‘데브스주의’와 뭐가 다른 건가? 가령, 저자가 토크빌주의의 대표로 반복해서 언급하는 국제정치학자 존 아이켄베리가 미국 자유주의가 사회민주주의적인 요소를 가미해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그가 데브스주의자가 아닌 이유는 뭔가? 또는 샌더스나 엘리자베스 워런이 토크빌주의자가 아닌 이유는 뭔가? 뭔가 미묘하게 다르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는 있지만 저자의 설명만으로는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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