훙호펑, <차이나 붐>을 읽고

1. 총평

중국 정치경제 관련서 중 가장 종합적이다. 1부는 비교 역사사회학적인 관점에서 중국 자본주의의 기원을 거시적으로 조망하고, 2부는 이코노미스트적인 감각으로 중국 경제의 미래를 전망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저자는 중국식 성장모델이 세계적 불평등을 해소하고 미국에 맞서 새로운 ‘보편’으로 부상할 것이라는 신화를 공박하고자 한다.

 

2. 중국에서 자본의 장기적 부상

중국 경제사 서술이 흔히 마오 집권기의 사회주의적 계획경제(1949~1978)와 덩샤오핑 집권기의 자본주의적 전환(1978~) 사이에 극적인 단절을 설정하는 것에 반하여, 저자의 비교 역사사회학은 두 시기가 거시적으로 ‘자본의 장기적 부상’이라는 측면에서 연속적임을 보여준다. 17-18세기 중국의 상업적 번영이 19세기 유럽과 같은 자본주의로의 이행과 산업혁명으로 발전하지 못한 것은 중국의 정치제도와 계급 동학을 통해 설명할 수 있다. 한 경제가 자본주의로 이행하기 위해서는 농업 부문의 잉여를 축적‧집약하여 산업 발전의 동력으로 이전할 도시 기반의 엘리트 계급(자본가)이 있어야 하는데, 청나라 말기의 문화적 인습과 정치 제도는 이 계층을 재생산하는데 실패했다. 부를 축적한 상인 집단의 자녀들은 주로 과거 시험에 응시하여 향신‧국가 엘리트화 되었기 때문에 중국에는 계층으로서의 ‘상인 집단’이 형성되지 못했다. 또한 유럽에서 ‘국가’가 체계적으로 노동을 규율함으로써 각종 노동소요(아래로부터의 저항)로부터 자본가 계급을 보호한 것에 반해, 중국의 ‘가부장적 국가’는 노동자를 소작농과 같은 온정적 보호의 대상으로 간주하여 적극적으로 노동을 규율하지 않아 자본가 계급을 보호하는데 실패했다. 계급 재생산을 제약당한 중국 연해 지역의 상인 엘리트들은 중국 밖으로 나가서 자본을 축적했으니, 이들이 바로 후일 동아시아 근대화에 자금을 대게 되는 화교 자본가들이다. 청나라 말기로 가면 종교 기반의 각종 내란(백련교도의 난, 태평천국 운동)으로 인해 지방에 군벌 엘리트(군사-약탈 엘리트)가 형성되었고, 국가능력 자체가 쇠퇴하면서 독일‧일본‧러시아 같은 후발 근대화 모델(국가 자율성을 통한 자본의 시초축적)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신해혁명을 전후로 하여 엘리트 집단이 뒤늦게 자본주의적 산업화 방안을 모색했지만, 강력한 국가기구가 부재한 상황에서 이는 불가능한 이상이었다.

중국에서 농촌의 잉여를 산업성장의 동력으로 전환하기 시작한 것은 공산당이 집권 이후 인민공사를 통해 주도한 ‘농촌집단화’를 통해서였다. 1958년~1961년의 ‘대약진 운동’은 농촌의 잉여를 폭력적으로 착취하여 포집, 이를 도시의 공업화에 사용함으로써 자본주의로의 이행을 촉진했다. 공산당은 농민의 도시로의 이주를 제한하는 대신 인민공사를 통해 농촌에 각종 사회기반 시설을 건립함으로써 거대한 규모의 ‘산업 예비군’(예비 노동력)을 조성하였고, 농촌을 쥐어짠 덕분에 라틴 아메리카 등 다른 개도국들과 달리 대외채무에 의존하지 않을 수 있었다. 이 두 가지 ‘마오의 유산’은 이후 중국이 빠르게 자본주의로 이행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원천이 되었다. 다시 말해서 마오 집권기는 ‘계획 경제의 실패 사례’라기보다 ‘자본주의로의 이행 과정’이었다고 볼 수 있다.

 

3. 80~90년대 개혁개방의 성격: 동아시아 발전국가 모델과의 3가지 차이점

80년대와 90년대에는 국유 기업의 자본주의적 전환이 이루어지며 중국에 본격적으로 자본주의가 자리잡기 시작한다. 이때 고용불안정과 (가격개혁으로 인한) 물가 상승이 심각했고, 이 과정에서 새로운 ‘관료자본가’ 그룹이 형성되었다. 1989년 천안문 항쟁은 명백히 이러한 전환에 대한 저항이었는데, 덩샤오핑이 이것을 진압하고 1992년에 남순강화를 단행한 것은 여러모로 상징적이다. 이를 두고 황야성(Huang Yasheng)은 <중국 특색의 자본주의>에서 개혁의 성격과 속도의 측면에서 80년대와 90년대의 단절을 강조하기도 한다.

이 시기 중국의 정치경제는 동 시기 동아시아의 신흥공업국가(한국, 대만, 홍콩, 싱가포르)를 설명하는 ‘발전국가 모델’과 사뭇 다르다. 동아시아 발전국가가 중앙 집권화된 정부의 계획합리성에 기초한 것이었다면, 중국식 발전모델은 ‘분절화된 권위주의’(Lieberthal, 1992) 내지 ‘전도된 연방주의’(Mertha, 2005)라고 불릴 만큼 중앙정부보다 성급 지방정부 단위에 기초해 있었으며, 지방정부끼리의 과도한 경쟁이 조정되지 않은 과잉 생산과 투자의 원인이 되기도 했다.

또한 중국식 성장의 핵심 중 하나는 농촌을 고의적으로 파괴하고 침체시켜서 지속적인 이농을 유도, 상시적인 저임금 노동 공급을 가능케 함으로써 도시 노동자의 임금을 통제하고 내수 소비를 억제하는 것이었는데, 이 역시 동아시아 발전국가와 다른 점이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들은 냉전 지정학의 영향 하에서 농촌이 급진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해 농촌의 근대화와 발전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새마을 운동 등). 중국의 연해 도시 위주 발전 정책은 공산당 엘리트들의 출신 성분과도 유관하다. 장쩌민(상하이방)과 시진핑(태자당)은 모두 연해 도시 지역 출신 지도자들이다. 내륙 출신의 후진타오 집권기에 일시적으로 상무위원회에 내륙 지역 출신 구성원이 늘어나면서 농민의 생활수준 증진과 내수 진작이 이루어지며 중국경제의 재조정이 시도되기도 했으나 시진핑 집권 이후 그것은 다시 불투명해졌다.

동아시아 발전국가들이 이루었던 ‘기러기 대형’은 일본을 선두로 하여 부가가치가 높은 순서로 위계를 이루어 특정 부문의 최종소비재를 서구 시장에 수출하는 것이었던 반면, 중국의 ‘판다형 원형 체제’는 각종 부품재와 자본재를 주변국으로부터 수입, 최종소비재 생산을 독점하여 서구 시장에 수출하는 ‘중국 중심의 생산 네트워크’이다. 이를 두고 한국을 비롯한 부품재 수출국들은 자국 산업의 공동화를 우려하고, 아프리카나 라틴 아메리카 같은 원자재 수출국은 자국 경제의 대중국 종속을 우려한다. 남아시아 국가들의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는 대부분 중국 국유은행의 투자에 의존하고 있다. 중국이 이와 같은 주변국의 높은 대중국 경제의존도를 활용해서 외교적인 사안을 놓고 주변국에 ‘경제보복’을 가하며 지역적인 수준에서 패권을 휘두르고 있는 상황은 하마시타 다케시가 제안한 동아시아 국제관계의 설명 틀로써의 ‘조공-무역 체제’로도 설명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인다. 다만 주변국의 중국에 대한 문화적‧학문적 존경심이 결여되어 있다는 점이 전근대 시대와의 차이점이다.

 

4. 미국과 중국의 경제적 상호의존성: 달러 패권의 영속화

그렇다면 중국은 미국을 대체할 새로운 지구적 패권국가로 부상할 것인가? 훙호펑은 중국이 결코 현상변경국이 아니라는 근거로 중국의 ‘미국 국채 중독’을 들고 있다. 중국의 과잉저축-소비억제형 성장모델은 미국의 (부채주도) 과잉소비에 의해 뒷받침되고 있는데, 둘을 매개하는 것이 바로 미국 국채이다. 중국이 미국을 상대로 무역흑자를 기록하면(순수출) 달러가 중국에 유입되는데, 중국은 이 달러로 가장 안전한 달러표시 자산인 미국 국채를 대거 구매한다(순자본유출, 자본 수출). 다른 선택지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국민들은 이 자금으로 다시 중국의 수입재를 구입하거나 자국의 금융자산(부동산)에 투자한다. 미국인들이 없는 돈에 과잉소비를 지속할 수 있도록 중국이 자금을 대주는 셈이다. 한편, 고정환율제 국가인 중국이 통화를 발행하기 위해서는 무역수지 흑자가 필수적인데, 중국의 대미 무역 흑자는 중국 국유은행 유동성의 중요한 원천이 된다.

[국민소득 항등방정식을 통한 이해]
Y=C+I+G+NX

Y-C-G=I+NX=S
S-I=NX
(S: 저축, I: 투자, NX: 순수출)

이 상황은 20세기 초반 제국주의 식민 모국이 자국의 과소소비(과잉생산)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식민지에 자본을 수출, 그들을 채무국으로 만들어 무역적자를 감당하도록 했던 것과 유사하다. 그러나 20세기 초의 식민지는 이 적자를 조세나 징발을 통해 감당할 수 있었던 것에 반해, 오늘날 미국에 공급된 유동성은 대부분 금융과 부동산 투기로 유입되어 세계경제의 근본적인 불안정성을 높인다는 점에서 두 시기는 근본적으로 다르다(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는 자산가격이 무너지면서 미국의 소비가 급감한 사건이었다). 현재의 ‘글로벌 임밸런스’는 제국주의 시대의 세계 불균형보다 더욱 불안정하다는 것이 저자의 평가다.

20세기 초의 구도를 오늘날에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중국이 미국을 식민통치하고 있는 모양새이나, 상황은 정반대다. 미국의 소비 수요가 위축되는 것은 최대 판매자인 중국에게 해가 되며, 중국은 대부분의 결제를 달러로 하고 있어 달러 본위제 및 미국의 지정학적 패권이 유지되도록 하는 핵심 축이기 때문이다(이 책은 달러패권이 경제적인 이유가 아니라 지정학적인 이유로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인상적으로 설명한다). 인민폐가 국제거래통화로서 달러를 대체하려면 금융자유화를 통한 위안화의 완전태환성이 필요한데, 중국의 금융자유화는 환율 변동으로 인한 엄청난 리스크를 수반한다는 점에서 인민폐의 달러화 대체는 상상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계기로 미국을 비롯한 서구가 쇠퇴하고 중국이 세계경제의 중심으로 떠오르기 시작했다는 진단은 잘못이다. 미국 국채는 중국의 새로운 아편이다. 니얼 퍼거슨의 ‘차이메리카 테제’를 따라, 중국은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가 지속되도록 하는 주요한 원인이자 배경이지, 도전자가 아니다.

 

5. 세계적 불평등 감소와 국제질서의 재편?

중국의 급성장으로 인해 세계적 수준의 불평등이 경감되었다는 일부 지식인들과 국제기구의 평가에 대해서도 이 책은 다각도로 검토하고 있다. 중국 내 불평등은 마오쩌둥 시기에는 당원과 일반 노동자 사이의 ‘권력 불평등’의 형태로 존재해오다가, 80년대 이후 시장개혁을 거치면서 도농 간, 지역 간, 계급 간의 ‘소득 불평등’ 형태로 변화되었다. 중국 경제의 성장을 통한 절대빈곤 인구의 감소는 국가 간의 불평등을 감소시키는데 부분적으로 기여했으나, 그 감소분이 중국의 국내 불평등 증가로 인해 상쇄된다면 세계적 불평등 감소에 대한 중국의 기여는 달리 평가해야 할 것이다. 중국인 전체의 평균 소득이 세계 평균보다 낮을 때에는 중국 경제성장의 불평등 감소 효과가 더 크지만, 중국인의 평균 소득이 세계 평균보다 높아지기 시작하면 중국 내 불평등 증가 효과가 더욱 커져서 중국의 성장은 세계적 불평등 감소에 기여하지 못한다고 저자는 분석한다. 따라서 80년대 이후 현재까지는 중국의 성장이 세계적 불평등 감소에 어느 정도 기여해왔으나, 중국의 성장이 유지되든 둔화되든, 중국의 평균 소득이 세계평균을 넘어서는 시점부터 중국의 성장은 오히려 세계적 불평등 악화를 가속화하게 된다.

중국의 글로벌 리더십 역시 제한적으로만 의미가 있었다. 과거 제3세계 개도국들은 미국 주도의 국제기구와 서구의 다국적 기업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었는데, 중국이 제3세계 시장에 진입하면서 제3세계 국가들의 국제적 협상력이 상대적으로 늘어나며 중국은 제1세계와 제3세계 사이의 국제적 권력관계에 미세한 균열을 일으켰다. 그러나 중국 역시 제3세계에 대하여 서구와 동일한 자본주의적 이윤창출의 논리에 기반해 접근한다는 점에서, 중국이 이 이상의 세계적 질서 재편을 시도하고 있다는 진단은 과장이다.

저자 훙호펑

6. 정리

이상의 사실들을 고려할 때, 중국이 미국 주도의 세계질서를 근본적으로 변경할 것이라는 진단이나, 나아가 중국식 발전모델을 대안적 발전의 비전으로 평가하려는 시도는 잘못되었다. 저자에 따르면 중국은 오히려 장기 침체의 위기에 직면해 있으며, 지금까지의 발전경로에 대한 고통스러운 재조정 과정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정치적 자유화는 이 과정의 고통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저자가 서문에 밝히고 있듯 홍콩 출신이며, 존스 홉킨스 대학 출신으로서 조반니 아리기의 제자였다는 저자의 배경이 저자의 거시-역사적인 시각을 가능케 했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날 중국을 바라보는 관점이 지나치게 정치-편향적이거나 경제-편향적인 것에 반하여, 훙호펑은 정치와 경제의 상호 엮임을 거시-역사사회학적으로 조망함으로써 ‘중국’에 대한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시각을 제공한다. 다만 이 책은 일종의 논문 모음집이라서 중복되는 내용이 적지 않았다. 서로 다른 맥락에서 동일한 내용이 반복되다 보니 완결된 단행본이라는 느낌은 잘 들지 않았다. 최근 동일한 역자(하남석 교수)에 의해 번역된 <제국의 충돌>도 조만간 읽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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