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윤, <하버마스 스캔들>을 읽고

한국 인문사회과학계의 하버마스 수용 ‘실패’에 대한 지식사회학적 분석을 담은 (엄청나게 재미있는) 책이다.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을 단행본으로 엮은 것인데, 지도교수인 김경만의 『글로벌 지식장과 상징폭력』에서 다소 신경질적(?)으로 제기되었던 문제의식을 체계적으로 이론화하고 본격화한 것으로 읽힌다. 개인적으로는 무협지 읽듯 매우 재미있게 읽었다. 현역으로 활동 중인 국내의 철학자‧사회학자들의 실명이 난무하는 뒷부분의 분석도 인상적이지만, 앞부분에 이론적 틀로서 제시된 부르디외의 ‘장 이론’에 대한 명료한 설명도 유익하다.

어째서 한국에는 ‘자생적 이론’이나 ’독자적 학파‧사상’이 없는가? 이 물음에 대해 지금까지 제출되어온 학계 자신의 설명은 내인론과 외인론으로 양분된다. 내인론은 학자들이 한국사회만의 문제에 대한 충분한 고민 없이 서구 이론을 수동적으로 수입해오는데 급급했기 때문에 자생적 이론이 성립할 수 없었다는 설명이다. 이 경우 한국 인문사회과학 분야 후진성의 원인은 ‘불성실하고’ ‘서구-편향적인’ 기성 학자들에게 있다. 외인론은 한국사회 자체가 점차 신자유주의화되면서 대학 내에서 학과의 존립을 위한 정량화된 논문 글쓰기가 강요되어 인문학이 점차 (한국)사회의 현실로부터 유리되었기 때문에 이른바 ‘한국적 인문학’이 충분히 성숙할 수 없었다는 진단이다. 외인론에 따르면 ‘인문학의 본성에 맞지 않는’ ‘한국연구재단 등재지 제도(‘학진체제’)’야말로 문제의 원인이며, 학자들은 이에 맞서 자유로운 글쓰기를 통해 열심히 사회 및 대중과 소통해야 한다.

그러나 두 설명은 한국의 ‘학술-장’이 충분히 자율적이지 않다는 말의 의미를 잘못 이해한 것이다. 부르디외가 강조한 ‘학술-장의 자율성’이란 장 바깥의 효용이나 필요와 무관한, 고도로 전문화된 ‘좁고 깊은’ 관심을 공유하는 구성원들끼리 ‘그들 만의 게임’에 몰입함으로써 달성되는 것이다. 부르디외에게 객관적 지식(진리)이란, 학자들이 ‘진리의 상아탑’에 갇힌 채 자신들이 탐구하는 주제가 가치 있다는 ‘집단적 오인(일루지오)’에 빠져 장 내에서 상징자본(동료의 인정 등)을 쟁취하기 위한 ‘상징투쟁’을 수행하는 과정 속에서 ‘간주관적’으로 도달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친밀한 적대자 공동체’의 존재다. 이들은 서로의 협애한 학문적 관심사가 진정으로 가치 있다고 생각하며 서로의 주제 탐구에 대해 진지하고 성실한 관심을 보인다는 점에서 ‘친밀’하지만, 동시에 서로에 대한 가장 엄격하고 냉정한 비판자이며 장 내에서 상징자본의 분배를 두고 투쟁하는 당사자라는 점에서 ‘적대적’이다. 한국 학계가 자생적 이론을 낳지 못한 것의 일차적인 원인은 바로 이 ‘친밀한 적대자 공동체’의 부재라고 할 수 있다.

친밀한 적대자 공동체의 형성을 방해하는 두 지배적 경향은 ‘학술적 도구주의’와 ‘딜레탕티즘’이다. 사회 변혁과 같은, 장 바깥의 실용적 필요를 위해서 학문을 도구화 할 경우, 학문적 탐구의 대상은 시류의 흐름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으므로 학술장은 충분히 자율적이라고 할 수 없다. 급변하는 한국사회의 요청에 그때 그때 응답하자면, ‘좁고 깊은’ 관심사를 공유하는 친밀한 적대자 공동체는 형성될 수 없기 때문이다. 딜레탕티즘은 이미 중심부에 자리를 잡은 주류 제도권 학자들이 ‘좁고 깊은’ 탐구를 그만두고 ‘교양 교육자’ 혹은 ‘경륜가’로 스스로를 정의하고 개론서나 교양서를 집필하며 ‘넓고 얕은’ 지식을 재생산하거나 언론 노출을 통해 사회에 훈수를 두는 것으로 자신의 이력 후반부를 채우는 것을 의미한다. 두 경향을 지양하며 외산 이론을 성공적으로 수용함으로써 학술장의 자율성을 이룩한 드문 사례로 부르디외는 68혁명 시기 프랑스 학술장을 분석한다. 구조주의 사조 자체의 문제성을 차치한다면, 레비스트로스가 소쉬르 언어학과 영미 인류학을 결합하여 ‘구조주의 인류학’을 도입하고, 이를 이어받은 ‘포스트모던’ 사상가들의 전문주의적 아비투스에 의해 프랑스 학술장이 갱신되었던 것은, 외국 이론을 성공적으로 ‘토착화’하여 자생적인 이론을 산출한 모범 사례가 된다. (이 대목에 대한 부르디외의 정교한 분석은 감탄스럽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의 하버마스 수용은, 거칠게 요약하면, 그 출발부터 학술적 도구주의의 경향이 짙었으며(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우회로), 90년대를 통과하면서는 주요 연구자들이 모두 기성 주류 학자들을 따라 딜레탕티즘으로 선회하면서 실패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저자는 구체적으로 윤평중-이진우-한상진으로 대표되는 90년대의 ‘신진 하버마스 연구그룹’에게 귀책사유가 있다고 본다. 이전 세대 한국 학자들의 딜레탕티즘은 당시 국내에 ‘학술-장’ 자체가 부재했기 때문이므로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지만, 90년대에는 하버마스 방한(96년)을 전후로 하여 국내에도 일정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장의 효과’를 기대할 수 있었고, 신진 연구그룹의 학술적 역량 또한 자율적인 학술장을 생산해내기에 충분했기 때문이다.

하버마스를 전면에 내세우고 있긴 하지만, 이 책의 분석은 비단 하버마스나 이론사회학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저자는 한국의 하버마스 수용 ‘실패’ 사례를 통해 궁극적으로 독립된 ‘학술-장’ 자체가 한국에 한 번도 존재한 적이 없었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한국 지성계의 문제는 서구종속이나 이론편향에 있지 않고, 정반대로 ‘서구’-‘이론’을 한 번도 제대로 수용해본 경험이 없다는 데에 있다는 진단은 꽤 정확한 것으로 보인다. 현대적인 학술장은 사회로부터 충분히 ‘고립된 채’, 좁고 전문적인 문제에 골몰함으로써 자율성을 쟁취해야 하고, 장 내부에서의 상징투쟁을 거쳐야 비로소 ‘발전’할 수 있다는 (나아가 객관적 지식에 도달할 수 있다는) 부르디외적인 방향설정은 대체로 동의할 만한 것이다.

이 책이 선택하고 있는 이론 틀은 과학사회학자인 니콜라스 멀린스의 ‘이론그룹 발달 모형’에서 단계와 단계 사이의 인과관계 규명이 부재한 것을 부르디외의 장 이론을 통해 보충한 것이다. 왜 한국 학계에 ‘친밀한 적대자 공동체’가 구축될 수 없었는지에 대해서는 일반화해서 설명하기보다 한국의 하버마스 연구그룹이 실제로 어떤 지적 경로를 취했는지를 추적하는 것으로 갈음하고 있다. 독자인 나는 여기서 더 나아가 ‘어째서 한국의 학자들은 좁고 깊은 전문적 관심사를 충분히 오랫동안 유지하지 못하는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이것은 곧, ‘왜 유독 한국의 학계에는 ‘딜레탕티즘’과 ‘학술적 도구주의’라는 원심력이 (다른 학계보다 더) 강한가?’라는 비교정치학적 문제의식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암시되고 있는 대답은 우선 그것이 80년대 한국의 ‘정세’가 남긴 상흔의 일부라는 것이다. 80년대적인 현실 속에서 마르크스주의는 ‘학술 이론’이 아니라 ‘과학’이자 ‘종교’였다. 이 책에서도 분석하고 있듯이 소련 붕괴 이후에도 (학생)이론가 그룹은 각자의 방식으로 마르크스주의를 옹호하거나 되살리고자 고군분투하거나, 아예 시민사회 운동에 헌신(김동춘-조희연-유팔무)하는 등 이른바 ‘지사형’ 지식인이 되고자 했다. 한국의 ‘학계’가 서구의 그것만큼 자율적이어야 하며 학술적 도구주의는 지양되어야 한다는 입장에서 보면 이는 일종의 ‘문화지체’로까지 보여지는데, 당사자들에게는 민주화 이후에도 사회변혁적 요청이 학문적 자율성 획득보다 시급했을 정도로 80년대의 무게감이 남달랐던 것으로 풀이된다. 부르디외가 분석하는 68혁명기 프랑스와 비교할 때, 한국사회의 80년대는 ‘아카데미즘’이나 ‘객관성’을 논하기에 (‘광주’로 대변되는) 엄숙주의와 실천 지향의 당위론이 너무나 압도적이었던 것이다.

80년대가 문제였다면 앞으로의 전망은 비교적 밝다고 할 수 있다. 2020년대 이후 새롭게 부임하고 있는 국내 대학의 교수진은 대체로 2000년대~2010년대 초반 학번일 텐데, 이들은 80년대적인 ‘부채의식’으로부터 자유로우며, 학문적 공정함이나 중립성을 포기하면서까지 실천을 우위에 둘 ‘아비투스’를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새로운 세대의 연구자들에 의해 재구성될 학술장은 이 책이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전문화된 아카데미즘’에 근접하게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한국만의 ‘자생적’ 학파의 탄생은 앞으로(!) 기대해 볼만 하다.

다만 새로운 세대의 연구자들에게도 딜레탕티즘의 유혹은 중대한 도전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자율적인 ‘학술-장’이 부재한 상황 속에서 학자들은 자신이 속한 영역 바깥에서 상징자본을 충당하고자 한다. 그것이 학계나 대학사회 바깥으로부터 사회적 명망이나 위신을 얻기 위해 방송에 출연해서 ‘넓고 얕은’ 지식의 전달을 반복하거나(대중화), 지식인이랍시고 사회‧정치 현안에 대한 어설픈 조언을 건네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면 ‘좁고 깊은’ 관심사의 지속은 어려워진다. 젊고 혈기 넘치는(!) 내가 보기에 대학교수라는 사람이 자기 영역 바깥의 일에 대해 훈수를 두거나 되도 않는 청소년 교양서나 집필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기가 막히는 일이다. 특히 대학교수가 언론 노출을 즐기는 것은 참으로 괴이한 취향이라는 생각이다. 그런 경향이 우리나라에서 유독 심한 것인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만약 그렇다면 그 원인은 결국 유교적인 출세관에 있을 것이다. 주지하듯이 우리나라는 ‘출세하려고’ 공부해온 역사가 깊은 나라다(입신양명! - 9수를 해서라도 검사가 되고자 하는 나라). ‘지금 당장’ 상징자본을 충당할 수 있는 자생적 학술장이 부재한 상황 속에서 연구자들이 딜레탕티즘의 유혹을 뿌리치지 못한다면 90년대에 벌어졌던 것과 같은 ‘네트워크의 와해’를 반복하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 책에서 분석하고 있는 90년대가 바로 지금과 같은 ‘기회’였다고 할 수 있는데, 주요 연구자들이 딜레탕티즘에 투항해 버림으로써 독자적인 ‘(하버마스)학파’의 형성을 한 세대 뒤로 미루게 된 셈이 되었다.

이 책의 분석으로부터 어떤 규범적인 교훈을 도출해낼 수 있다면, 그것은 바로 한국사회의 전근대적인 지식인관 자체를 쇄신해야 한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 지식인-대학교수는 매우 국지적이고 한정된 주제에 대한 ‘전문가’이자 ‘직업인’이지, 사회적인 현안에 대해 마땅히 목소리를 내거나 다양한 주제를 두루 ‘섭렵’하고 있는 ‘총체적 지식인’이 더 이상 아니다. 유교적 전통을 따라 학위를 취득하고 대학교수가 되는 것이 무슨 출세나 입신양명의 수단이 아닌 것은 당연하다. 요컨대 자생적 학파를 논하기에 앞서 한국사회는 지식인에 대한 개념을 탈주술화해야 한다. 부르디외가 제시한 바와 같이, 지식인이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학술-장이 고도로 전문화되어 충분한 자율성을 확보한 토대 위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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