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잡담 (1) – 어떤 책을 살 것인가

1.

물론 내가 돈을 넘치도록 많이 버는 사람이었더라면 읽고 싶은 책을 내키는 대로 사 날랐을 것이다. 혹은 내가 하루를 48시간처럼 사용할 줄 아는 효율적 인간이었더라면 닥치는 대로 읽고 싶은 책을 모조리 읽어버렸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그런 입장이 못된다. ‘용돈생활자’이며 ‘비효율적 인간’인 주제에 ‘투머치 리더(too much reader)’인 나는 매우 타이트한 예산과 시간의 제약 속에서 ‘살 책’과 ‘빌릴 책’을, ‘읽을 책’과 ‘읽지 않을 책’을, 그리고 ‘대충 읽을 책’과 ‘정독할 책’, ‘한번 읽고 말 책’과 ‘읽고 서평까지 써 둘 책’을 선택해야만 한다.

도서관이나 서점에 가는 날은 ‘읽지 않은 책들’과 ‘읽어야 할 책들’을 잔뜩 발견하고는 거대한 부채를 떠안은 채무자가 되어 집으로 돌아온다. 죽을 때까지 그것들을 다 읽을 수 있을까. 당연히 다 못 읽을 것이다. 독서가에게는 ‘읽은 책’이 쌓이는 속도보다 ‘읽지 않은 책’이 늘어나는 속도가 압도적으로 빠르다. 매일이 쫓기는 심정이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다.

 

2.

중학생때까지 우리 집에 있던 책들은, 문제집이나 교재를 제외하면, 어린이용 전집이나 부친이 간헐적으로 사둔 자기계발서 두어 권이 전부였다. 책은 가끔 학교나 동네 도서관에서 빌려 읽는 것이었다. 책에 대한 소유욕이 생긴 것은 고등학교 때부터였는데, 나는 3년 내내 기숙생활을 했기 때문에 ‘나만의 서재’를 만들 수가 없었다.

따라서 내가 돈을 지불하고 ‘내 책’을 사서 내 방 책장에 꽂아 두기 시작한 것은 고등학교 졸업 이후, 재수생 시절부터였다. 지난 몇 년은 집에 나만의 서재(?)를 구축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조금 무리해서 책을 많이 샀었다. 책을 일주일에 다섯 권 이상씩 사자면 새 책은 살 수가 없다. 나는 알라딘 중고서점의 플래티넘 회원이 되었다. 모친은 책 좀 그만 사라고 핀잔을 주기 시작했다.

군대에 있을 때는 월급도 나오겠다, 월급날마다 홧김에(?) 많이 ‘질렀다’. 마침 알라딘에서 ‘광활한 우주점’ 서비스를 시작하면서 강원도 화천 군부대에서도 각 지역 중고매장의 재고를 온라인으로 구매할 수 있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이를 ‘Flex’라고 일컫는다.

그렇게 이 시장의 ‘큰 손’(?)이 된 지 어언 5년차, 돌이켜보면 읽지도 않을 책들과, 굳이 소장할 필요까진 없었던 책들을 많이도 구매하고 말았다. 이렇게 책을 ‘잘못 사는’ 경험도 쌓여야 책을 보는 안목이 좋아지는 법이지만, 돈 생각을 하면 그 시행착오들이 아까운 것은 어쩔 수 없다. 집에 책이 제법 쌓인 지금은 책에 대한 소유욕 자체도 많이 사라졌다. 이쯤 샀으면 인테리어는 다 됐으니 앞으로는 웬만하면 도서관에서 빌려 읽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요즘은 아무리 갖고 싶어도 그냥 ‘빌려서’ 읽는 책이 많아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구매해서 소장하는’ 책들이 있는데, 그 기준이 무엇인지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그 기준이 한국의 유명한 ‘독서 전도사’들이 설파하는 ‘책 잘 고르는 법’보다 훨씬 나은 기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냐하면 이것은 주어진 예산 제약 하에서 내 나름의 ‘효용’을 극대화하는 ‘합리적 선택’이 누적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내가 보기에 ‘책을 구매한다’는 행위는 그 자체로는 그다지 학구적이거나 낭만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가성비’를 따져가며 고도의 ‘효율성’을 기해야 할 사치스러운 행동에 가깝다 - 그렇다, 돈으로 보나 시간으로보나 독서는 사치다.

 

3.

지극히 주관적인 나의 ‘책 구매 기준’은 이렇다.

(참고로 이것은 ‘구매 기준’이다. 읽을 책을 고르는 기준은 훨씬 관대하다.)

-      신간/베스트셀러
분야 불문 사지 않는다. 너무 비싸다. 조금만 참으면 도서관이나 중고서점에 쫙 깔리게 되어 있다. 다른 책을 읽으며 일단 참는다. 어차피 ‘신간’이란 아직 검증되지 않은 책이다. 신간들은 누가 나한테 선물로 매달 몇 권씩 사주면 참 좋겠다.
 
-      에세이
사지 않는다. 읽지도 않는다. 고만고만한 개인들의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담에 대해 나는 별로 관심이 없다. 내가 좋아하는 문인이거나 학자가 저자인 경우에는 가끔 고민하지만, 그래도 소장할 필요까지는 없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에세이는 거의 사지 않는다.
 
-      전문서적
사지 않는다. 서점에서 ‘전문서적’ 코너에는 주로 대학교 교재가 놓여 있는데, 너무 교과서적인 내용을 다루는 책은 어차피 읽지 않게 된다. 심지어 ‘개정판’이랍시고 2~3년에 한번꼴로 괜히 표지 갈이를 해서 재 출판되는 일도 잦다.
 
‘교과서’ 혹은 ‘교재’란 엄밀히 말하면 ‘책’은 아닌 것이다. 시험을 준비하거나,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 필요한 일종의 ‘도구’에 불과하다. 문-사-철 계통은 이렇다 할 ‘교과서’자체가 없기도 하다.
 
몇몇 ‘교과서’는 그 자체로 해당 분야에 대한 대가의 (교과서란 무릇 대가들이나 집필하는 것이다) 일목요연한 관점, 그 분야를 조망하는 거시적인 시야 같은 것이 배어 있는 노작인 경우도 많지만, 그런 것은 독자가 그 분야를 어느 정도 파악한 다음에나 보이는 것이다.
 
-      인문고전/철학서(1차문헌)
사지 않는다. 안 읽게 된다. 이런 책은 읽으려면 절대적인 시간과 노력을 들여야 하는데, 정말로 필요한 경우(그걸 전공한다거나)가 아니면 힘들게 완독해도 사실 남는 것이 별로 없다. 전공자라면 원어로 읽는 것이 나은 경우가 많다. 일반 독자 입장이라면(교수나 대학원생급이 아니면 다 일반독자다) 그냥 연구서나 해설서, 혹은 관련 논문을 읽는 것이 오히려 도움이 된다. 그러니까 이런 책은 그야말로 ‘가성비’가 떨어지는 종류의 책들이다.
 
게다가 중요한 고전들을 절판될 우려가 적다. 예를 들어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이나 플라톤의 <국가> 같은 책은 필요하면 언제든지 살 수 있다. 정 가지고 싶으면 그때 사면 된다(급한 불이 아니다). 나는 두 권 모두 소장하고 있긴 한데 못 읽고 있다. 그러니까 그런 책은 사둔다고 해서 다 읽게 되는 것도 아닌 것이다. 단, 간혹 절판이나 품절위험이 있어 보이는 경우에는 과감하게 구매한다. 절판된 고전 번역서의 중고매물은 웃돈을 얹어서라도 구입하곤 한다.
 
한국에서의 통상적인 용례를 따라 ‘인문고전’이라고 항목화하긴 했으나, 사실 이것은 매우 모호한 개념이다. 여기서 내가 구매하지 않는다고 못박은 ‘인문 고전’이란, 특정 시대의 고유한 문제의식을, ‘논고’의 형태로 고도로 압축하여 풀어낸, 사실상 ‘사료’에 가까운 텍스트들을 말한다. 이런 종류의 책들을 ‘인문고전’이라고 명명하고 적극적으로 일독을 권하는 흐름(“서울대 선정 인문고전 N선” 등등)에 나는 단호히 반대한다. 독서의 초보자가 허영심에 그런 걸 집어서 체계적으로 ‘오독’한 다음 뭔가 아는 체하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건지 모르겠다. 이것이야 말로 독서행위에 대한 왜곡된 숭배의 한 형태라고 본다.

 

쓰다 보니 ‘사지 않는 책’에 대해서 먼저 언급하게 되었는데, 그러면 어떤 책을 ‘구매’하는가? 다시 한번, 이것은 ‘읽을 책’을 정하는 기준이 아닌, ‘구매할 책’을 정하는 기준이다. 그 책이 ‘좋은 책인가’보다는, ‘소장할 만큼 가성비가 좋은 책인가’가 기준이 된다. 그러한 관점에서, 내가 중고서점에서 구입을 크게 망설이지 않는 종류의 책은 아래와 같다.

-      문고본 도서(얇은 책)
나는 인문교양 분야 ‘문고본’이야말로 가성비가 최고인 책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이와나미 총서’, 옥스퍼드 출판사의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예전부터 국내에 산발적으로 번역되어 오다가, 최근 교유서가에서 시리즈로 번역 출판 중이다), 국내의 ‘살림지식총서’나 ‘책세상문고’ 시리즈 등이 내가 좋아하는 문고판 시리즈들이다. 책세상의 ‘비타악티바’ 시리즈도 훌륭하고, 지금은 대부분 절판된 ‘동문선 현대신서’와 ‘한길크세주’도 좋은 문고본 시리즈이다. 중고서점에서 3000원 안팎의 가격으로 구매할 수 있으며, 내용 자체도 매우 알찬 편이다. 읽기 버겁지 않기 때문에 구매했을 경우 완독률이 높으며, 굳이 완독하지 않더라도 필요할 때마다 꺼내 보면서 반복해서 참고할 수 있어 소장할 만하다.
 
얼핏 보기에 표지 디자인이 아름답지 않고, 책이 얇기 때문에 별 내용이 담겨 있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건 엄청난 오해이다. 어떤 전문분야의 전모를 100~200페이지 안팎의 분량으로 일목요연하게 해설하는 것이야말로 ‘대가급의 지성’이 아니면 도달할 수 없는 경지이다. 그리고 그것이 무엇이든, 어떤 분야에 대해서 그 정도 분량을 독자 자신이 쓰거나 기억해낼 수 있는지 떠올려보면, 그 문고판에 나와있는 내용만 알아도 충분하고도 남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예를 들어 얼마전 ‘Very Short Introduction’ 시리즈 중 한 권인 니콜라스 크롱크의 <볼테르>가 <인간 볼테르>라는 제목으로 후마니타스에서 번역 출간되었는데, 그 책을 숙독하는 것이, 예컨대 볼테르의 원전을 꾸역꾸역 읽는 것보다 일반 독자입장에서 ‘지식’의 측면에서는 수백 배 낫다.
 
-      세계 문학 전집
국내 대형 출판사들은 다들 세계문학전집 시리즈를 가지고 있다. 민음사(하얀 책), 문학동네(검은 책), 을유문화사(갈색 책), 창비(형형색색) 등. 이런 책들은 그야말로 ‘소장가치’가 있는 책들이다. ‘문학’이야말로 인간이 쓸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형태의 텍스트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시간과 공간의 아득함을 견디고 오늘날 한국어로 번역될 만큼의 명성이라면 의심할 필요가 없다. 그런 책이 별로라면 십중팔구 독자의 문제이지, 책의 문제가 아니다.
 
국내 번역도 대체로 매우 뛰어난 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만큼 번역문학이 활발한 나라도 없을 것이다(가령, 영미권 독자나 유럽어권 독자들은 그 소설들을 모국어로 읽을 것이다). 나는 세계문학전집 시리즈에 대해서만큼은 여전히 왕성한 소유욕을 가지고 있다. 세계문학전집 만큼은 빌려 읽기보다 사서 읽는다. 일부러 중고가 아닌 새 책으로 구매하는 경우도 있다.
 
세계문학전집에 수록된 소설이라고 해서 다 구매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그 중에서도 19~20세기에 쓰인 근대 사실주의 계열의 소설을 주로 구매한다. 그것들은 전부 소장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언제 어디서 읽든, 읽으면 반드시 피가 되고 살이 되는, 가성비 보증 수표 같은 책들이기 때문이다. 나는 요즘 들어 근대소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자기계발서’가 아닌가 싶다. 인간은 소설읽기를 통해 더 나은 존재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      문학과지성사 시인선
고등학교때 최승자 시를 통해 ‘교과서에 실릴 수 없는’ 종류의 시를 처음 접하고 깊은 인상을 받았었다. 내 또래에 비해서야 시를 의식적으로 많이 읽으려고 노력하는 편이겠지만 여전히 시에 관하여 나는 초보 중의 초보요, 아마추어 중의 아마추어이다. 따라서 수준을 높이기 위해선 의식적으로 시집을 곁에 두고 시간이 날 때마다 읽는 것이 필요한데, 그러자면 시집이야말로 사서 보는 수밖에 없는 종류의 책이다.
 
현대시는 언어의 첨단이다. 글쓰기에 욕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한국어적인 감각을 최대한 끌어올릴 필요가 있고, 그러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좋은 시를 많이 ‘외우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좋아하는 시인의 시집은 중고서점에 보이는 족족 구매해서 집에 모신다.

 

4.

책 읽기가 익숙하지 않은 분들도 나의 구매기준에 입각하여 책을 선택하고 읽기 시작하면 교양을 빠르고 쉽게 쌓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분들을 위한 또 하나의 추천은 ‘기자 출신’ 저자들의 책이다. 보통 독서에 익숙하지 않은 분들은 논의 지형에 대한 ‘지식’이 부족해서 맥락을 충분히 파악하는데 실패하기 때문에 수준 높은 교양서를 읽는 것이 어렵다. 따라서 최소한의 ‘배경지식’을 쌓을 필요가 있는데, ‘지대넓얕’ 같은 사이비 잡서보다, 최소한의 팩트체크와 대중적 글쓰기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는 기자 출신 저자들의 책이 그 ‘넓고 얕은 지식 쌓기’라는 목적에 적합하다.

 

5.

까다로운 구매 기준을 통과한 책들은 내 방 책장에 안착하는데 성공한다. 여기서 어떤 책은 언젠가 나에게 읽히게 되겠지만, 어떤 책은 끝내 나에 의해 읽히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순간이 올 때까지 읽지 못한 책은 아쉽지만 포기하는 수밖에 없다.

...

그렇게 절박한 상황 속에서 나는 어중간한 책이나 뒤적이며 '잡지식' 늘리기에만 소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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