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과학은 과거를 재현할 수 있는가? : 로드니 스타크, <기독교의 발흥>을 읽고

사회과학은 과거를 재현할 수 있는가?

: 로드니 스타크, <기독교의 발흥>을 읽고

 

1. 들어가며

3세기 후반 급격한 기독교의 성장은 서양 고대사의 중대한 미스터리 중 하나다. 변방의 미약한 ‘예수운동’은 어떻게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될 수 있었는가? 신앙인들은 거의 불가해한 수준의 이 ‘기적적인’ 도약을 그 자체로 기독교적 진리의 현현(顯現)이라고 보거나 예수 부활 사건의 간접증거로 삼는다. 신약성서의 사도행전은 이 미스터리에 대한 최초의 문학적‧신학적 대답이기도 하다. 교회사가들 역시 기독교로의 ‘대규모 개종’ 원인을 기독교 교리의 우월성이나 순교 사역의 진실성에서 찾는 등 신학적인 설명 이상을 제공하지 못한다.

‘기독교 발흥’의 전후 사정이 여전히 미스터리로 남아 있는 것은, 기독교가 인류 역사에서 가장 막강한 영향력을 지닌 종교인 것에서 기인한, 신학의 방해 때문만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이 시기에 대한 신뢰할 수 있는 사료가 부족한 상황 자체가 거대한 장애물로 작용하고 있다. 종교사회학자 로드니 스타크는 <기독교의 발흥>에서 ‘사료의 절대적인 부족’이라는 고대사 연구의 아포리아를 ‘사회과학’을 통해 돌파할 수 있는 가능성을 내보인다. 스스로 분명히 밝히고 있듯이 ‘역사가가 아닌 사회학자’인 저자는 현대의 신흥종교 운동에 대한 종교사회학의 연구 성과를 통해 고대 지중해 세계와 초기 기독교의 모습을 재구성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본다. 저자는 초기 기독교를 연구하는 역사학자들이 보다 강력한 현대적인 사회과학 이론과 친숙해짐으로써 역사적 진실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

 

2. 개종의 사회적 토대: 유대인 가설

저자는 3세기 후반 기독교로의 개종 속도가 정말로 ‘기적적인 수준’이었는지부터 다시 검토한다. 복수의 이질적인 고고학‧역사학 연구의 성과를 참조할 때 기독교 개종율은 10년간 40여퍼센트로 추정되는데, 이것은 19세기 몰몬교의 성장 속도와 일치하는 것으로 일반적인 신흥종교의 성장 속도를 따른다. 따라서 기독교의 성장 속도는 결코 ‘기적적인’ 수준이 아니었으며 현대적인 사회과학의 입장에서 충분히 설명될 수 있다.

이어서 저자는 사회적 현상으로서의 ‘개종’을 일탈이론의 관점에서 재정의한다. 신흥종교로의 개종이란 일종의 일탈행위로, 흔히 생각되듯 신자가 ‘교리에 동의하거나 매료되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개종을 감행했을 때 ‘잃을 것이 적을수록’ 발생하기 쉽다. 저자가 통일교(문선명교)에 대한 현장연구를 통해 밝혔듯이 개종을 결정하는 핵심요인은 ‘사회적 네트워크’와 ‘애착’이다. 기존의 네트워크에 대한 소속정도가 낮을수록 개종 행위의 ‘일탈성’은 감소한다. 가령, 세속적인 사람(무교)이 통일교 신자가 되는 것보다, 개신교 신자가 통일교 신자로 전향하는 것이 보다 ‘일탈적’이다. 그렇다면 신흥종교로의 개종은 주로 ‘종교가 없는 신규 정착민’과 같이 소속되어 있는 사회적 네트워크와 애착관계에 의해 일탈행위가 충분히 통제되지 않는 인구 집단에서 발생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또한 일단 최초 개종이 이루어지고 나면 해당 종교는 개종자의 가족, 친구 등 개종자와 애착관계를 형성하고 있는 네트워크를 중심으로 빠르게 확산된다. 신흥종교의 성장 속도는 사회적 네트워크의 확장 속도와 일치한다.

로드니 스타크(좌)와 윌리엄 신스 베인브리지(우).

저자는 일반적으로 신흥종교의 계급적 기반이 하층민이 아니라 기득권층이라는 사실에도 주목한다. 저자는 베인브리지(W. S. Bainbridge)와 공동으로 만든 테제인 ‘종파(sect)-신종교(cult) 개념 구분’을 초기 기독교에 적용하여, 예수 부활 이전의 기독교는 종파운동, 바울 이후의 초기교회 운동은 신종교운동으로 규정한다. 종파운동은 (세속화‧변질된) 기성 종교 조직으로부터 떨어져 나와 펼치는 종교적 쇄신 운동이고, 신흥종교는 완전히 새로운 신앙을 표방하는 새로운 문화‧사상운동이다. 일반적으로 신흥종교운동 집단의 사회적 지위가 종파운동 집단보다 높다. 신흥종교란 일종의 새로운 사상이기 때문에, 일정한 정도의 기득권을 소유한 사람만이 새로운 교리를 이해하고 그 필요성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는 ‘하층민이 종교를 통해 자신의 박탈감을 보상받고자 하기 때문에 더 종교적’이라는 ‘박탈 이론’에 배치되는 것으로, 오늘날 실증연구 결과와 부합한다.

위와 같은 사회학 이론을 통해 추정한 개종 집단의 특성에 가장 잘 부합하는 것은 당대의 ‘디아스포라 헬라파 유대인 집단’이다. 저자는 이들 헬라파 유대인 집단의 중요한 특징으로 종교적‧민족적 소속감이 없는 ‘주변성’을 든다. 따라서 이들은 신흥종교였던 ‘예수 운동’에 합류해서 ‘잃을 것’이 적었다. 동시에 이들은 부유한 도시인으로서 신흥종교 개종집단으로서의 사회경제적 요건을 충족하고 있었으며, 디아스포라 유대인 정착촌을 중심으로 한 긴밀한 사회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어 개종 이후의 확산을 설명할 수 있는 최적의 인구 집단이었다. 따라서 초기 기독교의 성장에 있어 오랜 시간 가장 중요했던 것은 다름 아닌 유대인들이었을 것이라고 저자는 추정한다.

이것은 ‘유대 전쟁’과 ‘바르코바 반란’을 중심으로 하여 유대인과 이방인의 대립과 갈등을 중심에 두는 기존의 초기 교회사 서사와 정면으로 배치되는 것으로, 현대 사회과학의 시선을 과거에 적용하여 사료를 완전히 새롭게 해석해낸 한 사례가 된다. 당대의 사료에 유대 문화와 기독교 문화의 요소가 겹쳐 있는 것은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각기 독립적으로 존재하면서 서로 대립했다는 근거가 아니라, 유대인과 기독교인 간 뚜렷한 경계가 없었으며, 심지어 유대인 집단이 기독교의 주요 영업 대상이었다는 근거인 것으로 재해석된다.

이러한 저자의 ‘유대인 가설’은 당대 사회에 대한 도시사회학적 정량 분석에 의해 통계적으로도 입증된다. 저자는 각 도시에 교회가 있었다는 기록을 기준으로 도시의 기독교화 정도를 측정한다. 유대교 문화와 로마 문화의 영향력을 측정하기 위해서는 각 도시의 예루살렘 및 로마로부터의 물리적 거리, 유대인 회당의 존재여부 등을 활용했다. 이렇게 만들어진 데이터에 대하여 피어슨 상관계수는 도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을수록(유대교 문화로부터 멀수록) 기독교화 정도가 감소하며(-0.74), 유대교 회당이 있었던 곳일수록 기독교화가 잘 이루어졌다고(0.69) 보고한다. 반대로 로마화 정도는 도시의 기독교화 정도와 부정적인 상관관계를 보였다(-0.71). 이것은 기독교화를 종속변수로 한 회귀식에 의해서도 뒷받침된다.

기독교화 = 0.466 * 회당 -0.499 * 로마화

(베타 값은 모두 통계적으로 유의함. 표준화 베타 기준.)

한편, 전체 논지와는 다소 동떨어져 있지만. 저자는 영지주의가 ‘유대교의 이단’으로서 기독교와 대등한 경쟁 관계(‘평행한 두 지류’)에 있었는지, 아니면 영지주의가 기독교로부터 파생된 ‘기독교의 이단’이었는지에 관한 논쟁에 대해서도 사회학적 개입을 시도한다. 영지주의 집단이 있었다는 기록을 기준으로 도시의 영지주의 정도를 측정한 다음, 영지주의 정도를 종속변수로, 앞서 측정한 도시의 기독교화와 유대교 회당의 존재 여부를 독립변수로 하여 회귀분석을 실시한 결과, 기독교화 정도는 영지주의 정도에 양(+)의 영향을 미쳤으나, 유대교 회당의 존재 여부에 할당된 계수는 아예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았다.

영지주의 = 0.578 * 기독교화 -0.012 * 회당

(회당에 대한 베타 값은 모두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음. 표준화 베타 기준.)

 

이에 따르면 인과관계 순서는 '유대교 - 기독교 - 영지주의'가 된다

저자는 두 개의 회귀식에 근거하여 영지주의가 교리 상으로는 유대교의 이단일 수 있어도, 실제 운동으로서는 기독교의 이단이었을 것이라고 해석한다. 이러한 상이한 이해는 자료에 대한 역사학자와 사회학자의 상이한 접근방식에서 기인한 것이다. 역사학자들은 문헌에 남아 있는 두 사상(유대교와 영지주의)의 유사성에 주목하여 ‘사상의 족보’를 재구성하고자 하기 때문에 영지주의가 유대교에서 유래되었다고 보는 반면, 사회학자에게 ‘이단’이란 근본적으로 관찰 가능한 ‘사회운동’이지, 사상(아이디어) 자체의 변칙적 전개가 아니다. 사상(아이디어)의 발흥과 사회운동의 계기가 일치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저자의 시각은 고대 사상에 대한 접근과 관련하여 중요한 함의를 가진다.

 

3. 개종의 인구학적 토대: 여성, 역병, 도시

이교도의 인구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기독교인의 인구가 지속적으로 증가할 수 있었던 인구학적 변수는 여성과 관련된다. 오늘날과 달리 고대사회에서 기독교는 여성 친화적인 종교였다. 기독교는 영아살해와 낙태를 금지했고, 이혼‧외도‧근친상간‧일부다처제를 죄악시했으며, 과부의 재산권과 재혼 선택권을 존중하고 여성의 조혼을 지양하는 등 거의 모든 면에서 이교보다 여성에 대해 우호적이었다. 가정 내에서 뿐만 아니라 교회 내에서도 여성은 비교적 나은 지위를 누렸는데, 이는 몇몇 바울서신 구절들과 여성 집사의 순교 비율에 의해 입증된다.

여성의 지위를 여성인구 비율과 연결시키는 것은 구텐타크와 세코르드의 연구다(Guttentag & Secord, 1983). 기독교인 여성이 가정 내에서나 교회 내에서 이교보다 나은 지위를 보장받았던 것은 기독교 집단에서 여성 성비가 상대적으로 높았던 것과 관련된다. 즉, 당시 기독교 집단에서는 여성의 공급과잉이, 이교도 집단에서는 여성의 공급부족이 발생했고 이는 필연적으로 기독교인 여성과 이교도 남성 간의 족외혼으로 이어질 것이었다(사료는 없고, 저자의 순수한 논리적 추론이다). 오늘날의 종교사회학 연구는 종교인과 비종교인의 혼인 시 종교성이 약한 사람이 종교적인 사람의 종교에 합류한다는 ‘2차 개종’이 매우 일반적이라는 사실을 밝히고 있다. 게다가 가정을 신성시하는 기독교 교리의 특성 상 기독교도는 이교도보다 출산력이 강했을 것으로 예상할 수 있는데, 이것이 기독교도 인구 증가에 기여했음은 물론이다. 따라서 기독교도 여성과 이교도 남성 사이의 족외혼은 기독교 개종자 수의 증가에 일조하도록 되어 있었다.

기독교 교리에 설득력을 더해준 여러 부대상황에도 주목해야 한다. 저자는 전근대 시기의 전염병과 도시문화에 주목한다. 흔히 대규모 역병은 로마 쇠락의 원인으로만 주목되지, 그와 함께 진행되었던 기독교 발흥의 계기로는 주목되지 않는다. 그러나 저자가 보기에 당대의 대규모 역병으로 인한 수난은 기독교 교리의 호소력과 설득력을 더해주었을 것이며, ‘남을 도우라’는 기독교의 ‘황금률’은 신자들 간의 ‘성실한 간호’를 유도하여 역병으로 인한 사망률을 낮추었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기독교도의 생존율이 이교도보다 높았다는 점에서 전염병은 ‘이교 몰락 – 기독교 발흥’의 주된 요인 중 하나였다. 이교도 집단은 많은 인구를 잃으면서 교세 유지의 핵심인 인적 네트워크 자체를 상당부분 소실했을 것이다.

그레코-로만 도시 생활은 선진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었다. 전근대의 도시 생활이란 곧 인구밀집을 의미했고, 효과적인 상하수도 시설이 없는 상황에서 이는 심각한 위생 문제를 수반하는 것이었다. 사람들이 도시에 모여 살아야 했던 유일한 이유는 단지 그곳이 전략적 요충지였기 때문인데, 온갖 자연재해에도 불구하고 도시가 일정한 인구를 유지했다는 것은 해당 도시로의 지속적인 인구유입이 있었다는 의미다. 빈번한 인구교체는 도시민들 간의 애착관계를 저해하여 범죄율을 높이므로 전근대 도시에는 각종 폭동과 범죄가 만연했다. 결국 전근대 도시생활은 자연재해‧불결함‧전염병‧범죄‧폭동의 온상이었고, 고단한 삶 속에서 기독교 교리는 ‘시급한 도시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규범’이 될 것으로 기대되었다. 이와 같은 부수 요인들을 기독교 발흥의 결정적인 ‘원인’이었다고 할 수는 없어도, 그것을 가능케 한 몇 가지 요인들 중 하나일 수 있음을 저자는 강조한다.

 

4. 개종의 경제학적 토대: 합리적 선택이론과 종교경제

미시경제학도 1세기 기독교의 성장을 설명하는데 동원된다. 기독교는 60년대에 교리 상의 위기를 맞는다. 예수 사건 이후 한 세대가 지났는데도 예수의 재림은 없었고 선교의 성과는 미약했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러한 위기 상황에서 순교가 기독교에 대한 신자들의 헌신도와 참여도를 제고하는 합리적 선택이었다고 본다.

순교의 합리성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 먼저, 사람들은 간증자에게 돌아갈 실익이 작을수록 간증이 설득력 있다고 느낀다. 모든 종교에 금욕주의적 요소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인데, 사람들은 끔찍한 고통과 희생을 감수하면서도 개종을 거부하는 순교자들의 믿음에 대해 설득력을 느끼게 된다. 한편, 순교는 해당 종교에 진입하기 위한 가입비용을 높이는 효과가 있다. 순교는 개종에 희생과 낙인이라는 고비용 요건을 둠으로써 신자들의 헌신도와 참여도를 제고한다. 희생과 낙인을 감수하고 개종을 결심한 사람들은 가입한 종교에 대해 적극적일 수밖에 없으므로 종교에 대한 ‘무임승차자’는 감소하고 종교가 제공하는 정신적 보상의 가치는 상승한다. ‘집단적으로 생산된 재화’인 종교의 경우 가입비용이 커짐으로써 ‘(종교)재화’의 가치가 올라가는 역설이 성립하는 것이다.

저자가 제시한 ‘종교 경제(religious economy)’ 관점은 ‘종교 재화’의 공급자인 ‘종교 기업’에 초점을 둔다. 이 관점은 1세기 고대 세계에서 이교와 기독교의 경쟁관계 속에서 이교가 지닌 상대적 취약성의 본질을 경제학적으로 분석한다.

종교에 대한 국가 차원의 규제가 적은 ‘시장’에서 사람들은 ‘종교 포트폴리오’를 구성하여 다양한 종교에 발을 걸쳐 둠으로써 ‘리스크’에 대응하고자 한다. 이때 비배타적 종교의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는 전문직 서비스 제공자와 고객(클라이언트)의 관계와 유사해진다. 완전경쟁시장에 가까운 ‘종교 시장’에서 비배타적 종교는 차별화되기 위해 종교의례의 전문화를 선택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배타적 종교는 일종의 ‘클라이언트 신종교(client cult)’가 된다. 클라이언트 신종교의 성직자와 평신도의 관계는 단지 종교 서비스를 주고받는 사무적인 관계일 뿐이며, 신도들은 서로 의사소통 할 일이 없다. 반면 배타적 종교(유일신)였던 기독교의 성직자는 종교 재화(비의적인 종교적 진리)의 공급을 독점한 엘리트가 아니라 평신도의 기독교적 삶을 계도할 스승이자 친구로 취급되었다. 기독교의 경우 성직자와 평신도의 유대관계가 깊었고, 평신도들 간에도 공동체의식을 유지할 수 있어서 교세의 확대가 용이했다.

그렇기 때문에 배타적 종교가 일단 포트폴리오 안에 들어오고 나면 배타적 종교는 언제나 비배타적 종교를 몰아내도록 되어 있다. 이는 왜 종교는 시간이 지날수록 배타적 유일신교로 수렴하는가의 문제에 대한 일반화된 사회학적 설명으로, 1세기 로마에서 이교가 지녔던 취약성의 본질을 잘 설명해준다.

5. 역사학과 사회과학

교회사적인 측면에서 이 책의 중심 테제라고 할 수 있는 ‘유대인 가설’은 20세기 후반 E. P. 샌더스와 제임스 던에 의해 공식화된 ‘바울에 대한 새 관점 (New perspective on Paul)’과 간접적으로 공명하는 것이다. 1세기 유대교의 다양성에 비추어, 고대 세계에서 유대인과 기독교인이 사실상 잘 구별되지 않았으며, 특히 기독교로의 주요 개종집단은 다름 아닌 유대인들이었을 것이라는 저자의 ‘유대인 가설’은 유대교를 행위-구원적인 율법주의로 단정짓고 기독교와 차별화하고자 하는 종교개혁적 이신칭의 교리에 암묵적으로 도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고대 사상에 있어 ‘사상의 변칙적 전개’와 ‘사상의 (사회)운동적 발흥’은 사실상 분리 불가능하다는 사회학의 관점을 넌지시 던지면서 사상사에 대한 사회학적 개입을 시도하고 있기도 하다.

근대 이후에 성립한 사회과학의 개념들을 전근대 사회에 적용하는 것이 자칫 역사가들이 경계하는 시대착오적 일반화를 야기할 수 있다는 비판에 대해, 저자는 사회과학을 통한 역사의 재구성이 진정으로 적절할지는 ‘운’의 영역이라고 전제하면서도, 역사적 공백에 대한 사회과학 이론의 적용은 무엇보다 ‘필요’에 의해 정당화된다고 본다. ‘확실성이 획득불가한 분야에서 확실성을 요구하는 것은 지적인 나태’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사료가 부족한 고대사의 경우 (사회)과학의 추상적 일반성(‘이념형’)을 믿어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관점은 과거의 사람들이나 현재의 사람들이나 ‘사회적 행위의 원리’ 측면에서는 서로 다를 것이 없다고 전제한다.

1970년대 무어(B. Moore)-틸리(C. Tilly)-스카치폴(T. Skocpol) 류의 역사사회학이 ‘비교’의 방법을 통해 역사에 대한 거시이론적 일반화를 시도했다면, 저자는 종교현상에 대한 사회학의 테제들을 ‘초기 기독교’라는 제한된 범위에 적용하는 방법을 통해 색다른 역사사회학을 시도하고 있다. 이러한 시도는 신약학 및 고대사학과의 교차 검증 속에서, (종교)사회학이 고대사‧고대사상사에 대하여 최소한 유의미한 ‘작업가설’을 제공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6. 나가며

이 책에서 저자는 매 장마다 종교사회학의 명제를 최소 2~3개 이상 동원하여 초기 기독교의 역사적 승리 요인을 과학적으로 분석한다. 통일교, 몰몬교, 사이언톨로지교 등 현대의 신흥종교 운동에 대한 종교사회학의 연구성과를 1세기 초기 기독교에 적용하는 것에 대한 위화감은 저자의 대가다운 치밀한 논증에 의해 상쇄되고도 남으며, 특히 고대사회에 대한 정량 데이터를 구축하고 통계적 방법을 통해 사료를 새롭게 해석하는 대목은 지적으로 흥미진진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학적 밀도가 매우 높은 이 책에서 고작 ‘기독교의 본질로서의 복음을 위한 순교와 사랑’이나 ‘한국교회가 성장을 도모할 힌트’ 정도를 읽어내는 것은 유감스러운 일이다. 오히려 이 책은 1세기 기독교를 하나의 사례로 삼아, ‘사회과학은 과거를 재현할 수 있는가’라는 보다 근원적이고 거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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