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석, <물리 열전>을 읽고

저자는 조선일보 기자 출신 언론인이다. 서문의 제목 ‘이제 사람으로 과학을 배운다’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국내 과학자들을 상대로 한 기획 인터뷰 기사 모음집이다. 이 접근 자체는 매우 신선하고 적절한 것이다. 자연과학 교양에 대한 수요와 공급 자체가 적지 않음에도, 현재 국내에서 가장 활발하게 활동하는 이른바 ‘노벨상급’ 과학자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은 잘 없을 것이다. 이 책은 국내 물리학자 47인의 연구관심과 개인사를 소개하면서 오늘날 한국 물리학계의 분위기를 비교적 생생하게 전달한다. 현대사회에서 지식은 선구자적인 과학자 개인의 영감이나 천재성이 아니라 (국제적) 학술 커뮤니티의 협업을 통해서 이루어진다. 결국 과학지식이라는 것도 사람과 제도에 의해 생산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책과 같은 ‘열전 식’ 접근이 (단순한 지식-설명형 접근보다) 과학지식의 생산과정과 더 잘 맞아떨어진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에 등장하는 내용들은 정말이지 다른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이 책은 저널리즘적인 접근의 한계를 고스란히 내보인다. 이 책은 그야말로 단순 기사 모음집이라서 개별 챕터들이 잡지 기사 한 편 분량에 불과하며, 그 내용도 피상적이고 모호하다. 심지어 저자 스스로가 과학자의 설명을 ‘이해할 수 없었다’며 인터뷰이의 말을 그대로 옮기기만 한 대목이 너무 많다. 그리고 최소한의 재편집 과정도 거치지 않은 것인지(재배열만 한 것으로 보인다), 챕터끼리 겹치는 내용도 많았다. 초보자 입장에서는 복습(?)하는 효과도 있었으나 말그대로 잡지 기사들을 연달아 읽는 느낌이었다. 가령, 한국의 암흑물질 연구자들에 대해서 인터뷰 책을 낸다면 최소한 앞에서 암흑물질이 무엇이고, 암흑물질이 이론적으로 예측된 시점은 언제이며 그것의 과학사적인 의의는 어떤 것인지, 국내 연구자들은 그 계보에서 어디쯤 위치하고 있는지에 대해 소개 했어야 한다. 이 책은 그러지 않고 대뜸 암흑물질을 검출하는 과학자에서부터 시작하니까 독자는 암흑물질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액시온’과 ‘윔프’부터 시작하게 된다. 암흑물질의 의의가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독자가 유추하거나 검색해서 알아내는 수밖에 없다. 좋은 기획에 수준 미달의 컨텐츠에 아쉬움이 크다. 그래도 한국과학이 도달한 지점에 대해 호기심을 자극하는 불쏘시개 역할만큼은 잘 해낸 것으로 보인다.

물리학은 ‘보이지 않는’ 운동과 에너지에 대한 학문이라는 인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의외로 현대물리학의 공통(?) 화두는 ‘물질’이었다. 입자물리학자들은 거의 유령 같은 물질들을 검출하거나 포착하는 것이 최대 관심사다. 암흑물질, 중성미자, 반물질 같은 것들을 검출하기 위해 입자가속기도 돌리고, 천체관측도 하는 것. 특히 이런 쿼크와 전자 수준의 물질들은 우주의 기원과도 관련이 깊다. 예를 들어 전자의 전하가 음(-)이고 양성자의 전하가 양(+)인 것은 상식인데, 놀랍게도 빅뱅 초기에는 전하가 양(+)인 전자(양전자)와 전하가 음(-)인 양성자(반양성자)도 있었다! 이런 걸 반물질이라고 하는데 어쩌다 우주에 물질만 남고 반물질은 사라졌는지가 물리학의 최대 미스터리 중 하나다.

원자들끼리 결합하는 방식이 왜 달라지는지, 그 결정구조에 따라 어떤 물질이 만들어지는지도 현대물리학의 중요한 관심인데, 이를 ‘응집물질 물리학’ 또는 ‘고체물리학’이라고 부른다. 전자는 물질의 구조 속을 돌아다니면서 물질의 성질을 결정한다. 원자와 원자, 원자와 전자 사이에서 어떤 상호작용이 일어나는지를 연구하기 위한 이론적인 기초는 다름 아닌 양자역학이다. 여기서 연구하는 물질들은 산업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경우도 많아 응집물질 물리학이 한국 물리학계의 최대 주류라고 한다(대중들의 물리학에 대한 인식과는 상반된 지점이다). 유명한 ‘그래핀’이나 얼마전에 이슈가 되었던 ‘상온상압 초전도체’ 같은 것을 떠올리면 이 분야가 어떤 것인지 감을 잡을 수 있다. 고체물리학 분야 실험을 위한 장비를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경우도 있다. 전자 현미경, 광전자 분광기, 방사광 가속기 같은 최첨단 장비가 대표적인 최첨단 실험 장비들이다.

그 밖에 생물물리학자나 복잡계 물리학자도 인터뷰이로 참여했는데 한국 내 커뮤니티는 크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물리학 대중교양서로 유명한 성균관대 김범준 교수는 복잡계 · 통계물리학자인데 국내 복잡계 물리학 규모는 부끄러울 정도로 작다고 고백한다. 참고로 이 책에는 등장하지 않지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존스홉킨스 대학교의 하택집 교수는 생물물리학자, 하버드대학교 김필립 교수는 응집 물질물리학자이다.

그렇다면 한국의 기초과학 지원 정책 방향은 어떠해야 할까? 기초과학도 다 같은 기초과학이 아니다. 국내 응집 물질물리학 분과는 이미 규모가 가장 크고 첨단산업과의 연관성도 큰 반면, 입자물리학 분과는 국가적인 차원의 육성 정책 없이는 선진국과 경쟁이 어렵다. 천체물리학자들은 ‘한국 중성미자 관측소’ 건립을 염원하고 있다(일본은 이 분야에서 세계 1위 국가로, 중성미자로만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았다). 복잡계 물리학이나 생물물리학도 대중적인 관심에 비해 실제 국내 학계 규모는 미약한 수준이다. 그렇다고 응집 물질물리학 투자를 줄일 수도 없는 노릇이다(반도체!). 결국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분배할 것인지의 문제인데, 이 문제야말로 전문가의 지적 리더십이 필요한 영역이 아닌가 싶다. 다른 모든 분야가 그렇듯 한국은 국가적으로 명확한 방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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