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글로서먼, <피크 재팬>: 일본의 2010년대

 

 

저자는 30여년간 일본에서 체류하며 기자생활을 한 퍼시픽포럼 연구원 출신 기자이다. 2010년대 이후 경제, 정치, 외교, 사회 영역에서 일본사회의 부침을 설명한 뒤, 아베 집권기가 일본의 ‘마지막 정점’이 될 것이라는 예상을 덧붙인다. 2010년대의 일본 정치상황을 다루고 있어서 유용하지만, 전체적으로 자료 아카이브의 느낌이 강하다. 자민당 내부의 파벌에 대한 분석이나 55년 체제 성립 이후 고도성장기의 일본정치는 다루고 있지 않아서 아쉽다(곧장 90년대로 점프한다). 아베의 일본이 일본의 마지막 정점이 될 것이라는 예상 역시 다소 비약이다. 정치와 경제 영역에서 일본이 고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외교영역에서 일본의 전환은 비교적 성공적이라고 평가할 수 있기 때문이다.

 

1) 일본의 부상

덴노의 반대를 무시하고 막부가 개항을 해버리자 이에 불만을 품은 지역 영주들이 요시다 쇼인의 ‘존황양이’를 위시해 조슈 번과 사쓰마 번을 중심으로 세력을 형성했다. 처음에는 막부가 우세했으나 사카모토 료마의 노력으로 맺어진 삿초동맹(사쓰마 번과 조슈 번)이 막부를 압박한 결과, 쇼군 도쿠가와 요시노부가 국가 통치권을 메이지 덴노에게 반납했다(1867년 대정봉환). 이후 메이지 지사들은 쿠데타를 통해 막부를 타도하고 왕정복고를 감행, 천황 중심의 근대화 과정을 밟는다(메이지 유신). 이후 일본은 한일병합(1910) – 만주국 건국(1932) – 대동아공영권(1940년)의 과정을 거치며 제국주의 국가로 변모하지만, 태평양전쟁에서 패배하여 초토화된다.

 

 

전후 일본은 경이로운 경제성장을 거듭하며 미국을 위협할 정도의 세계적 경제대국이 되는데, 이 과정에 대한 구미 세계의 이해방식으로는 세 가지 유형을 들 수 있다. 먼저 조지 프리드먼의 <The Coming War with Japan>과 같이 일본의 부상을 미국의 입장에서 경계하고 우려하는 유형이 있다. 에즈라 보겔의 <Japan as No.1>은 일본이 후기산업사회의 과제들을 성공적으로 해결해냈다며 칭송하는 유형이다. 찰머스 존슨의 <MITI and the Japanese Miracle>은 절제된 어조로 일본의 경제성장을 설명하기 위한 사회과학적인 개념 틀을 제공한다. 이때 일본의 경제 성장은 관료집단이 정재계와 결탁하여 ‘계획합리성’을 발휘하는 ‘발전국가론’으로 설명된다.

 

2) 잃어버린 20년과 고이즈미의 분투

그러던 일본은 1985년 플라자 합의 이후 1990년에 금리를 인상하면서 본격적인 장기침체 국면으로 들어선다.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리는 일본의 90년대는 오키나와 성폭력 사건, 옴 진리교 사린가스 테러사건, 고베대지진(한신대지진) 등 사회적으로도 암울하고 우울한 분위기가 만연했다. 일본은 2000년을 GDP 감소, 실업률 상승, 신용등급 강등으로 맞이해야 했다.

 

일본 자민당의 두 구원투수, 2000년대의 고이즈미와 2010년대의 아베

 

고이즈미 준이치로는 이런 상황에서 ‘젊고 특이하고 개혁적인’ 느낌의 ‘구원투수’처럼 등장했다. 고이즈미 내각은 경제적으로 공기업 민영화, 정경관 유착 해소, 조직유연화 등의 신자유주의적 개혁조치를 감행했다. 그 결과 2002년 6%에 불과했던 경제상황평가여론은 고이즈미가 퇴임한 2007년에는 28%로 크게 개선됐다. 외교적으로도 미일동맹을 현대화하고, 북일정상회담을 통해 평양선언을 추진하는 등 새로운 시도가 있었다. 저자는 일본의 정치적, 경제적 안정을 이루어 낸 고이즈미 집권기가 일본이 마지막으로 ‘역동적’이었던 시기였다고 평가한다.

 

고이즈미 퇴임 후 자민당의 총리들인 아베 신조(2006), 후쿠다 야스오(2007), 아소 다로(2009)는 각종 정치스캔들과 2008년 금융위기의 여파로 지지를 크게 잃었다. 특히 거물 정치인 오자와 이치로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 끝에 일본 민주당이 역사상 최초의 ‘단독정당에 의한 수평적 정권교체’를 실현하게 된다. 그러나 바로 이 민주당의 완벽한 ‘실패’가 오늘날 아베의 일본을 이해하는데 가장 중요하다고 저자는 말한다. 일본은 경제(리먼 쇼크), 정치(정치 쇼크), 외교(센카쿠 쇼크), 사회(동일본대지진) 영역에서 엄청난 ‘쇼크’를 경험하는데, 민주당 집권기 일본의 총리들(하토야마 유키오 – 간 나오토 – 노다 요시히코)은 모두 이 문제에 무력했다.

 

3. 고이즈미 이후: 재팬 쇼크와 일본 민주당의 실패

 

일본 최초의 정권교체 - 민주당의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 노다 요시히코 총리

 

(1) 리먼 쇼크

일본의 장기불황은 단순히 경기순환 상의 하강 국면이거나 세계적 경제위기의 여진인 것만이 아니라, 일본 특유의 보수성과 맞물려 있는 일본적인 현상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저자는 일본의 경제침체 구조적인 원인으로 재정부채, 고령화된 인구구조, 초과설비(좀비 기업), 디플레이션, 오프쇼어링을 꼽는다. 그러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본 국민들의 경제 문제에 대한 자발적인 참여과 관심은 부족한 편이고(일본인들은 과거 자신들이 성취한 경제적 성과에 대한 강력한 자신감을 가지고 있어 자국의 자본주의 체질을 바꾸는데 소극적인 태도를 보이는 식의 독특한 보수성을 지니고 있다), 기득권-엘리트 집단의 반발도 극심하다(고이즈미의 우정개혁 사례를 생각해볼 수 있다). 고이즈미 이후 민주당에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만큼 정치적으로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지도자는 등장하지 않았다.

 

 

(2) 정치 쇼크

일본의 정치는 흔히 ‘재포크라시(관료정치)’, ‘가라오케 민주주의(회전문 인사)’, 세습정치 풍습 등 후진적인 요소가 만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민주당 집권기의 각료와 정치인들은 ‘(관료가 아닌)정치인이 주도하는 정치’를 전면에 내걸고 정치개혁을 외쳤으나, 제대로 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반대를 위한 반대자’라는 오명만 뒤집어 썼다. 2010년 7월 참의원(상원) 선거에서 자민당이 압승한 뒤로는 의회를 통한 입법 자체도 쉽지 않았으며, 일본 민주당은 내내 분명한 이념 없이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토야마 유키오 총리는 오키나와의 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건드리거나 외교적으로 아시아를 강조하여 일본국민들에게 미일동맹에 대한 불안감만 심어줬다. 간 나오토 총리는 동일본대지진이라는 직격탄을 얻어맞으며 정신이 없었다. 노다 요시히코 총리는 애초에 성향 자체가 자민당과 별 차이가 없는 인물로, 소비세 문제로 당내 오자와 이치로와 대립하다가 힘없이 자민당에 정권을 내줬다. 이러다 보니 이 시기 일본에서는 ‘사카모토 료마 신드롬’이 일며 카리스마적 정치인들이 약진하기도 했다. 카리스마적 정치인의 부상은 정상적인 의회 정치의 실패를 의미한다. 오사카 지사인 하시모토 도루는 우익 성향의 포퓰리스트였으나 현재는 영향력을 많이 잃었다. 고이케 유리코는 도쿄 도지사로 정부와 대립하며 인기를 끌며 차기 총리 후보로 언급되는 등 꾸준한 영향력을 행사 중이다. 

 

 

(3) 센카쿠 쇼크

외교적인 전환의 분기점은 2010년 동중국해 분쟁이었다. 전후 일본 외교정책은 안보적으로 저자세를 유지하면서 경제발전에 집중하는 ‘요시다 독트린’의 기조를 유지해왔다. 이 기치 아래에서 일본은 90년대까지 국제 원조프로그램에 가장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모범적인 국가였으며, 평화적 분쟁해결과 사안의 외교적 해법에 적극적으로 임하며 초국가적 국제기구에 우호적이었다. 일본은 유엔 제2의 재정 분담국이자, 환경 외교(교토의정서)와 핵 외교에서 선도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선진국가로서 독일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국제 강대국’(Hanns Maull, <Germany and Japan: The new Civilian Powers>)으로 꼽히기도했다. 이것은 일본이 하드파워를 포기한 결과 국력을 소프트파워에 집중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다.

 

그런데 중국의 부상과 함께 동아시아 역내에서조차 일본의 쇠락이 가시화되자, 일본은 국제정치에서 자신들의 영향력이 줄어드는 것을 두려워하기 시작했다. 특히 하토야마 내각은 1977년 후쿠다 독트린(동남아 중시노선)을 계승해 ‘아시아 중시 외교정책’을 천명했는데(아시아와 서구 사이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 지의 문제는 후쿠자와 유키치 이래 일본의 아주 오래된 외교적 고민으로, 저자는 하토야마 유키오의 아시아 중시 노선이 엄연히 일본의 외교전통 범주 내에 있는 것임을 강조한다), 이것이 미군기지 이슈와 맞물려 자민당에 의해 과도하게 단순화, 프레이밍 되면서 일본사회 내 외교안보적 불안감을 야기했다. 동중국해 분쟁 때 일본이 불법조업을 하던 중국인 어부를 체포하자 중국이 희토류 수출 금지, 주중 일본대사 초치 등 유례없이 강경대응을 했는데, 이 사건이 결정적 계기가 되어 일본의 여론은 미국을 중심으로 중국을 포위하는 방식의 외교노선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4) 동일본 대지진

동일본대지진은 고이즈미 내각 이후 일본사회의 불안과 위기를 총체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지진과 쓰나미는 자연재해라고 해도, 그 이후의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인재에 가까웠다. 몇몇 일본의 지식인들은 이를 전후 사회체제 전반에 대해 반성하는 계기로 삼고자 했다. 전후 일본의 경제성장을 가능케 했던 요소들이, 오늘날에 이르러서는 끔찍한 원전사고를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이다. 저자는 동일본대지진의 영향을 세 가지로 정리한다. 먼저 재난 당시 구호활동에 가장 적극적인 정부조직이었던 자위대가 미군과 함께 일본 국민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었다. 특히 주변 아시아국가들의 구호활동은 일본이 ‘아시아 국가들 간의 연대’ 문제에 대해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연대와 유대를 중시하는 공동체의식도 강조되었다. 간 나오토 총리는 ‘기즈나’ 정신을 강조하며 재난 상황에 맞서 협력과 연대의 가치를 강조했다. 그러나 아즈마 히로키를 비롯한 문화평론가들은 기즈나의 허상을 폭로하며 도덕적 소비주의의 공허함을 지적했다. 실제로 사고의 피해를 온전히 감당해야 했던 것은 도호쿠 지방 주민들이었으며, 기즈나가 가리키는 것은 협애한 집단의식과 통제일 뿐이라는 것이다.

 

 

2010년대에 일본이 직면한 일련의 사태들은 일본의 ‘방향상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우파는 ‘헌법’을, 좌파는 ‘자본주의’를 그 원인으로 지목했다. 우파는 일본이 전후에 받아들인 헌법 자체가 일본의 성장을 근본적으로 제약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을 다시 위대하게’ (아베의 표현대로라면, ‘아름다운 나라로’) 만들기 위해서는 헌법을 바꿔야만 한다고 보았다. 이는 배타적 민족주의와 역사수정주의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반면 좌파는 공동체를 해체하는 후기자본주의 소비사회를 방향상실의 원인으로 본다. 이는 일본의 전통적인 ‘소일본주의’로 나타난다. 소일본주의란 ‘자연 앞에 영원한 것은 없다(無常)’는 독특한 허무주의가 전통적인 일본적 정체성과 결합된 것으로, 과거 이시바시 단잔 총리에 의해 ‘축소지향’ 외교노선으로 표현되기도 했다. 저자는 이를 ‘모조 대 무조(영어로 활력을 뜻하는 Mojo와 일본어로 무상을 뜻하는 무조)’로 정리한다. 여기서 정치적 보수주의로 나타나는 후자는 전자를 가속화하는 경향이 있다.  

 

 

4. 아베의 일본

2012년 아베의 집권은 일본사회의 위기에 대한 우익 버전의 대안이 현실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아베는 경제적으로 재정투입, 통화완화, 구조개혁으로 대표되는 아베노믹스를 추진했고, 외교적으로는 국내 반대 여론을 무시하고 자신이 지향하는 보수적 안보정책(2013년 국가기밀법, 2014년 집단적자위권 재해석, TPP 가입은 대표적으로 국내에서 반대여론이 강했다)을 밀어붙였다. 경제와 외교 모두에서 반대 여론이 만만치 않았음에도 아베가 선거에서 계속 승리할 수 있었던 것은 특유의 기회주의적이고 기민한 선거책략가적인 면모 덕분이었다. 2018년 모리토모학원 관련 스캔들과 수의학부 신설 스캔들 이전까지는 이렇다 할 스캔들이 없는 행운도 따랐다. 아베 집권기 일본은 집단적 자위권을 재해석하고 미일동맹을 강화하는 한편, 시장경제 체제와 민주주의 제도를 가지고 있는 국가들과 교류를 확대한다는 ‘가치관 외교’를 전면에 내걸고 미국은 물론 호주, 인도, 아세안 국가들과 교류를 확대했다. 2017년 이후에는 트럼프 변수로 인해 잠시 대중유화노선을 취하기도 했다. 한국과의 관계 개선은 여전히 숙제지만, 미일 동맹의 현대화와 이를 통한 동아시아 지역 내 영향력 강화라는 측면에서 아베의 외교정책은 성공적인 측면이 있다. 그러나 저자는 아베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일본은 구조적 한계와 국민들의 생활 보수적인 태도로 말미암아 현재가 일본의 정점(피크 재팬)이 될 것이라고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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