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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7. 5. 04:55

『종의 기원』(정유정)과 <헤어질 결심>(박찬욱)

어제 박찬욱 감독의 을 보고 실망했다. 나는 정서경 작가와 협업을 시작한 이후의 박찬욱 영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대사가 유치하고 서사와 메타포는 조잡하며 기교와 트릭이 과해서 영화에 해가 된다. 드라마 작가 김은숙의 대사는, 그것이 일종의 ‘밈’이 되어 전국민적인 인기몰이를 하곤 한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 제아무리 ‘오글거릴지언정’ 최소한 대중의 (유치하지만 솔직한) 니즈에 복무하는 측면이라도 있는데, 정서경의 숱한 문어체 대사들은 당최 무엇을 의도한 것인지 알 수 없다(별로 코믹하지도 않다!). ‘오글거리는 문어체’라는 사실 자체보다 문제적인 것은, 그것이 뭔가 ‘진지한 의미를 담고 있는 체’하며 관객의 허영심에 호소한다는 ‘비윤리성’의 측면이다(외국인 관객에게는 이런 지점이 덜 거슬릴 수도 있겠다)..

2022. 6. 26. 06:40

육영수, <혁명의 배반, 저항의 기억>을 읽고

서양사 전체를 통틀어 가장 결정적인 사건을 하나만 선택해야 한다면 그것은 1789년에 시작된 ‘프랑스 대혁명’일 수밖에 없다. 프랑스 혁명은 서구 세계가 근대로 진입하는 데 있어 분기점이 되는 거대한 사건이었지만, 그 의미를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갑론을박의 역사가 길고 복잡했던 만큼 “18세기말에서 19세기초 프랑스”라는 시공간에 대해 섣불리 몇 마디 얹는 것은 만용이다. 중앙대학교 사학과 육영수 교수는 이 책을 통해 친근한 문체로 프랑스 혁명의 ‘이모저모’를 균형 있게 다루며 이 거대하고 육중한 사건에 대한 입문을 돕는다. 로베스피에르로부터 시작해서 1848년 혁명, 파리코뮌, 그리고 러시아 혁명으로 이어지는 ‘혁명의 교리문답’을 구축하는 것이 프랑스 혁명에 대한 ‘정통적인’ 마르크스주의적 해석..

2022. 6. 4. 19:43

[기고] 무엇을 먹을 것인가

그린빌리지에 기고한 마지막 글이다. 당분간 그린빌리지의 자체 사정으로 연재를 중단한다. 이 책은 아마도 내가 환경과 관련해서 기고하는 일을 시작하지 않았으면 읽지 않았을 종류의 책이다. 이 책은 기본적으로 과학교양서의 정체성을 지니고 있다. '지속가능한 라이프 스타일'로서의 '채식주의'에 대해 다루는 글을 써보고 싶었는데, 평소에 내가 가지고 있던 채식주의에 대한 고정관념(유난스럽다)을 교정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동물권리나 종차별주의에 관해서는 얼마 전에 읽었던 수나우라 테일러의 독서를 계기로 '포스트 휴머니즘'의 관점에서 관심을 기울일 필요를 느꼈다. 서양철학의 수많은 근본 전제들은, 인간-주체의 자리에 '장애인', '비정상인', '퀴어(여성)', '동물'을 대입하면 완전히 허물어져버린다. 따라서 이 ..

2022. 5. 19. 04:59

[기고] 쓰레기 대란이 온다

그린빌리지에 기고한 네번재 글은 최병성의 에 대한 서평이다. 쓰레기를 줄이자는 관성적인 구호는 많이 들어봤지만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파고들어본 적은 없었던 듯하다. 책 자체는 약간의 허술함이 있었지만 새로운 정보가 많이 들어있어서 한국적인 맥락에서의 '쓰레기 문제'에 대한 기본적인 시각을 갖추는데 도움이 되었다. 쓰레기 문제에 대한 해결방법을 개인의 미시적인 생활 에티켓(?)의 차원이 아니라 보다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차원에서 모색하기 위한 핵심 연결고리는 '건설폐기물'과 '토건 세력'이다. 우리가 아무리 일상생활에서 일회용품 사용을 줄이고 재활용을 많이 해도(그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니다) 재건축 한 번할 때 발생하는 건설폐기물의 양의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다. 따라서 온갖 건설사업에 뛰어들면서 겉..

2022. 5. 10. 18:53

[기고] 원자력은 대안인가?

그린빌리지에 기고한 세 번째 글은 정욱식의 (으로 2018년에 개정되어 재출판)와 데이비드 엘리엇이 엮은 를 참고해서 썼다. 이전에 서평을 쓴 도 한 챕터를 원자력 발전 이슈를 다루는데 할애하고 있는데, 그 서평에 원자력 발전 관련 논점까지 포함시켰다간 글이 너무 산만해질 것 같아서 원자력 문제는 단독으로 별도의 글에서 다루기로 한 것이다. 원자력 발전 이슈는 찬반 양론이 비교적 명확하기 때문에 토론하기 좋은 주제다. 원자력 발전은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주춤했다가, 최근 기후위기 문제가 부각되면서 저탄소 에너지원으로 다시금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렇지만 "원자력=친환경" 같은 도식은 내가 글에서 표현한대로 어딘지 '기괴하다'. 일본의 저자들이 쓴, 이 문제를 보다 심오하게 성찰하는 책..

2022. 5. 8. 16:05

[기고] 노동자와 기후위기

기후위기 문제에 국가와 자본이 '신경을 써주는' 것은 어쨌든 환영할만한 일이다. 그렇지만 이런 방식의 기후위기 대응은 지속가능하지 않고, 근본적인 해결책일 수 없으며, 어떤 점에서는 기만적이라는 점에서 국가와 자본의 '위로부터의' 기후위기 대응이 전체 환경담론의 주류가 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진정으로 지속가능하고 근본적인 '탈탄소로의 전환'은 노동자 계급이 주도하는 '자본주의 체제의 근본적 변혁'으로부터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생태마르크스주의'는 기후위기 문제에 대한 '아래로부터의' 대응을 적절하게 평가하기 위한 시각을 제공한다. 노동자와 기후위기 (『기후위기, 불평등, 재앙』 (장호종 外) 서평) 기후위기 극복에 우호적인 국가와 자본? 사이비 환경단체들이 앞장서서 기후위기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

2022. 5. 1. 02:34

[기고] 파스칼의 도박

1. 한 달에 (최소한) 한번 이상 글을 써서 이곳에 업로드하는게 목표였는데 4월은 그냥 넘기고 말았다. 학교 시험기간과 각종 활동이 겹치면서 너무 바빴다. 2. 그런데 글을 안 썼던 것은 아니다. 얼마 전부터 지인의 소개로 '친환경'을 모티브로 한 "매거진 미디어 + 종합쇼핑몰"에 원고를 보내기 시작했다. 이름은 '원플래닛' (조만간 이름이 바뀐다고 한다). 주제와 상관없이 '돈을 받고' 글을 쓰는 경험 자체가 나한텐 무척 뜻깊기 때문에 주저 없이 하겠다고 했다. 엊그제 세번째 원고를 보냈다. 3. 글 쓰고 돈 받는 일이 해보고 싶어서 무턱대고 하겠다고는 했지만 환경문제에 대해서 특별히 파악하고 있는 바가 별로 없으므로 내가 쓸 수 있는 글은 또다시 '서평' 뿐이다. 완전히 생소한 분야의 어떤 책을 읽..

2022. 3. 18. 15:55

환경사회학 개론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한 환경사회학』(찰스 하퍼)에 기초하여 작성) 1. 환경사회학이란 무엇인가 ‘환경사회학’을 정의하기 위해선 먼저 근대적인 ‘자연과 문화의 이분법’에 대해 재사유해야 한다. 근대인은 사회문화현상과 자연현상을 분리해서 사고하는데 익숙하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문화-사회제도-사회구조-사회연결망 등과 같은, 자연환경으로부터 독립적인 ‘문화영역’을 향유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자연환경의 영향에 종속된 존재가 아니라는 사고방식이다. 고전사회학 자체도 생물학적 결정론(biological determinism)을 배격하면서 발달한 바 있다. 고전사회학이 등장한 것이 산업사회의 태동과 시기적으로 겹치는 것은 우연이 아닌데, 고전사회학이 전제하고 있는 ‘근대적 이분법’은 곧 초기 산업사회의 지배적인 ..