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읽는 직업 (이은혜)

출판의 세계

지인들이 내가 고르는 책의 제목을 보고 그런 책은 누가 읽느냐고 핀잔을 주는 일이 잦다. 그런데 사실 나도 의문이었다. ‘이런 책은 누가 낼까?’ 한국 출판계가 때로 존경스러운 것은, 정말 아무도 읽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을 척척 출판해낸다는 것이다. 물론 이런 책들은 하나같이 매우 빠르게 절판되어 버린다.

 

『읽는 직업』은 인문사회출판사 글항아리의 편집장인 이은혜의 직업 에세이. 글항아리는누가 이런 책을 읽을까싶은 인문사회서적들을 많이 기획해내는 출판사 중 하나다. 나는 출판계의 자세한 사정이나 그 작동방식에 대해 무지하기 때문에 그런 책들을 출판해주는 출판사에 대해서 막연한 감사존경의 마음과 더불어 엄청난 궁금증을 가지고 있었다. 이 책은 저자의 출판 기획, 편집 관련 경험담을 통해 출판계가 돌아가는 모습을 생생하게 그려낸다. 출판의 지휘자인 편집자가 어떤 사람인지, 읽는 것이 직업인 사람들은 어떤 독서철학을 가지고 있는지도 덤으로 알 수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책에 대해 개인적으로 궁금했던 것들을 몇 가지 해결할 수 있었다. 틈만 나면 수시로 책을 사 나르는 나는 최근 절서(節書)’를 다짐한 바 있는데, 그 구체적인 금액 기준이 필요하던 차였다. 직업적으로 책을 다루고, 책을 읽는 것이 직업인 사람은 한달에 책을 몇 권이나 살까? 책의 말미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저자는 한 달에 30만원 정도를 책 사는데 들인다고 한다. 나처럼 절서를 다짐한 독자라면 이것을 기준으로 삼아 앞으로 책 구매를 자제해볼 수 있겠다.

 

두번째, ‘누가 읽을까싶은 책들을 기획하는 것은 무슨 심보일까? 중요한 책들을 독자에게 소개하겠다는 고귀한 사명감이라도 가지고 임하는 것일까? 의외로 저자는 책에서 줄곧 자신의 마케터로서의 정체성을 강조한다. 편집자는 출판사의 매출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존재들이다. 따라서 기획을 할 때도 지나치게 학술적이거나 마이너한 주제를 다루는 전문서는 기획하지 않는다. 기준은 천권이다. 아무리 중요한 책도 천 권 이상 팔 자신이 없으면 모두를 위해 출간하지 않는다고 한다. 절판과 복간의 기준도 비교적 명확했다. 1년에 100권 이상 주문이 들어오지 않는 책은 과감하게 절판시킨다. 절판된 책을 복간할 때의 목표치는 대략 1000권 아래이다. 나는 이 대목에서 내가 보는 책을 함께읽는 가상의 독서 공동체의 규모를 가늠할 수 있었다. 우리는 많아야 천 명정도의 모임을 이루고서아무도 읽지 않을 것 같은 책들을 읽으며 저자-편집자와 함께 출판계를 지탱하고 있는 셈이다.

 

한 권의 책이 출판되는 과정에 관여하는 사람은 저자와 편집자만은 아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에피소드를 통해 외서기획자, 번역자, 감수자가 출판기획 과정에서 어떻게 교류하고 뒤얽히는지 엿볼 수 있다. 이들은 대개 특수고용의 형태로 묶여 함께 작업하며, 편집자는 이 과정에 두루 관여한다. 저자가 성공적인 출판기획으로 반복해서 언급하는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의 출간과정은 출판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단적인 예다. 천 페이지가 넘는 원고를 번역자가 나누어 번역한 것을 하나씩 메일로 보내오면, 편집자를 비롯한 리딩그룹은 교정 교열을 보고, 검수자는 밤새워 원문과 번역문을 대조해가며 의견을 보내온다. 저자는 『21세기 자본』을 편집하여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렸다고 한다. 책은 분명히 그것에 투입되는 노동의 양과 질에 비해 저렴한 재화이다.

 

이 책을 다 읽은 뒤에도 출판계에 대해 풀리지 않는 몇몇 의문이 있다. 논픽션이 아닌 문학 출판 편집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e-book 출판에는 편집자가 얼마나 관여하는가? POD 출판 방식은 한국 출판계에 전격적으로 도입될 수 없는 걸까? 도서정가제나 중고 책 시장에 대한 출판관계자들의 여론은 어떨까? 편집자를 비롯한 읽는 직업을 가진 이들이 쓰는 직업으로 전직해서 생생한 출판계의 이야기를 더 들려주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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