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반 투르게네프, <아버지와 아들>을 읽고

투르게네프의 대표작으로 반드시 거론되는 『아버지와 아들』은 생각보다 지루한 소설이었다. 이렇다 할 ‘사건’도 없고, 도스토예프스키 소설에서처럼 아주 강렬한 인물이 등장하지도 않는다. 이 소설이 재미있었으려면, 도스토예프스키 소설 속 라스꼴리니코프나 이반 카라마조프 같은 강렬한 역할을 주인공인 바자로프가 했어야 하는데, 소설을 읽어보면 바자로프는 다소 희화화되어 묘사되다가 마지막에 허무하게 죽음을 맞이할 뿐이다. 이 소설에서 가장 서정적인 순간은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는 바자로프의 양친을 묘사할 때다. 소설 속에서 ‘아버지(세대)와 아들(세대)’의 ‘영원한 화해’는 죽은 자식의 무덤가 앞에서나 가능했다. 그것이 투르게네프의 정치적 입장을 암시하는 것인가를 두고 당대에도 지식인들 사이에서 일대 논쟁이 벌어졌다.

이 소설은 1860년대 러시아 사회라는 맥락을 고려하면서 읽을 때 풍부하게 읽을 수 있다. 『아버지와 아들』(1863)을 읽으면서 도스토예프스키의 『악령』(1873)을 떠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데, 두 소설은 당대 러시아의 새로운 지식인 그룹이었던 ‘1860년대 세대’의 등장에 대한 반응으로 쓰였던 것이기 때문이다(프랑스에서는 발자크와 위고로 대표되는 1820년대 세대가 중요했다 – 이때 세대 구분은 이들이 20대 청년기를 보낸 연대를 의미한다. 이 용법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386세대는 ‘1980년대 세대’가 되는 셈이다). ‘1860년대 세대’는 이전 세대 지식인들이었던, 그들의 ‘아버지들’격인 ‘1840년대 세대’와 상이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 40년대 세대의 인식 속에서 차르 체제는 나폴레옹 전쟁(1812)에서 승리하고, 데카브리스트의 난(1825)을 진압한 후 반동정책을 강화해 나간 ‘난공불락’의 것이었다. 그들은 니콜라이 1세(1825~1855)의 억압적인 통치 하에서 급진적인 혁명은 포기하고, 온건하고 귀족적인 자유주의적 개혁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반면 체르니셰프스키, 도브롤류보프, 피사레프로 대표되는 60년대 세대는 크림전쟁 패배(1854~1856)를 경험하고 러시아가 매우 후진적이고 허약한 상태라는 것을 강하게 의식했다. 니콜라이 1세의 뒤를 이은 알렉산드르 2세(1855~1881)는 선왕과 반대로 ‘대개혁’을 주도했는데, 유럽에서 가장 늦은 농노해방령(1861)이 선언되고 지방자치기구인 젬스트보가 설치(1864)된 것도 이때의 일이다. 그러나 뒤늦은 개혁은 새로운 세대의 지식인들에게 실망만 남겼고, 그 결과 그들은 사상적으로 완전히 급진화 되어 버린다.

도스토예프스키의 독자라면 1860년대 세대의 ‘급진사상’이 어떤 것이었는지 얼추 가늠해 볼 수 있다. 라스꼴리니코프(죄와 벌), 표트르 베르호벤스키와 끼릴로프(악령), 이반 카라마조프(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처럼 문학사에 영원히 남을 캐릭터들은 바로 60년대 세대를 모티프로 한 인물들이다. 그것은 유물론, 공리주의, 합리주의, 무신론 따위가 ‘니힐리즘’이라는 이름 하에 미분화된 채 관념적으로 엉겨 붙어 있는 기묘한 모습이다. 『아버지와 아들』에서도 잘 드러나는 바, 그들에게 40년대 세대의 자유주의는 귀족적 낭만주의에 불과했다.

이런 두 세대의 단절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바로 도스토예프스키가 연루되었던 것으로 유명한 페트라셰프스키 사건이 아니었나 싶다. 도스토예프스키도 젊은 시절에는 급진주의 지식인 모임이었던 페트라셰프스키 그룹에 기웃거렸는데, 니콜라이 1세에게 ‘처형 쇼’라는 참교육(?)을 당하고 회심한 일화가 유명하다. 60년대 세대를 보는 도스토예프스키의 ‘꼰대적’ 인식은 여기서 비롯한 것이라고 볼 수 있는데, 상이한 정치적 입장에도 불구하고 60년대 세대를 그토록 매혹적으로 묘사한 것이 도스토예프스키의 작가적 위대함이라고 하겠다.

이쯤 되면 ‘러시아 혁명의 이데올로기적 기원’으로서의 1860년대 지식인들의 사상에 대해 구체적으로 궁금해지는데, 아쉽게도 러시아 혁명을 다룬 국내 단행본들은 대부분 1860년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가지는 않는다(올랜도 파이지스(1891~1991), 쉴라 피츠패트릭(1917~1938)). 60년대 세대의 사상을 다룬 영미권의 가장 저명한 연구서는 프랑코 벤투리의 <Roots of Revolution>이라고 하는데 국내에 번역되지 않았다. 이사야 벌린의 <러시아 사상가>가 그나마 개괄적으로 19세기 러시아 지식인들을 다루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절판된 상태다. 가장 직접적으로 60년대 세대 사상에 한국어로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은 필립 폼퍼의 네차예프 전기를 통해서다. 그 외로는 당시 러시아 소설들을 통해 우회적으로 접근하는 수밖에 없다.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에서 묘사되는 ‘60년대 세대’의 대표인 바자로프는 독일인들에게 의학과 자연과학을 배우고, 독일 작가 뷔히너를 지지한다. 푸쉬킨을 숭상하고 프랑스와 영국을 모범으로 여기는 40년대 세대인 빠벨 빼드로비치는 바자로프가 볼 때 순진한 낭만주의자일 뿐이다. 바자로프는 계급적인 맥락도 중요하게 의식하고 있는데, 바자로프는 ‘잡계급(라즈노친츠이)-평민’ 출신이고, 그의 친구인 아르까디 집안은 귀족 집안이다. 그런데 투르게네프는 관념과 계급만으로 ‘삶’을 설명할 수는 없는 법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삶은 많은 경우 그런 것들을 초과한다. 러시아 작가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주제의식인 이른바 ‘관념과 삶의 변증법’이다.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서나, ‘아들들’은 ‘생각하는 대로 살고자’하는 반면, ‘아버지들’은 이미 어느 정도 ‘사는 대로 생각’한다. 구체적인 맥락을 잠시 제쳐 둔다면, 1860년대 러시아에 등장했던 청년세대의 이른바 ‘니힐리즘 사상’은 곧 ‘생각하는 대로 살고자’하는, 청년기의 보편적인 이상의 한 극단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 청년기의 이상은 자연스럽게 ‘진보주의적 사회공학’과 연결된다. ‘생각하는 대로 사는 것’은 개인의 입장에서 볼 때는 주체적이고 바람직한 것이며 심지어 경우에 따라 도덕적이고 정치적으로 개혁적인 것이지만 온 사회가 ‘(누군가의) 생각대로 살고자’ 하는 것은 위험하다. 이후의 역사(러시아 혁명)를 알고 있는 현대인의 입장에서 『아버지와 아들』 속 바자로프의 모습이(나아가 그 시기 러시아 소설들 속 60년대 세대의 모습 일반이) 의미심장하게 여겨지는 이유다.

‘아들 세대’에 속하는 바자로프와 그의 정신적 제자 격인 (후배이자 친구) 아르까디는 이 점에서 마지막 순간에 대조된다. 두 청년은 안나 세르게예브나 오딘쪼바(오딘쪼바 부인)와 그녀의 동생인 까쨔를 만나서 각각 사랑에 빠지는데, 아르까디와 달리 바자로프는 자신이 사랑에 빠졌다는 사실을 애써 부정한다. 니힐리스트인 바자로프는 자기 내면의 낭만주의조차 용인할 수 없었던 것이다. 삶보다 관념이 그에겐 더 중요했다. 반면 아르까디는 관념 대신 삶을 선택한다. 누구나 인생의 초반부에는 바자로프(관념)이지만, 어느 시점에서는 아르까디(삶)로 옮겨가야만 한다. 인생이란 원래 늘 생각대로 되는 것은 아닌 법이며, 생의 어느 시점에는 그 사실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없다. 적어도 위대한 러시아 작가들의 구도 속에서는 그러지 않으면 계속 살아가기 어렵다.

결과적으로 평민 출신이었던 바자로프는 고향에서 시체를 해부하다가 장티푸스에 감염되어 허무하게 사망하고, 바자로프를 배신(?)한 아르까디는 까쨔와 결혼하여 행복한 귀족적 삶을 살아간다. 바자로프와 아르까디의 이러한 대조가 계급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지, 삶을 대하는 태도나 선택의 문제였다고 볼 지에 따라서 이 작품은 완전히 다르게 읽어낼 수 있다. 다만 어느 쪽으로 보나 투르게네프의 입장을 유추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혹은, 두 관점은 처음부터 상통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참고문헌)

한정숙. "아버지와 아들, 아들과 아들." 인문논총 58 (2007): 71-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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