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읽은 책들에 대한 단평(5): 중국 고대사, 축구, 로스쿨

『고대 중국에 빠져 한국사를 바라보다』 - 심재훈

어느 비주류 역사가의 넋두리’를 부제로 하는 이 책은 저자의 페이스북 글을 모아 책으로 펴낸 것이다. SNS 글을 모은 것이다 보니 딱히 체계나 구성을 제대로 갖추었다고 할 수는 없는 책이었다. 하지만 국내에 제대로 소개되어 있지 않은 구미 동양사학계의 시각에서 동양학의 여러 현안들을 두루 다루는 드문 기획으로서, 한국어로 된 다른 문헌에서는 쉽게 접하기 힘든 귀한 시각을 제공하고 있어 일독의 가치는 있다.

먼저 미국학계가, 다른 모든 분야에서와 마찬가지로, 동양학에 있어서도 세계적인 성취를 갱신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 둘 필요가 있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들은 저마다 ‘동아시아 언어문명학부(EALC : East Asian Language and Cultures, ‘극동언어학부’로부터 개칭)’를 설치하고 100년 가까이 운영해오며 독자적인 동아시아학 학풍을 정립시켜 왔다. 하버드의 존 킹 페어뱅크(중국사)와 에드워드 라이샤워(일본사)의 주도 하에 동양학의 패권은 유럽으로부터 미국으로 넘어왔고, 학문적 개방성과 학제적 연구에 힘입어 오늘날까지 미국 대학은 동양학 분야의 최전선을 지키고 있다. 그러니까 ‘한국사는 한국 대학에서’ 전공해야 한다는 인식은 상당히 촌스러운 생각일 수 있다(다만 이러한 미국의 학문패권이 반드시 그 질적 수준에서 기인한 것만은 아닐 수 있고(국제 공용어로서 영어의 지위와 미국식 학술지 문화의 지배라는 학문 외적인 요소가 작동했을 수 있다), ‘한국에서의 한국학’은 ‘국학’으로서 독자적인 의미를 지닌다는 점도 언급되어야 할 것이다. 게다가 미국 대학의 동아시아 지역학은 냉전 시대 지역연구의 일환으로 성립한 것으로, 강고한 반공주의와 근대화론의 영향 속에서 성립한 것으로서 2세대 연구자인 해리 하루투니언, 브루스 커밍스 등 비판적 아시아학자들에게는 극복의 대상으로 간주되기도 했다).

저자가 몸담고 있는 중국 상고사 분야 역시 예외는 아니다. 저자는 자신이 시카고 대학에서 훈련받던 시절을 회고하면서 구미학계가 높은 질적 수준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 철저한 실증주의에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때 저자는 구미 학계의 실증주의가 20세기 초반 중국 역사가 구제강의 ‘의고’ 정신과 맞닿아 있는 것임을 강조한다. 상고사는 후대에 의해 누적적으로 부풀려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전래문헌은 무작정 믿기 어렵고, 출토문헌과 고고학 자료(중국 상고사의 경우 갑골문, 청동기 금문과 죽간)와의 교차검증 속에서 엄격하게 실증되어야 한다는 것이 미국 대학의 주류적인 입장이다. 한편, 20세기 후반 이후 새롭게 발굴되고 있는 고고학 자료들에 근거하여 기존의 의고학적 해석에 도전하는 경향을 ‘신고’라고 부르는데(주로 중국학계에 의해 제기), 이 의고와 신고의 대립이 중국 상고사 연구에 긴장을 불어넣고 있다고 한다.

눈여겨볼 것은 그처럼 실증주의적인 구미학계의 시각에서 한국 고대사가 얼마나 왜소한 것인지다. 저자에 따르면 고조선은 무엇보다 사료 자체가 많이 남아 있지 않기 때문에 구미학계에서는 ‘논문 몇 편’이면 더 연구할 것이 없는 분야다. 저자가 중국 상고사 연구자였음에도 불구하고 예일대학교에서 한국학 강사로서 한국 고대사까지 담당했다는 사실이 국제적 학술장에서 한국 고대사의 왜소함을 잘 보여준다. 국내에서만 통용될 수 있는 민족주의적 (경우에 따라서는 사이비) 상고사 서술은 한국 고대사의 고립과 폐쇄성만을 강화할 뿐이다. 그와 같은 편협함을 잘 보여주는 사건으로 저자는 하버드 대학교의 마크 바잉턴 교수가 주도했던 ‘고대 한국사 프로젝트(EKP: Early Korea Project)’ 사건을 소개한다. 마크 바잉턴은 구미학계에서 한국고대사(부여사)로 학위를 받은 예외적인 인물로, 그가 주도한 고대 한국사 프로젝트는 구미 학계에 한국 고대사 연구를 소개하고 정착시킬 기회였다. 그런데 그가 집필한 (학계에서는 정설인) ‘낙랑군 재 평양설’ 챕터가 동북공정과 식민사관을 닮아 있다는 이유로 한국 유사역사학자들의 시위에 직면하여 프로젝트가 중단되는 일이 있었다. 마크 바잉턴은 이 일로 빈정이 상해서 한국 고대사 연구를 중단하고 중국사로 분과를 옮겨버렸다고 한다. 문명국가이자 선진국인 대한민국이 여전히 고대사 콤플렉스 속에서 반지성주의적 난동을 부리고 있다는 사실에 개탄을 금할 수 없다.

저자가 제안하는 것은 중국 고대사를 중국사가 아닌(민족국가 성립 이전의 중국사가 꼭 ‘중국의 역사’일 이유는 없다) 공통의 문명사로서 탈민족주의적으로 수용하는 방식이다(재미있는 것은 저자의 단국대 은사인 윤내현 교수는 대표적인 ‘거대한 고조선사’의 주창자라는 점이다). 그 편이 사료 부족이라는 근본적 문제를 돌파하는 방법일 뿐만 아니라, 보편적인 언어로 세계 학계에 한국 고대사를 정착시키는 길이라는 데에 동의한다. 다만 그렇게 할 경우 어쩔 수 없이 (이미 그렇게 되어 있긴 하지만) 동아시아 고대사가 중국을 중심으로 정립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그 방식이 여전히 대다수 한국인들에게 감정적으로 불편한 것은 사실이다. (학문적으로 성실한 유학파 지식인들이 종종 보이는 경향으로서 어떤 면에선 바람직한 것이긴 하지만) 저자가 전체적으로 지나치게 구미학계의 입장에 기울어 있다는 인상도 준다. 이 문제에 대한 국내 고대사학계의 입장도 궁금하다.

『축구는 문화다』 - 홍대선, 손영래

개인적으로 특별히 스포츠에 관심이 많지는 않지만 스포츠 국가 대항전을 볼 때마다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정치학도다운 의문을 품곤 했다. 왜 어떤 나라는 특정 종목에 강하고, 어떤 나라는 그렇지 않은가? 21세기에 ‘국가’를 ‘대표’하는 스포츠 선수가 된다는 것은 대체 무슨 의미인가? 스포츠 선수의 신체는 곧 국가경쟁력인가? ‘국위선양’이라는 대의명분은 여전히 유효한가? 스포츠가 무엇이기에 사람들은 그토록 열정적으로 ‘우리나라’를 응원하는가? 그 ‘우리나라’가 기꺼이 마음을 다해 응원할만한 국가이기는 한가? 스포츠의 속성을 잘 아는 독재자들은 이를 우민화 정책수단으로 요긴하게 사용해왔다. 올림픽 같은 대형 국제 스포츠 대회를 성공적으로 개최하는 것은 국가적 자부심의 원천이 되기도 한다(재미있게도 올림픽은 ‘도시’단위로, 월드컵은 ‘국가’단위로 개최한다). 스포츠 앞에서 우리는 너무나 쉽게 근대국가적 열정의 포로가 되는 것만 같다.

수많은 스포츠 종목들 중에서도 특히 축구는 유난히 격렬한 민족주의를 불러일으킨다. 미디어도 축구를 다룰 때 전쟁과 관련된 비유를 꺼리지 않고 사용한다(‘태극전사’, ‘전차군단’, ‘무적함대’ 등). 제2, 3회 월드컵(34년, 38년)의 우승팀이 무솔리니의 파시스트 이탈리아였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그러니까 굳이 따지자면 축구는 군사적이고 우파적인 종목이다. 축구의 기원 자체가 무질서한 ‘패-싸움’이었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축구와 정치가 관련이 깊은 것은 자연스럽다.

축구의 정치문화사에서 기억할 만한 국가는 우선 아르헨티나다. 민족주의의 핵심은 국가와 개인이 직접 연결되도록 한다는 것이다. 아르헨티나에서는 이것이 축구를 통해 이루어진다. 축구가 전쟁이라는 비유를 받아들인다면, 전쟁이 국가를 창출한다는 찰스 틸리의 테제를 비틀어, 아르헨티나에서는 ‘축구가 국가를 창출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르헨티나가 국가적 위기에 빠져 있을 때마다 축구는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위로와 희망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아르헨티나가 거둔 세 번의 월드컵 우승이 모두 각별했다. 1978년 월드컵은 길었던 페론 시대가 비델라의 군부 쿠데타로 종결되고나서 치러졌던 ‘독재자의 월드컵’이었다. 무자비한 인권탄압과 백색테러가 일상화된 상황 속에서 아르헨티나 국민들은 군부정권이 월드컵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고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자국에서 치러진 월드컵 우승은 그들에게 아이러니한 감격을 선사했고 이는 기묘한 통합의 계기가 되었다. 마라도나가 활약했던 1986년 월드컵 우승은 포클랜드 전쟁으로 인해 국제사회에서 고립되다시피 했던 아르헨티나 국민들에게 ‘축구라도 이겼다’는 위로를 주었다. 지난 카타르 월드컵에서의 우승도 아르헨티나가 경제위기에 직면했던 상황에서 쟁취했던 것이다. 마라도나와 메시가 아르헨티나에서 단순한 스포츠 스타 이상인 이유다.

원초적인 집단의식을 자극하는 축구의 특성상 국내의 사회적 균열이 두드러지는 나라일수록 프로 축구 리그가 발달하도록 되어 있다. 영국은 ‘동네’ 단위로(프리미어리그), 이탈리아는 ‘도시’ 단위로(세리에A), 그리고 스페인은 ‘지역’ 단위로(프리메라리가) 갈등이 극심했기 때문에 라이벌 구도 속에서 리그가 발달했다. 흥미롭게도 스페인에서는 이것이 일종의 저항 민족주의적인 성격을 띠었다. 독재자 프랑코는 축구를 통해 지역민족주의를 억누르려고 했는데, 이를 위해 동원한 ‘국왕 인증(royal)’ 축구팀 중 하나가 바로 레알 마드리드다. 그러다 보니 FC바르셀로나(카탈루냐)나 아틀렌틱 빌바오(바스크) 같은 지역민족주의 기반의 프로축구팀이 ‘레알’ 팀들과 대결할 때면 독재자와 맞붙는다는 정치적인 의미가 부여되곤 했으며, 축구 응원과 정치적 시위의 경계는 모호해지곤 했다.

2006년 독일 월드컵은 축구가 ‘건강한 사회통합’의 기제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민자 출신으로 이루어진 프랑스 국가대표팀(알제리 출신 지네딘 지단!)은 프랑스 공화주의의 상징과도 같았다. 방리유 폭동(2005년)과 우경화의 조짐 속에서 프랑스 축구 국가대표팀의 월드컵 활약은 극우세력에 맞서 프랑스적 가치(똘레랑스!)를 웅변하는 것이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가와 민족을 내세우는 것이 금기시되었던 독일은 2006년 월드컵을 통해 민족주의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21세기적인 ‘헌정적 애국주의(하버마스)’의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도 있다.

한국은 어떨까? 복잡미묘한 민족주의의 맥락들이 축구에 그대로 투영된다고 보면, 2002년 한일월드컵 ‘신드롬’은 당시의 노풍(노무현 현상) 및 반미주의(효순이 미순이 사건)와 무관하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이쯤 되면 축구는 정말이지 단순한 스포츠가 아니며, 반드시 정치적 맥락 속에서 읽어내야 할 또다른 텍스트라고 해도 좋을 것 같다.

『너의 로스쿨』 - 박재훈

책 속에 명시적으로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저자는 학부도, 로스쿨도 이른바 ‘인서울 명문’ 학교출신은 아닌 인물로서, 비주류 마인드를 강하게 품고 있다. 그런 배경을 가지고 있는 이에게, 로스쿨에 즐비한 젊은 ‘한국적’ 엘리트들의 야단법석이 아주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밖에 없다는 것은 십분 이해한다. 나도 고등학교 시절을 그런 분위기 속에서 보내면서, ‘한국적인, 너무나 한국적인’ 어린 엘리트들의 정신세계가 얼마나 유치하고 같잖은 것인지에 대해 질리도록 경험했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쭉 승승장구할 것이 분명한 그들은 높은 확률로 그 지점에서 더 이상 인격적으로 성숙하기도 어려울 것이다. 오늘날 한국이 다름아닌 그 시절 ‘공부의 신’들이 만들어 놓은 지옥도임은 물론이다.

그런데 내가 이번에 이 책을 읽으면서 분명하게 느낀 것은, 그와 같은 냉소주의자의 자리에서 더 나아가지는 못하는 저자 자신의 한계였다. 아마도 내가 이 책을 고등학교 1학년즈음에 접했다면 저자의 넋두리에 기꺼이 동조하는 식으로 책을 읽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20대 후반의 내가 이 책에서 강하게 느낀 것은 다 큰 성인의 대책 없는 투정을 들어주는 일의 피로감이었다. 저자는 일종의 도덕적 우월감 속에서 로스쿨의 풍경을 시종일관 냉소적으로 묘사하는데, 거기서 느껴지는 것은 함께 조롱하는 쾌감이 아니라 묘한 위화감이었다. 그렇게 느낀 것은 아마도 내가 지난 10년간 변했기 때문일 것이다. 나도 딱히 스스로를 주류로 여기고 있지는 않으며, 오히려 뼛속까지 ‘반골’로서 언제나 비타협적 비주류의 습속을 체현해왔다고 생각하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실은 스스로를 돌아보게 되었다. 어떤 이들에게 나는 이렇게 비추어졌겠구나, 하며 아차 싶은 지점이 적지 않았다. 나는 성장한 것일까, 변질된 것일까.

냉소주의나 멜랑콜리는 비판적 인식의 맹아로서 소중한 정동(affection)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거기에만 머무르는 것을 세상 사람들은 ‘청승’이라고 부른다. 편협한 엘리트주의자와 청승맞은 냉소주의자는 현상유지에 기여하는 적대적 공범이다. 젊은 냉소주의자들은 그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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